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akong Jun 24. 2019

오늘, 안녕

하루는 정말 소중하다. 그리고 지나간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자주 하루를 망치곤 하는 것 같다. 오늘도 그랬다.


발단은 어젯밤부터였던 것 같다. 한 명은 졸리다고 난리고, 한 명은 잠을 안 자겠다고 난리인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겨우 한 명을 재웠는데 한 명이 자꾸 그 아이를 깨우고 졸린 아이는 또 짜증을 내고.. 거의 1시간 동안 이걸 반복하는데 정말 너무도 화가 났다(일단 내가 화가 많은 사람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나도 소위 말하는 육퇴를 하고 싶은데.. 두 명이서 이러고 있으니 마음이 다스려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었는데 어제의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었는지 인내심이 거의 바닥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밥 안 먹지, 양치질 안 하지, 양치질했는데 입 안 헹군다고 하지... 그래도 꾸역꾸역 참아내고 있었는데, 굉장히 사소한 것에서 폭발을 해버리고 말았다. 양치질 안 한다고 하는 아이를 겨우 꼬셔서 화장실로 데리고 왔는데, 그 아이가 책을 엄청 많이 가져오더니 그걸 들고 본인 양치질을 시켜달라는 거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 순간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소리쳤다.


"엄마도 못해! 엄마도 못한다고! 그렇게 많은 책을 들고 어떻게 너를 양치시켜! 엄마도 못하는 게 있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갓 두 돌 지난 아이한테 무슨 짓을 했는가 어이가 없어 민망함에 웃음이 나오는데, 그 당시엔 정말 너무 버거웠다. 혼자서 낑낑 아이 둘을 준비시키는데, 누가 봐도 어려운 일을 가져와서 나한테 하라고 하니.. 나도 진짜 울고 싶을 만큼 버거웠다.


그래도 참았어야 했다. 내가 소리쳤을 때 아이는 속상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때 뒤도 안 보고 들어가 버렸다. 화를 낸 나도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미안했다. 화를 냈으면 끝이어야 하는데, 화내고 미안해하는 건 진짜 최악이다. 화는 상대방도 아프게 하고, 나도 아프게 한다.


아이를 보내고 그 화가 다스려지지가 않아 혼자 씩씩거리며 청소를 했다. 오늘 같은 날 만날 사람도 없고, 특별한 일정도 없어서 나는 어쩔 줄을 몰랐고 괜히 옷 정리를 한다고 온갖 옷을 다 꺼내 미친 듯이 정리를 했다. 그리고 평소처럼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점심을 먹고..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다. 많이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미안함과 죄책감과 속상함과 답답함이 엉켜 나를 괴롭혔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지만 도저히 안 되겠어서 햇빛이라도 쬐고자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 하원까지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평소에 마시고 싶었던 음료를 마시며 소소한 반찬거리를 샀다. 따스한 햇빛을 느끼며 걷다가 문득, '오늘의 반을 내가 이렇게 헛되게 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내가 좀 더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럼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 하루를 좀 더 잘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살면서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그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다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때로는 무시함으로, 때로는 시선을 바꿈으로, 때로는 부딪쳐 해결함으로.. 자신만의 스트레스 노하우가 쌓여야 인생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특별한 취미도 없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다. 취미란을 기재하는 곳에는 독서, 영화보기 등을 채워 넣지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일뿐더러 내가 특별히 더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대부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은 없다. 그런 삶이었다. 나는.


내 아이들은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를 잘하지 않더라도, 좋은 직장에 다니지 않더라도.. 인생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고,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도 이제부터라도 내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 줄 취미를 찾아보고 싶다. 특별하진 않더라도 내가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도 툭툭 잘 털어버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이전 05화 엄마의 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