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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더위가 뭔가요?

글디오: <글로 보는 라디오> #2

by teaterrace



본격적인 제주살이의 시작입니다.


남편은 출근을 하고, 아이와 저 둘만 남았어요. 남편이 차를 가지고 출근을 했고 점심에 차를 가져다주러 와요. 그 김에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어요. 오늘은 무엇을 할지 아직은 아무 계획이 없어요. 부지런히 살겠다고, 운동도 하며 계획적으로 살겠다고 다짐을 한 적은 없지만, 계획이 없는 하루의 시작은 늘 불안합니다. 저는 무위(無爲)를 굉장히 불안해하는 사람이거든요.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삶은 없으니까요.


본래 점심은 외식을 할 생각이었는데 아이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네요. 그냥 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남편을 회사로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용천수 수영장에 들릅니다.

"옷이 없으니까 발만 담가보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용천수는 곶자왈에서 스며든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해요. 제주 곳곳에 용천수가 있는데 이곳은 낮은 둑으로 막아놓아 주민들이 빨래를 하거나 어구들을 세탁하기도 해요. 주로는 어린이들의 수영장으로 쓰이고요. 바다 곁에 있어 바다 수영을 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고요, 바닷물이 아니라 끈적이지도 않아요. 바다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밀물과 썰물 시간에 따라 수영장의 높이도 달라져요.


밤이 늦도록 이곳은 사람이 많아요. 한낮에는 좀 덜 붐비다가 늦은 오후가 되면 하나둘씩 이곳을 찾지요. 른들은 자리를 깔고 치맥을 즐기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계속해요. 이곳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이 자연놀이터가 삶의 일부인 듯 보여요. 마치 유니폼처럼 위아래로 까만 옷을 입은 중고생들도 물속에만 들어가면 어린아이가 돼요.


바로 옆에는 목욕탕도 있는데 돌담으로 구획을 나눈 천연 목욕탕이에요. 안에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용은 하지 않는지 쓰레기들이 곳곳에 버려 있네요.


목욕탕을 지나면 바로 바다로 이어져요. 이곳에서 제주의 청소년들은 다이빙을 하지요.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요. 저는 언제쯤 수영을 배워 바다로 다이빙을 할까요. 못해도 2미터 깊이는 되어 보이는데 이 친구들은 서슴없이 뛰어내립니다.


작년에 우연히 지나다 이곳을 알게 되었는데, 올해도 다시 찾았어요.


"엄마, 아무래도 물에 들어가서 놀아야 할 것 같아요."


집에 가서 물놀이 옷으로 갈아입고 오기로 합니다. 차로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저희 집이 있거든요. 옷을 갈아입고 다시 차로 달려서 주차를 하는데 아이가 조용합니다. 저런, 잠이 들었네요. 깨울지 말지를 고민합니다.



1시간이 지나 슬쩍 아이를 불러봅니다. 번쩍 눈을 떠서는 상황을 살핍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입니다. 다시 물가로 가겠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튜브도 띄우고 물속에 몸을 담가 놀았는데, 아이가 한 해 크더니 물이 차갑다고 온몸을 던지지는 못하네요.


"앗! 차가! 차가!"


그도 그럴 것이 차가운 정도가 마치 얼음장 같습니다. 어른도 발을 담그면 1분을 채 버티기가 힘이 들 정도로 아려옵니다. 그래도 어릴 때는 잘 놀았는데. 클수록 그리고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도 어려움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 물귀신처럼 엄마도 같이 들어가자고 하는데, 저 역시 작년과는 다르게 몸을 던지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겨우 다리만 담갔다가 빼내기 일쑤.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가끔씩 빗방울도 흩뿌립니다. 낮잠으로 점심을 거른 아이에게 이제 그만 철수를 권해봅니다. 아이도 흔쾌히 OK 하네요.



근처에 기가 막히게 맛있는 돈가스집이 있어요. 두툼한 속살은 기본이고요, 튀김옷을 어찌 그렇게 고소하게 튀겨낼 수 있는지 소스 없이 먹어도 감탄이 나옵니다. 아이도 엄치척! 정신없이 한 조각을 꿀꺽합니다.



이곳이 기가 막힌 돈가스집인 것은 단연 맛뿐만이 아닙니다. 풍경이 숨이 막힙니다. 특히 노을 녁 데크에서 식사를 하면, 해가 지는 바다의 풍경을 볼 수가 있어요. 크루즈 디너가 부럽지 않습니다. 사실, 크루즈 타고 먹어본 적은 없어요. 하하.


남편에게 전화가 옵니다. 퇴근시간이 되었거든요. 우리가 밖에 있으면 남편을 데리러 가고, 집이면 남편이 알아서 옵니다. 돈가스를 먹고 있다는 말에 배신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남편은 손에 한가득 초당 옥수수를 들고 있네요. 작년에 처음 초당 옥수수를 맛보았는데 이렇게 달고 사각한 곡식이 과일이 아니란 게 놀라울 정도였지요. 그래서 초당 옥수수 시즌에는 제주 엄마들도 이를 구하고 싶어 난리입니다. 정확히는 실한 옥수수를 괜찮은 가격에 구하고 싶은 것이지요. 다행히 구입처를 알아 올해도 주문해서 먹었습니다만, 제주에서는 한참 철이 지났는데 남편이 한 자루 들고 오네요. 시범경작을 한 회사 지인이 헐값에 소량 판매를 했다는데 완전 횡재입니다. 1개에 1500원은 족히 받는 물건인데 500원이라니.


집에 들어서자마자 껍질을 벗겨 렌지에 돌립니다. 초당옥수수는 전자렌지에 돌려도 찜기에 쪄먹는 것과 99.9% 동일한 맛을 내거든요. 수분이 많고 당도가 높아서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생식도 꿀맛입니다. 달달한 생밤 맛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초당(ultra super sweet)인가 봅니다. 남편이 제주에 온 후로 이렇게 농수산물을 싱싱하게 먹을 기회가 종종 옵니다. 겨울이면 귤이 회사 곳곳에 깔려 있대요. 직원 어머니가 한라봉 농사를 짓는다며 선판매를 해서 직판장보다 저렴하게 살 수도 있고요, 단체 낚시를 가서 싱싱한 물고기를 잡아오기도 합니다.


2개를 먹고 3개를 더 돌려 익힙니다. 오늘은 육지에서 동생네 가족이 놀러 오기로 했거든요. 모두가 한창 배고플 시간이니 집으로 오는 동안 먹으라고 챙겨 보냅니다. 남편이 공항으로 픽업을 하러 간 사이 저는 청소를 해야 합니다. 제주에 와서 주말을 보내는 동안 나가서 놀기만 하느라 짐 정리도 못했거든요.



부리나케 정리를 하는 사이,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전해옵니다. 세 꼬맹이들이 환호를 지르며 서로를 반깁니다. 출출한 것 같아 집으로 오는 동안 카카오톡으로 무엇을 먹을지를 정해두었습니다. 족발을 사서 바다에 가서 먹기로 했답니다.


모두가 차에 올라 족발을 접수한 뒤 삼양 바다로 갑니다. 가로등과 벤치 그리고 자리를 펼 만한 공간이 곳곳에 많이 있거든요. 작년에도 이곳에서 남편과 치맥을 했고, 회도 테이크아웃해서 먹었네요. 동생네에게도 이런 호사를 시켜주고 싶었어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시작합니다. 시원한 맥주도 한 캔씩 하고요. 저는 운전을 위해서 참습니다, 가 아니라 술을 못해서 구경만 합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바닷가에서 식사를 하니 기분이 더없이 좋습니다. 근처에는 길냥이 식구들도 어슬렁거리고요.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족발이 금세 동이 납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 길 건너편에 바로 낮에 먹었던 돈가스집이 있거든요. 그곳이 저녁이면 치맥 집이 됩니다. 짬뽕도 정말 기가 막힙니다. 치킨을 한 마리 사서 먹기를 이어갑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노네요.



배가 차니 이제야 한치잡이 어선들의 불빛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잠시 뒤 바다에 커튼이 드리웁니다. 해무인데요.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바다를 덮는 건지 처음 알았네요. 방금 전 선명한 밝은 불빛들이 해무에 덮여 히뿌연해집니다. 머리숱 없는 막내 꼬마의 머리가 흠뻑 젖었어요. 그만큼 습하다는 뜻이겠지요. 얼른 자리를 정리합니다. 우리보다 동생네 가족은 더위에 더 취약하거든요.


집에 들어오니 10시가 훌쩍 넘었네요. 아이들부터 씻기고 어른들이 씻으니 11시는 금방입니다. 9시 전후로 자는 아이들이 11시가 되었으니 얼마나 피곤할까요. 거실에 자리를 마련해주고 우리 가족도 이제 지친 몸을 풀어봅니다. 앞으로 5일 동안 함께 지내게 될 텐데요. 어떤 일상이 펼쳐질까요.


제주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마감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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