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한 달을 사는 거라면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을 생각했었다.
그곳에서 동네를 산책하고, 장을 봐서 식사를 해결하고, 괜찮은 카페나 음식점을 찾기도 하고, 가끔씩 교외로 나가보는 그런 일상. 지원이 상상했던 한달살이라는 건 그런 거였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생각보다 보고 싶은 홋카이도가 많았다. 한달살이가 아니라 한달여행을 떠올렸다. 그래서, 마음이 닿는 곳으로 이동하는 여정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짐을 들고 이동하는 불편함을 빼고는 못할 일도 아니었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 지원은 대략적인 이동 루트를 그려봤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홋카이도를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거라고 들었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오히려 반대 방향이 낫다고 판단했다. 교통비, 이동 시간, 아이의 체력과 흥미. 고민 끝에 오타루에서 시작해 삿포로, 아사히카와를 거쳐 유빙의 도시 아바시리로, 그리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막상 이동을 앞두고 나니 계획이 또렷해지지 않았다. 아사히카와를 거점으로 잡는 게 합리적이긴 한데, 그 근처에 갈 곳이 너무 많았다. 비에이, 후라노, 아사히다케, 소운쿄…… 어디를 언제 가야 효율적일지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여행 중인데, 왜 이리 사무적이게 되는 걸까?’
정답은 하나였다. 아이와 함께이므로. 사무적이라는 말은 형식적인 절차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엄마가 계획되어 있어야 아이가 덜 고생한다는 의미였다. 아이가 덜 고생해야 엄마도 덜 힘드니까. 마음도 몸도.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럼에도 밀려오는 피로.
지원은 구글맵을 켰다. 이 루트, 저 루트. 열차 시간과 버스 배차 간격을 비교하느라 눈이 아파 왔다. 아사히카와 부근에는 비에이, 후라노 같은 매력적인 장소들이 많았지만, 숙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가까워 보여도, 차가 없으면 도달하기 어려운 고립된 숙소들. 눈 덮인 설원 한복판에 있는 에어비앤비는 정말 낭만적이었지만, 아이와 함께 무거운 짐을 끌고 가기엔 현실적 부담이 컸다. 결국 비에이도, 후라노도 거점으로 삼기엔 무리였다. 지원은 다시 아사히카와를 중심으로 지도를 확대했다. 편의성과 안정성. 결국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아사히카와에서는 어디를 먼저 가야 하지? 갈 곳이 정해진다면 그곳 근처에 숙소를 잡아야 편한 것 아닌가? 생각에 생각이 이어져, 또다시 결정을 방해하고 있었다. 동네에선 카페나 밥집을 가거나 도서관, 공원에서만도 하루 종일 지낼 수 있는 사람인데도 여행이다 보니 자꾸 ‘반드시 가야 할 곳을 못 가면 어쩌지’하는 조바심도 났다. 안 그래도 결정을 못 하는 지원은 머리가 멍해졌다. 그때, 다정한 말로 용기를 주던 그 사람. 이 막막한 길목에서, 그 다정함을 다시 한번 빌리고 싶어졌다.
-안녕하세요. 산책자 님.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일주 님께서 궁금한 건 산책자 님께 여쭈면 좋다고 해서요.
답장은 금세 왔다. 렌트를 한 경험, 스노우 워킹 투어의 난이도, 추천 숙소 위치까지. 산책자와의 대화는 정보의 바다 속에 길 하나를 낸 듯한 기분이었다. 너무 고마우면서도, 지원은 살짝 민망하기도 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다 얻는 핑거 프린세스로 보여질까봐서. 스스로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현실은 정보의 파도 속에 허우적대는 생선에 가까웠으므로 민망함은 쓱 접어두기로 했다.
그날 밤, 지원은 아사히카와 역 근처의 숙소를 4박 예약했다. 첫 행선지는 아사히다케. 가능하면 내일, 아니면 모레.
다음 날 아침, 오타루의 마지막 날은 먹구름으로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보라. 창밖이 하얗게 흐려질 정도로 몰아치더니 또 맑음. 이곳의 날씨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종잡을 수 없었다. 짐을 챙기는 손길은 분주했고, 백팩은 아이 몸집보다 크게 부풀었다. 캐리어, 백팩, 아이 손. 혼자 손으로 그 모든 걸 챙겼다.
체크아웃 후 KFC에 들러 전설의 징거 버거와 치킨을 주문했지만, 너무 짰다. 일본 음식이 싱겁다는 건 옛말인 듯.
한별과 지원은 반쯤 남긴 치킨을 포장해 들고 역으로 향했다. 곳곳이 녹은 눈 때문에 울퉁불퉁하고 질척거렸지만, 그럼에도 홋카이도의 처음을 담당해 준 오타루가 지원은 썩 마음에 들었다. 이 익숙한 길을 지나 또 다른 도시로.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오타루 역.
자동 발매기 앞에서 아사히카와를 입력했지만 원하는 노선이 뜨지 않았다. 도우미를 부르니 창구 발매만 가능하다고 했다. 창구 앞에 서니 직원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왜 특급을 두고 일반 열차를 타려고 하세요?”
“아이랑 둘이 가는데, 요금이 절반이라서요.”
그제야 직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티켓을 프린트해주었다. 환승을 포함하여 두 배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요금은 특급의 반. 스스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시간 부자니까.
플랫폼에 오르자 ‘小樽’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자를 보며, ‘술통 준’? 이름의 의미가 새삼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아래, RU-TA-O. ‘루타오?’ 아! 오타루의 유명 과자 브랜드 ‘LE'TAO’는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었구나. 떠나는 날에야 그걸 깨달은 자신이 웃겼다.
열차는 바다 옆을 달렸다. 러브레터의 무대였다는 제니바코 역도 스쳐갔다. ‘제니바코, 이름이 유럽의 어느 곳 같다’는 엉뚱한 생각도 스쳤다. 시간은 예상대로 오래 걸렸지만, 여행객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영화 러브레터 시절에나 입었을 법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타고 내렸고, 오트밀 색 털모자 위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내는 할머니, 세로 쓰기로 인쇄된 소설책을 읽는 청년, 잔뜩 인상을 찌푸린 할아버지, 일본식 헤어스타일에 정갈한 양복을 입고 두 다리를 조개처럼 꽉 다물고 앉은 직장인 남성 등등. 그렇게 창밖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이, 환승역 이와미자와에 도착했다.
눈이 쉼 없이 내렸다. 대합실에서 잠시 기다리며 한별은 기념 도장을 찍고, 지원은 간이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를 샀다. 눈은 계속 쌓였다. TV 뉴스에서는 ‘관측 사상 최대 적설량’이라는 자막이 걸려있었다. 첫날 오타루에서도 그런 말을 들었는데, 이 정도면 진짜 역사의 중심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신기한 눈. 쌓여가는 눈이 심상치 않다고 느낄 즈음, 두 사람이 탈 열차가 도착했다. 열차의 머리 부분에 올라 운전석 옆 차창을 통해 눈 내리는 정경을 바라보았다. 열차는 철도를 따라 눈을 헤치며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쏟아지는 눈이 창문을 때리고든 덩어리째 흘러내리는 일을 반복했다.
아사히카와에 도착했을 때는 겨우 5시였지만, 세상은 이미 밤이었다. 역 앞 광장에는 아이스 링크가 열렸고, 전구 장식으로 반짝였다. 귀여운 눈사람들이 그들처럼 도착한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숙소는 역에서 5분 거리. 방 안에는 따뜻한 웰컴 티와 예쁜 머그컵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원은 배낭을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
다음 날은 그냥 아무 데도 가지 않기로 했다. 정말, 하루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는 것처럼 지내자고.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고, 지원은 한별의 손끝을 조심히 매만졌다. 손거스러미가 일어난 곳곳에 딱지가 앉은 가여운 손가락.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그렇게 아사히카와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아사히다케로 가는 버스는 하루 3번 운행. 7시, 9시, 1시.”
버스 시간표를 내려다보면서 지원은 혼자 중얼거리며 또 생각했다.
‘이걸 열 살 짜리 아이와 맞출 수 있을까?’
계획은 다 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아이와의 여행이었고, 아이와의 인생이기도 했다. 2시간 가량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일찍 출발이 불가피했다.
“별아. 내일 아침 7시 버스가 있는데 괜찮을까?”
이 모든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깜깜한 새벽에도 잘 일어났다. 심지어 스노우 수트까지 꼼꼼히 챙겨입고 지원을 따라나섰다.
“이렇게 일찍 나와서 걸으니까 상쾌한데, 엄마?”
얼굴엔 아직 졸린 기색이 남아 있는데도 엄마를 안심시키려는 한별의 말에 지원은 코끝이 시큰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따뜻한 녹차를 사서 버스에서 먹기로 했다. 버스는 공항을 거쳐 산으로 더 산으로 들어갔다. 홋카이도의 버스 운전기사들은 정말 모두 베테랑 운전자가 틀림없다. 결코 올라가기 어려워 보이는 언덕도 거침없이 심지어 안전하게 올랐다.
아사히다케는 날씨가 좋지 않으면 오르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미리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출발을 하긴 했으나, 홋카이도의 날씨는 한치 앞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이미 며칠 동안 몸소 경험을 했다. 그때 이런 지원의 걱정을 날려주듯 여우 한 마리가 폴짝이며 지나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좋은 징조일지도 모른다.
로프웨이 승강장에는 이미 많은 스키어들과 보더들이 자신들의 커다란 장비를 들고 줄지어 서 있었다. 여기저기서 입산을 위한 준비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의 기대감은 더욱 차올랐다.
드디어 출발하는 로프웨이. 며칠 전 탔던 텐구야마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마치 마을버스 한 대가 통째로 로프에 매달려 이동하는 기분이 들었다. 산등성이에는 전나무들이 빼곡하게 심겨져 있었고 그 위에 폴폴 눈이 쌓이고 있었다. 운임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지워질 만큼 훌륭한 광경에 지원과 한별은 벅찬 기분마저 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스가타미 역. 마치 기차역처럼 현판을 걸어두었다. 두 사람은 우선 역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세상에. 이런 근사한 설경이라니. 끝을 알 수 없는 설원이 눈 앞에 펼쳐졌다. 스키어들과 보더들은 장비를 챙겨입고 저벅저벅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두 사람도 그들을 따랐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의 다리는 허벅지를 넘어서까지 눈에 빠졌다. 더 이상 따라가는 건 무리였다. 한별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고 하더니 갑자기 눈 위에 철퍼덕 누웠다. 그리고는 아래로 데굴데굴. 지나가는 수많은 스키어들과 보더들이 웃으며 한별을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아이는 더 신이 나서 계속 데굴데굴. 아닌 게 아니라 지원보다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멈췄다. 하늘을 보며 누운 채 가만히 숨을 골랐다.
“엄마, 하늘도 하얘.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눈인지 모르겠어. 천국 같아.”
눈 속에 잠긴 목소리는 납작하게 퍼졌다. 눈꽃이 한별의 이마에 닿았다가 사르르 녹는 장면을 떠올리며 지원은 멀리서 살며시 웃었다. 별 일 안 해도 괜찮은 순간. 그건 어쩌면, 이 여행이 주는 가장 크고 단순한 선물일지도 몰랐다.
다시 스가타미 역의 대합실로 돌아왔다. 이대로는 설원을 걸을 수 없었다. 자판기에서 따뜻한 코코아를 뽑아 마시면서 방법을 생각했다. 아! 스노우 슈. 그걸 빌릴 수 있다고 했는데. 지원은 직원에게 가서 문의했다. 아뿔싸. 그건 정상이 아닌 로프웨이 탑승장 옆에 있는 비지터 센터에서만 대여가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 그걸 빌리러 다시 내려가야 하나. 그러나 로프웨이 운임이 만만치 않아 본전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중국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눈이 잔뜩 묻은 스노우 슈를 벗어들고 대합실로 들어왔다.
“혹시 스노우 슈를 빌릴 수 있을까요?”
지원이 용기 내서 물었다. 그들은 난감해하더니 결국 신발을 넘겨주었다. 지원과 한별은 스노우 슈로 갈아신고 다시 설원으로 나갔다. 갑자기 해가 구름 사이로 나와 설원을 하얗게 비춰주고 있었다. 찬란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두 사람은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는 곳을 목적지로 삼고 걸었다. 그러나 갑자기 해가 자취를 감추면서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눈보라가 시작된 것이다. 한별이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엄마. 미안한데 더는 힘들 것 같아.”
지원은 한별의 손을 잡고 다시 몸을 돌렸다. 대합실에서 두 사람은 빨개진 볼을 마주 보며 서로 웃었다.
“다음에 날씨가 허락하면 다시 또 오면 돼.”
미안해하는 한별을 달래며 두 사람은 하행 로프웨이에 올랐다.
아침 일찍 출발한 터라 두 사람은 배가 몹시 고팠다. 터미널 식당은 짙은 라면 냄새와 고소한 돈까스 냄새가 뒤덮여 두 사람의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챠슈 간장 라멘과 매콤 호르몬 라멘을 주문했다. 눈앞의 전나무 설원을 곁들여 게 눈 감추듯 호로록 면발을 삼켰다. 추위를 충분히 녹일 만큼의 맛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비지터 센터를 방문하기로 했다. 아까 오르기 전에 들렀어야 했던 곳이라고 생각하니 지원은 속이 쓰렸다. 안에는 아사히다케에 사는 동물들의 박제와 식물 견본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한국어 음성이 들려왔다. 둘은 소리의 근원을 찾아 걸었다. ‘눈 결정’에 관한 영상이 플레이되고 있었다. 눈 결정 연구소라는 곳에서 세계 최초로 인공 눈 결정을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눈 결정은 수증기의 양과 온도에 따라 부채꼴, 침상, 병풍형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설명도 이색적이었다.
“별아. 세상에는 똑같은 모양의 눈 결정은 없대.”
“정말?”
“응. 비슷해 보여도 다 다르대. 눈은 대기 중 수증기가 얼면서 만들어지는 거잖아? 눈 결정이 만들어질 때 온도, 습도, 수증기의 농도, 공기 흐름 같은 환경 조건의 영향을 받는데 결정이 자라나는 동안 계속해서 주변 환경이 조금씩 변하는 거지. 그래서 이것들이 아주 미세하게라도 달라지면 다른 결정이 만들어지는 거래. 눈 결정의 가지가 각기 다른 속도와 형태로 자라니까 말이야. 그 결과 육각형이라는 기본 구조는 같지만, 세세한 형태는 모두 조금씩 달라지게 되는 거래.”
“우와- 정말 신기하다.”
“이론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환경이라면 같은 결정이 생길 수도 있지만, 현실의 자연 조건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네.”
“정말 멋진 자연의 신비네.”
“그치? 그래서 과학자들도 이렇게 말하곤 한대. ‘눈 결정은 마치 손가락 지문처럼, 똑같은 걸 다시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말야.”
그래서 쌍둥이도 전혀 다른 두 사람으로 자라나나 보다. 지원은 눈 결정이 아이 키우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모두 다른 가지를 만들어 내는 아이. 그 환경 가운데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돌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아이로 키워낸다고 생각하니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으응…… 그럼, 눈은 엄마네? 엄마도 세상에서 단 한 명 뿐이잖아.”
이럴 때 보면 역시 한별은 내 자식이 분명하다. 같은 순간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해내는 아이라니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렇네. 우리 별이도 눈 결정 같은 존재네.”
“엄마, 사랑해.”
“응. 엄마도.”
“엄마 또 속삭인다.”
그렇게 말하며 한별이 키득거렸다. 엄마를 놀릴 줄도 알다니 제법 컸구나 싶어 지원도 배시시 미소가 지어졌다.
두 사람은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 사슴 소시지를 사 먹었다. 에조 사슴으로 만든 소시지라니. 어쩐지 잔인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돼지 소시지도 닭 소시지도 그리 생각하면 같은 거 아닌가.
이데유 호.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줄을 만들었다. 두 사람도 줄에 합류해 버스에 올랐다. 따끈하게 데워진 버스가 두 사람을 열렬히 졸게 만들었다. 아사히카와 역에 도착하니 또다시 밤이 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초밥 도시락을 사서 호텔로 들어왔다. 만 원도 채 하지 않은 도시락인데 회가 정말 신선했다. 역시 홋카이도답군.
내일은 폭풍설이 예고되었다. 꼼짝없이 호텔에서 머물러야 했지만, 그 전에 아사히다케를 다녀올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