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 가만히 잠이 든 아들과 남편의 숨소리만 들리는 시간, 조용히 눈이 떠지는 순간이 있다. 이제 에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되었건만, 이른 새벽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을 그 시간에 멍하게 이불속에 누워 화장실 물소리, 멀리 도로에서 오는 자동차 바퀴의 울림, 고양이의 앙칼진 울음소리. 낮이라면 그 하나도 들리지 않을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아들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누워 잠에 들면 되건만, 다시 누워 멍하게 안방 천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 옆에 있으나 여전히 혼자인 시간, 다시 내가 가고 싶은 그곳을 생각을 한다.
힘들어 보이는 누군가에겐, 나는 정말 이제 괜찮다고 말한다.
"일 년 지나고 나면 다들 잘 살더라고요."
"좋아요. 아이 안 아프면, 여기 괜찮아요."
그렇다. 나는 정말 괜찮게 잘 지내고 있다. 우리는 정말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곤 가만히 누워 내 머리 위에서 베개를 안고 구르며 자는 녀석과 아들의 발차기에 저 멀리 벽에 붙어, 노곤하게 잠을 자고 있는 남편의 숨소리를듣는다.
"에고, 다들 잘 자고 있네. 그래 참 다행이다."
여섯 시간 빠른 그곳은 지금 아침이겠구나. 엄마는 아빠의 이른 아침을 차리시겠구나. 부엌에 숭늉이 구수하게 끓고 있겠다. 아빠는 엄마가 잘라놓은 사과를 드시겠지. 혼자 그 시간을 생각한다.
가끔, 나의 친정아버지는 내게 모든 것이 완성된 선박이 진수되는 사진을 보내주신다. 높디높은 크레인 위에서 완성된 배를 바라보며, 우리 손주가 큰 배를 좋아한다고 이리저리 찍으셨을, 그 사진을 바라본다. 일흔이 넘은 나이의 그는 아직 같은 자리에서 일하고 계신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그는, 내가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어 이야기해도, 늘 대답은 같았다.
"남의 돈 받고 일하는데, 쉬운 일이 어딨나?"
열심히 말해봤자 잔소리 한 그릇 추가이니, 조용히 더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러던 나의 아버지는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손주가 자신이 만드는 커다란 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곤, 그 녀석이 말도 제대로 못 할 때부터 나의 아들에게 선박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나는 아버지가 보낸, 커다란 선박 사진을 보며 손주가 볼 거라고 이리저리 휴대폰을 돌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을, 아빠 얼굴을 그린다.
아빠가 하얀 러닝을 입고 언니가 보낸 신문에 침을 묻히며 읽고 있는, 그리고 가위질로 오려 집에 붙여놓던, 시집오기 전 매일 보던 아빠의 모습을 그린다. 그리곤 새로 알게 된 내용이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내게 한참을 설명하시다가, 언니는 아빠에게 이런 이야기 듣다가, 결국 정치 이야기로 흘러서 둘이 투닥투닥거리고, 한참을 또 그런 이야기로 열정을 쏟는 두 사람이 생각난다.
갑자기 시집가기 전 추석, 언니가 서울서 휴가를 와서 온 가족이 친정집 텔레비전 앞의 소파에 제각기 몸을 비비며 앉고 누워있던 그 저녁이 생각난다. 엄마는 산더미 같이 사과를 깎아 먹으라고 내놓으셨고, 한창 멋을 부리던 남동생은 소파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가 야밤에 샤워를 하곤 친구 만나러 나간다고 말했다.
"야, 밤늦게 어디 가!"
역시 우리는 잔소리를 한 그릇 더해준다. 구수하게 잔소리 한 그릇을 먹고 어린 남동생은 친구들을 만나러 밤 나들이를 나섰다. 그런 밤이었다. 내게 명절이었다. 지금은 참으로 그리운 그 시간, 생각보다 평범했던 그날의 저녁이었다.
나이가 일흔이 넘었건만, 나의 아버지는 일을 놓지 않으신다. 이제 그렇게 일하지 않아도 되건만, 그는 늘 바쁘다. 회사를 쉬는 날도 또 그렇게 밭에 가서 무언가를 일구신다. 그 어떤 땅도 놀게 할 수 없는 듯, 여름밤 그 늦은 퇴근길에도 주말에 일군 그 땅에 가서, 다시 땀으로 온몸을 흠뻑 적시는, 밭에 가서 곡식과 열매가 그 전 주보다 자라나 있는 것을 보면 행복하다고 이야기하신다. 나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다.
나의 시아버지는 농장을 하신다. 커다란 농장에서 토마토를 키우신다. 내가 시집을 온 후에 바라본 시아버지의 삶은, 이른 새벽 차례를 지내고 농장에서 드실 점심을 챙겨 대충 허기를 채우고, 다시 그날 농장에서 나온 물건들을 납품하시고, 해가 지고 어둑해질 즈음에 겨우 발자국 소리를 내고 집에 들어오신다. 겨울이면 하우스가 더 따뜻하다고 늦게까지 일하시고, 여름이면 해가 길다고 그 해만큼 늦게까지 그곳에 계신다.
두 아버지는 내가 살아오면서 본, 이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해가 이 두 사람을 위해, 일찍 자려가야 하나 싶을 만큼, 나는 사실 요즘 그런 두 사람이 진심으로 걱정된다.
집을 지키는 흰둥이가 목청 돋아 시아버지를 반기면, 어느새 풀물에 색이 바래 제 색을 잃어버린 누렇고 푸른 소매로 쓱 녀석을 문질러 주신다. 나를 반겨주는 것이 고맙고 기쁘시다고 이야기하신다. 어디선가 생긴 생채기인지 알 수 없는 손의 검은 점과 굳은살을 가지고, 크레인을 사다리 타고 오르다 쑥 들어가 버린 아빠의 무릎의 검은 상처를 지고, 어느새 이스탄불 살이가 익숙해져 우리 집에 놀러 오시라고 말해도 그들은 한사코 같은 이야기다.
"내년에도 회사에서 일하라고 하던데."
"농장을 놔두고 갈 수가 없다. 그거 다 죽는다."
아무도 깨우지 않을, 그런 평온하고 행복한 이스탄불의 밤, 이곳보다 6시간 먼저 아침을 열고 해가 뜨자마자 밖을 나서는 두 사람 그리고 그 옆에 늘 같이 일어나 그 두 사람의 아침을 챙기는 또 다른 두 사람, 나의 엄마 그리고 어머니.
지난 주말, 남편과 아들과 오랜만의 나들이에 이스탄불 쇼핑몰 가득히 사람들이 붐볐다. 라마단에 사람이 없다더니, 금식한다고 낮에 사람들은 없다던데, 이만큼 사람들이 돌아다니는데 무슨 금식을 하느냐며, 스타#스에 줄 좀 보라고, 커피 한 잔 못 사 먹겠다며, 그렇게 한참을 남편과 투덜거렸다. 그러다 나는 다시,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바이람을 맞아, 두 손 가득 가족들의 선물을 사고 있다.
"이것은 엄마 꺼고, 이것은 아빠 거다. 그리고, "
쇼핑가방 개수를 세며,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며 가족들을 챙기는 그와 그녀를 바라본다. 아이들도 제법 설레 보인다. 그들을 보며 괜스레 나도 그들처럼, 나는 쓰지도 않을 물건들을 한껏 사고 싶다. 보고 싶은 나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얼른 가서 그들을 생각하며, 그동안 싸놓았던 물건을 내놓고 싶은 건 명절, 멀리 있는 그 모두의 마음이 아닐까. 어쩌면 명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사실, 그렇게도 똑같다. 예쁜 그릇을 보곤, 평소에 없던 욕심을 내고 나도 두 손 가득 싸들고 집에 가고 싶다고, 집 앞 흰둥이가 내가 왔다고, 둘째네가 왔다고 목청 터져라 짖고 꼬리를 흔드는 그곳으로, 아무도 깨우지 않는, 평온한 이스탄불의 밤,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나는, 다시 두 눈을 꼭 감고 잠에 든다. 이스탄불 가장 고요하고 행복한 밤, 지금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