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 드리는 글
제주에 머물며 무려 스물다섯 날을 함께 할 수 있어 든든했습니다. 익숙함에 보통의 부부처럼 사소한 일로 삐죽거리기도 하고 저녁이면 둘 다 지쳐 아이는 내팽개쳐두고 각자의 일에 몰두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모인 완전체’로 지내는 것이 더 좋았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평일에는 아이와 함께 바다에 가기도 했고, 커피숍에서 비밀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으며, 출근할 때는 못해주던 ‘만들고 그리기’를 했습니다. 닷새간의 손님치레 기간 동안 원 없이 물놀이를 했고 우리는 '까만 콩'이 되기도 했습니다.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조금 더 먼 곳으로 갔습니다. 주로 김녕이나 세화 쪽이었지만, 남편 휴가기간에는 애월, 협재 쪽으로도 다녀왔어요. 우리의 이야기에 서귀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곳에 좋은 곳을 두고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있냐는 것에 우리 부부는 동의했거든요.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곳을 피해 우리만의 프라이빗 스팟을 찾고 그곳을 아지트처럼 방문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면서 말이지요. 아무리 제주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여전히 저는 제주가 좋습니다.
이제 남편만 두고 제주를 떠납니다.
제주로 가면서 결심한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매일의 일상을 글로 쓸 것, 운동을 해서 건강해질 것.
마감을 독촉받는 전업 작가들처럼 저 역시 제가 정해놓은 룰에 맞추기 위해 쫄리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글을 썼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와 교감할 시간이 줄고, 남편이 퇴근해서도 남편과 대화 대신에 글을 쓰는 밤이 되는 날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늘 응원해주는 남편 덕분에 매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 쓰는 시간은 남편의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며 동시에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스물다섯 날의 기록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운동을 하겠다는 계획도 지켰습니다. 도착과 동시에 동생 가족이 와서 함께 지내느라 곧바로 시작을 못했지만, 남은 기간이라도 꼭 운동을 하리라는 열망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운동으로 생기는 통증은 나날이 줄었고 육지로 돌아온 지금은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데 예전처럼 힘들지가 않습니다. 저의 체력은 분명 성장한 거예요.
체중의 변화는 없지만, 탄탄한 체구를 얻었습니다. 결혼 전 체중감량을 위해 시도한 각종 다이어트와는 마음가짐부터 달랐기에, '운동 고자'인 제가 운동에 관한 글도 쓸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글감을 던져준다는 측면에서 도전은 늘 긍정적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다시 제주로 건너가기 전, 하나의 계획이 있어요. 바로 그림을 배우는 일입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제주를 사진으로만, 글로만 담기에는 무언가 늘 부족함을 느껴왔거든요. 다음에 방문할 '겨울 제주'는 글과 함께 그림을 그려서 넣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더 풍성하게 제주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렙니다.
눈으로만 담기는 아쉬워 사진으로 찍은 풍경을 이렇게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몸이 늙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마음이 늙는 일일 것입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마음의 노화'를 예방하는 일이지 싶어요. 내 마음 세포가 늙지 않도록 매일 설레며 살아야겠습니다. 항산화가 별거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