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숙소 공용 화장실에 들어가 그를 기다린다. 아무래도 매일 저녁 화장실에 가는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쓴다는 공용시설이 꽤나 불편한가보다. 공용 욕실의 문이 잘 잠기었는지 연신 걱정이다.
결국 그는 화장실 볼 일은 성공하지 못했고 나는 그를 씻겨 우리 방에 돌아왔다. 그는 방에 들어와 이 집이 이제껏 모든 여행 중에 최악이라며, 투덜거린다.
똑똑! 복도에서 누군가가 공용 화장실 문을 다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게 그는 너무 불편하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래, 아들아. 너는 커서 돈 많이 벌어야겠다."
"아하하"
2023년 6월 24일
체코에서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었다. 체코 비넷이 포함되어 있던 렌터카가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넘었으니 오스트리아 비넷*을 새로 구매해야 하는데, 한없이 달려도 끝없는 자연만이 있었다. 우리가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도 로밍한 휴대폰의 알림으로 알 수 있었으니, 내가 자동차로 유럽의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이렇게 쉽게 넘어 다닌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첫 번째 목적지는 '아터호'가 있는 마을이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온 세상 사람들이 유럽에 오는 탓인지 관광지가 근처인 도심은 숙박비가 상당했다. 렌터카를 사용하고 있으니 남편은 관광지에서 벗어난 곳에 숙박을 잡았다. 유월의 긴 해 덕분에 우리는 국경을 넘고, 해질 무렵의 '아터호'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고 나서야 숙소를 찾았다.
유명한 '할슈타트'를 가기 위한 중간 정착지로 삼은 공간이었건만, 렌터카 방향을 돌려 '아터호'에 더 머물고 싶었다. 아이의 맑은 웃음과 청록색의 호수, 그 푸른 잔디밭에 저 마다 누워 햇볕을 쬐고, 다시 호수를 유영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클로드 모네의 '생타드레스의 테라스*'의 한 부분 같았다.
잔디 위에 우아하게 누운 유럽인인 그들 옆에서 나는, 호숫가에서 너무 신난다며 뛰다가 미끄러져 벌러덩 넘어지곤 '와앙' 소리를 내며 우는 아들의 젖은 신발과 옷을 갈아입히는데 바빴지만, 그 모습도 추억이라며 사진 찍을 여유도 있었던 것을 보면 '아터호'의 아름다움은 내게 꽤나 낭만적이었나 보다.
아들은 시원하게 화장실 볼 일을 성공하지 못했지만, 깨끗이 목욕을 하곤 따뜻한 내복으로 갈아입었다. 그가 이 숙소가 별로라며 투덜거리던 그 순간의 감정도 잠깐이었는지 그는 금세 이부자리에 누워 그림을 그린다.
우리는 익숙한 듯, 캐리어에 곱게 싸 온 휴대용 밥솥에 쌀을 씻어 넣어 밥을 짓고 이스탄불에서 싸 온 밑반찬을 꺼내 저녁을 먹었다. 그리곤 그는 침대 위스탠드를 켠다. 그는 꽤나 편안해 보인다.
그렇게 그 밤, 그는 연필을 잡아 오늘을 그린다. 그리고 그의 긴 하루 중 가장 좋았던 그것을 골라 그의생애오늘, 처음 만난 오스트리아를 그린다.
아들은 푸른 들판에 서 있던 그때의 그 트랙터가 가장 좋았나 보다. 아들의 그림 속 농부는 흐뭇하게 웃고 있다.제일 별로라던 그 감정도 어느새 모두 잊어버린 듯하다.
우리 모두가 가장 별로라고 말했던 그날의 그 순간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어버리고 가장 좋았던 그 순간만을 기억하는 것처럼, 아주 잠시 그 불편한 감정은 그에게 머물었다가 다시 포근하게 내 곁에 안겨 잠이 들었다.
어느새 아침이다.
똑똑! 그래, 다시 오늘,
우리 이제 오늘의 오스트리아를 맞이하러 가자.
*오스트리아 비넷은 도로 근처 주유소 내의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비넷 없이 이동하다 적발되면 벌금이 있으니 국경 이동 시, 꼭 주의하세요.
*생타드레스의 테라스, 클로드 모네, 1867년.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숙소, 남편은 잠만 자고 가는 곳이라며 아들과의 유럽 여행 중, 처음으로 집 전체가 아닌 '공동주택의 방'*을 예약했습니다. 에어#앤비를 통해 예약했으며, 보통 아들과 저의 알레르기 때문에 동물 출입 금지인지를 꼭 확인하며, 슈퍼 호스트가 아닌 집은 예약하지 않습니다. 23년 6월 기준으로 아침 조식 포함하여 오스트리아 '아터호'근처의 에어#앤비 숙소의 방(공용 욕실 사용)을 1박에 약 15만 원을 지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