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쉬는 날입니다. 이제 아이도 조금 자라서 함께 영화를 보는 일에 도전해 보기로 했어요. 평소라면 애니메이션만 가능했지만, <알라딘>이 그리도 재미있다 하기에 한 번 봐보기로 했지요.
영화는 2시간이 조금 넘는 길이입니다. 6살 아이가 보기에 조금 긴 느낌이 있는 실사판 영화이지만, 뮤지컬 영화이니 집중해 줄 것이라 믿어보았지요.
영화관은 오픈한 지 오래되지 않은 리클라이너 좌석이었고요. 들뜬 마음을 안고 극장에 갔는데, 글쎄 매진이라네요. 평소라면 인터넷 예매를 하고 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남편회사와 조인이 되어 현장 할인이 된다기에 그냥 갔더니 낭패입니다.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해하며 돌아섰지요.
"어? 잠시만요!"
직원이 우리를 부릅니다. 딱 2개 좌석이 났다면서요. 우리 가족은 세명인데. 아이에게 선택을 하도록 했지요. 누구와 영화를 볼 것인지.
"음... 아빠랑 둘이서는 영화를 많이 봤고.... 근데 아빠랑도 같이 보고 싶고..."
결론은 났지요. 실은 <알라딘> 자막판을 보고 싶어했던 건 나였고, 아이가 있어 더빙판으로 보기로 한 건데, 둘 밖에 못 본다면 제가 봐야지요.
마침 뮤지컬 영화라기에 전날 OST도 미리 들어뒀어요. 정성화 씨 목소리를 들으니 뮤지컬 <영웅>을 관람할 때의 기분이 새록새록 들었습니다.
리클라이너 좌석은 꽤 넓고도 편안했습니다. 남편 말로는 몇 천 원 더 주고 볼만하다고 하더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앞에서 두 번째 줄 가운데 좌석을 향해 다가갔는데 이미 다른 아이들이 앉아있네요. 좌석번호를 몇 번을 다시 확인했는데도 그 자리네요. 보호자는 없는 듯 보이기에 잠시 망설였더니 오히려 옆라인의 한 여성분이 "거기가 7,8 맞아요"라고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애들아, 둘이서 왔니? 혹시 부모님은 어디에 계셔?"
그때 나를 향해 어떤 분이 다가오시더니 "장애인 단체에서 왔는데 그냥 빈자리에 앉아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물으십니다.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장애인들과 함께 온 것이구나, 하지만 이 아이들은 비장애인인데, 그리고 지금은 만석이라 정확하게 어떤 좌석과 바꾸는지를 알려주지 않으면 빈 좌석에 앉았다가도 다른 사람이 또다시 자신의 자리라도 나타날 수도 있는데, 영화는 이제 곧 시작이고.
"만석이라 아무 자리에 앉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요. 저도 아이가 어리고요."
좀 전의 여성분은 "돈 내고 들어왔는데 왜 그래야 하지?"라며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내게 그냥 앉으라고 이야기해주십니다.
그때 마침 앞 열에서는 한 가족이 휠체어 탄 장애인들을 위해 자리를 옮겨주고 있었고요. "일찍 비켜드리지 못해 죄송해요."라는 말까지 하면서 말이지요. 순간, 나는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해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 그리고 양보해 준 사람의 친절 멘트까지 나를 꽤 신경 쓰이게 하더군요.
전날 사실 예약 상황을 살펴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어요. 밤 11시 에 검색했을 때 50석 중에 1석만 예매가 되어 있었기에 아침에 가서 표를 구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에요. 그걸로 미루어 생각한다면 장애인들을 모시고 오는 단체에서는 앞좌석을 예매하지 않고도 일반인들이 비켜줄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왔다는 이야기가 되네요. 장애들에게 양보를 못하겠다는 의미도 아니고, 장애인들 스스로 양보가 당연하다고 여긴다는 의미도 아니에요. 그들을 인솔하는 담당자들의 태도와 인식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양보해 준 사람의 친절 멘트마저 과잉으로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자기 방어적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자리의 원주인이었던 아이들은 인솔자들의 자녀로 보였습니다만, 어떻게 자기 논리로 위안을 하든 씁쓸한 저의 마음은 영화를 보는 내내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이윽고 영화는 시작이 되었어요. 현란한 기술과 빠른 전개는 아이가 따라가기에는 힘든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요. 어느새 아이는 눕고 몸을 뒤집고 다리를 쳐들며 온몸으로 지루함을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얌전히 있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서 나가야 해. 쉿~!"
알겠다고 했지만, 어디 아이의 참을성이 그럴 수 있나요. 조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시작된 뒤틀림.
"우리 나갈까?"
진심이었습니다. 아이를 동반하고 영화나 뮤지컬을 볼 때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아이는 나의 진심을 오해했나 봅니다.
"엄마, 영화가 길어도 너무 길... 어요."
라며 입을 비죽이며 울먹입니다. 아마 얌전히 있지 않은 자신을 혼내는 멘트로 이해했나 봅니다.
두 팔을 벌려 나에게 오라고 했지요. 젖을 먹일 때처럼 아이를 안아줍니다. 여전히 아이의 훌쩍임이 몸으로 전해집니다.
"겸아, 힘들면 지금 나가도 괜찮아."
아이는 고개를 젓습니다. 조금 지나니 진정이 된 듯 영화에 집중을 하게 되었고요. 리클라이너 좌석이었으니 다행이지 일반석이었다면 옆자리나 뒷자리에 크게 방해가 될 상황이었지요. 그 자리는 둘이 앉고도 넓었습니다. 게다가 의자를 뒤로 젖히면 제가 아이를 안고 편안히 누울 수 있는 자세도 가능했습니다. 한 좌석에서 둘이 보는 상황이었지만, 그전보다 마음은 더 편안했습니다.
시작부터 불편했던 마음 그리고 저의 아이까지, 영화 보는 내내 나를 옥죄었던 아침이지만, 이제 겨우 제주 체류 1일 차 인걸요.
남편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며 식사를 하러 갑니다. 집 근처에 좋아하는 퓨전짬뽕&피자집이 있거든요.
톳으로 면과 도우를 반죽해서 아주 담백합니다. 맛도 일품이고요. 먹고 나니 힘이 납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아주 무덥습니다. 습도는 높은데 뙤약볕이 내리쬐니 그야말로 한증막 속 더위입니다. 그래도 구름 한 점 없으니 보기 좋습니다.
오후에는 바다에 나가볼 예정입니다. 그전까지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고, 남편은 독서 중이며, 아이는 컬러링북을 색칠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