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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집이 불편해질 때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서글픔

by 미네

아이의 국제학교의 기다긴 여름 방학 동안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한국까지 오랜 시간 이스탄불을 떠나 있었다. 유럽은 남편의 휴가를 맞아 시작된 자동차 여행이었고, 역시나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10년 전의 나 혼자만의 유럽 일주와는 참으로 달랐다. 자동차를 타고 장을 보며 그리웠던 한국 음식을 먹고, 국경을 넘나들었고, 우리의 계획에 의해 자동차로 떠나기에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그곳의 삶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이스탄불에서 바쁜 남편을 두고, 아들과 둘이서 다시 한국행, 서울에선 아이와 나는 그동안 아이가 책에서 보았던 박물관을 여행했다. 참으로 바빴다.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마치고 밥을 해 먹이고 집을 정리하고 자리에 누우면, 나는 그렇게 지쳐 잠이 들었다.

아이와 서울여행을 끝내고 돌아간 고향에서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친정 아빠와 건강검진을 할 병원으로 향했다. 한국에 온 이유는 작년 건강검진 후 이원을 해서 수술을 했기에 같은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목적이었다.

아버지도 나처럼 운전하시는 것을 싫어하셔서, 여전히 새 차 같은 아빠의 오래된 차에 올라탄다. 엄마는 네 아빠가 손자가 온다며 몇 달 만에 세차를 했다고 내게 이야기하신다.

그렇게 우리는 여기서 일 년에 한 번 오는 특별한 손님이 되었다.




내시경 약을 먹고 먹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아빠의 서두름에 예약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부지런하다 못해 먼저 일어서야 하는 아버지의 성격 때문이다. 나 또한 내시경 약을 2시간도 걸리지 않고 다 먹어버렸으니, 나 또한 사실 아버지처럼 급한 건 마찬가지다.

하루라도 쉬면 안 되는 듯 40년 간 다닌 회사에 딸 때문에 오랜만에 휴가를 내셨다. 그리고 나의 친정아버지는 남편 대신 나의 보호자로 병원에 앉아계신다. 지루한 건강 검진 대기 시간 동안 병원의 전동마사지 기계는 친정아버지 때문에 쉬지 않고 일을 한다. 검진을 하나씩 끝내고 내시경을 위한 보호자 대기까지 아빠는 전동마사지 기계의 기능은 다 눌러보고 체험하신다. 참으로 바쁘다. 역시나 여전하시다. 사람이 없는 여름휴가 기간의 한산한 건강검진 센터, 아빠는 내가 일 년의 한 번 맞는 건강 검진을 기다리며, 전동 마사지 기계를 혼쭐 내주고 계신다.

내시경이 끝나고 잠에서 깨어나자 내시경을 담당한 의사 선생님의 호출에 아빠와 함께 진료실에 불러갔다. 그렇다. 불합격, 불합격이다. 내게 이스탄불로 가지 말란다. 자신이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다시 내시경으로 상태를 봐야 한다고 말하신다. 아이가 개학이라서 이스탄불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더니, 병변 모양이 크고 이상하니 어쩌면 암일 수 있단다. 조직검사를 해서 음성이라도 안심하지 말란다. 병변이 크다며 내게 잔뜩 겁을 준다. 그래도 이스탄불에 가야 한다는 나의 말에, 그는 한심한 듯 나를 쳐다본다. 솔직히 의사 선생님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그는 아파본 적이 없는 의사인가.


마음이 우울하다. 나는 몸이 아픈 것인가. 마음이 아픈 것인가.

작년에 이어 병원을 조용히 나오는 일이 없다. 약을 처방받고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생겼다. 친정집 한 방 가득, 이스탄불로 돌아갈 때 들고 가려고 사 둔 일 년 살이를 위한 물건들이 있다.

"저건 어떻게 하지?"

막막하다. 이번엔 옆에 남편 없이 아들을 데리고 혼자서 한국에 먼저 와서 그런 것일까.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갑자기 서글퍼졌다.

친정아버지는 의사의 말을 말없이 듣고 나오신다. 그 말을 듣고 집에 가서 친정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다정하지 못한 성격의 엄마는 일 년마다 검진하는 애한테 무슨 일이 있겠냐며, 환자에게 암이라는 말을 함부로 한다고 의사 욕을 구성지게 하신다. 역시 경상도 아줌마다.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던데, 그 의사 선생님은 필시 우리 엄마 덕분에 장수하실 거다. 그러나 결국 의사 선생님에 대한 구성진 욕은, 일 년 만에 와서 내게 또 아프다는 소리냐며 친정 엄마의 걱정이 화로 변한다. 걱정하지 말라며 부모님께 따뜻한 말을 건네야 하건만, 나 또한 엄마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화가 난다. 우리 집인데, 친정집인데 일 년 만에 온 나의 고향인데 더 불편하다. 아마 이런 상황이 나는 억울하다.

아프다는 것을 처음 알면, 모두 억울해한다는 감정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 것을 알지만, 그 몇 마디가 계속 이어지니 나는 결국 화가 난다.


"네가 뭐 한다고 아프냐. 네 몸 하나 못 챙기고 "


나는 그 한 마디에 다시 분통이 터져, 나는 그렇게 친정 엄마와 싸웠다. 엄마의 이 짧은 한 문장이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을 알지만, 화가 난다. 어쩌면 나에 대한 걱정이 변한, 엄마의 화를 내가 받아주기엔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친정아버지는 둘이 싸우는 모습에 속상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신다. 나이가 드셨는지 아버지는 부쩍 눈물이 많아지셨다. 어쩌면 내가 이스탄불로 떠날 때부터 올 때마다 그의 눈물을 본다. 짐을 가득 실은 승합차에 손주와 나 그리고 남편이 타면, 아빠는 차에 올라탄 우리를 보며 이야기하셨다.


"지훈아,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잘 가게. 잘 챙겨주고."


아빠는 매번 우신다. 참으로 미안하다. 해병대에서 낙하산 하나 메고 하늘에서 뛰어내린 나라며, 무서운 게 없다며 늘 씩씩하시던 나의 친정아버지는 180cm의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보이신다. 너무 미안하다.


역시, 이젠 불편한 친정집이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 댁에 함께 살았다. 솔직히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딸이었고, 친정 아빠는 서울에 혼자 살던 친정 언니 결혼식에는 기쁘다며 웃었지만, 나의 결혼식 전날에도 나의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살기 힘들면 돌아와도 괜찮아."


그때 그런 아빠의 모습을 처음 본 거라 이상하리만치 어색했다. 그는 엄마와 내가 둘이 다투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신다. 사건의 이유를 모르는 나의 아들은 철없이 까불며 이야기를 듣고 눈을 말똥거리다가, 계속 화를 내는 친정 엄마에게 우리 엄마한테 화내지 말라며, 할머니를 때리곤 눈물을 흘린다.

참으로 서글프다.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역시 계획대로 되면, 삶이 아닌가 보다.


튀르키예 시차를 생각해서 남편이 회사에 가서 점심시간이 되고 그가 여유가 있을 때 나는 전화를 한다. 병원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내게 그는 이스탄불에서 내시경 진료가 가능한 지, 어떻게 진행되는지부터 먼저 알아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나는 담담하게 통화를 마쳤다.

시간이 지나고 남편이 한국에 왔다. 그는 서울 본사에 가려다가 나를 빨리 보려고 친정에 바로 돌아왔다. 시댁에 가지 않고 친정에 계속 있으란다. 결국 나는 불편한 친정에 있는다. 어느새 내겐 너무 불편한 친정에 있는다. 정말 참으로 불편하다. 차라리 시댁이 편해질 참이다.

조직검사 결과날까지 기다리기에 힘들어서 미리 병원에 문의한 후, 결과가 일찍 나왔다는 말에 병원에 간다. 역시 나 또한 급하다. 그리곤 조직검사 결과, 암이 아니란다. 그런데 의사는 여전히 말투가 나쁘다. 그가 나의 걱정을 해서 하는 말이라고 되새기며 생각하지만, 그를 보며 말이라는 것은 중요하다고, 참으로 조심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말을 더 조심할 것이다.

누군가의 잘못에서 내가 배울 수 있다면 나는 아직 여유가 있는 것이니. 나는 그렇게 남편과 친정집에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사실 참으로 마음이 힘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이 아픈 것인가. 마음이 아픈 것인가. 몸이 아픈 것인가. 그렇다. 암이 아니란다. 다시 검진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 아픈 건 맞다. 그저 점검이 한 번 더 필요하다. 그렇다. 작년과 달라진 건 없다. 그저 아픈 부위가 좀 크고 달라진 것이다. 같은 상황이다. 사람은 모두 조금씩 아프지 않은가.




"아프면 집에 오면 되는 거지."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괜찮아."

이스탄불에서 미리 병원을 알아본 남편은 나를 안심시킨다. 어쩌면 남편이 오곤, 그 한 마디에 나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바쁘게 치과를 가고, 담담히 아이의 예방 접종을 맞히고 일 년 만에 바쁘게 은행을 돈다.

어른이 되니 무언가를 가졌고 그리고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 것은 역시 많다. 역시나 참으로 바쁘다. 하루도 여유 있는 날이 없다.

바쁜 나를 보기 위해 나의 오랜 친구는 내 집 앞에 또 와주었다. 그 핑계로 밤길을 나선다. 예전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오랜 친구와 사는 이야기를 한다. 집 근처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 앉아 오랜만에 아이가 아닌, 엄마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한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헤어질 때마다 우는 나의 친정아버지, 나에 대한 걱정이 결국 화로 바뀌는 친정 엄마, 이번에도 아프다는 소식에 시댁엔 오지 말고 친정에서 쉬라는 시어머니, 역시나 이 여름 너무 바쁜 농사일에 살이 홀쭉하게 빠져있는 시아버지, 손주가 좋아하는 곳이라는 말에 농사일을 쉬고, 처음으로 키즈카페에 앉은 시아버지와 커피를 나누어 마신다. 살 좀 찌라고 하신다. 그래 나도 뭘 좀, 잘 먹어야겠다.

친정집에 한국에서 산 물건들이 산더미로 쌓여있다. 항공사 규정에 따라 짐의 무게를 재는 나의 남편은 나를 이스탄불에 데려간 죄로, 결혼하지 말고 연애만 하며 살자는 내게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쫓아다닌 죄로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서 그 많은 짐을 묶는다. 나는 아픈 사람대접이다. 그래, 아픈 건 맞으니까. 고마운 일상이다. 사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은 없다. 그저 이스탄불에서 한 번 더 나를 보살피면 되는 것을, 사람은 모두 아프니까. 그렇게 나는 남편의 병원 예약을 믿고 산더미 같은 짐을 들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친정아버지는 떠나는 나를 보고 다시 눈물을 훔치신다. 아빠의 울음을 또 보고 왔다. 미안하다. 일부러 무덤덤하게 아빠를 안아주고 온다.


"지훈아, 엄마한테 잘해라."

"이스탄불에서 검진 다시 하고 괜찮다고 이야기할게요. 걱정 말아요."


나는 덤덤하게 약속하고 일 년 만에 만난 아빠와 엄마를 안고는 다시 나의 친정집에 아빠, 엄마를 두고 왔다. 나이를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어린애가 되는 것인가. 이젠 내가 그들을 두고 온 거 같은 기분이 자꾸 든다. 함께 한 세월이 긴 탓이다. 올해 한국행은 이상하리만큼 서글펐다. 그런데 우습게도 누구를 만나도 슬퍼도 슬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나이를 먹은 탓인가. 내가 유일하게 운 것은 남편이 없는 친정에서였다. 그리곤 담담해졌다. 다음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친정집이 편했나 보다. 그래서 나는 거기선 그렇게 엄마에게 화를 내고 울었나 보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될 순 없기에 그렇게 다시 되뇐다. 그리고 늦은 밤, 나는 오늘도 아이를 재우고 다시 책상에 앉는다. 이스탄불의 늦여름은 여전히 참으로 햇살이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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