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가씨였던 시절, 처음으로 줄 서서 가는 맛집에 갔다. 그곳에 가는 게 내 의지가 아니었기에, 혼자였다면 긴 줄을 보며 이미 나를 다른 가게로이끌었겠지만, 줄어드는 앞사람의 뒤통수가 주는 위로와 이 기회를 놓치면 손해라는 친구의 말에 혹해, 나 또한 그 맛집의 분주함에 한몫 거든다.
"드디어 내 차례다!"
사람이 많고 번잡한 게 싫은 내가,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교실에선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했던 것도 신기했지만, 그 북적이던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는 자기 곁에 앉은 그 사람과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몸짓은 그것보다 신기했다. 그녀의 음식은 공장의 로봇의 움직임처럼 착! 착! 소리를 내며 내 앞에 차례로 음식을 내어놓았다.
그래! 어서! 어서 먹고 떠나야 한다.
2023년 6월 25일 오후 12시 45분
Parkplatz 1
Parkplatz 2
목적지로 향하는 구글 지도에 찍힌 두 군데를 벌써 지나쳤다. 깜깜한 어둠 속 긴 터널을 지나, 우리는 아주 작고 미세한 빛을 보며 다시 달려간다. 멈출 곳이 있을 것이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알프스의 풍광으로 환하던 세상이 다시 어두워졌다. 저 멀리 빛이 보인다.
남편의여행 계획에선 우린이미 멈춰야 했었다. 그런데, 그곳엔 우리 자리가 없다. 그저 그곳에서 기다리고 싶었다.차례로 줄을 서서 말이다. 궂은 인상의 아저씨가 다가와 어색하게 그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우리에게 나가라는손짓을한다. 독일어로 적힌 글을 흔들어 보인다. 독일어는 모르지만 그의 냉랭한눈빛으로 알 수 있다. 그 앞에 줄을 서는 것도 안되나 보다. 내 뒤에 다음 차례의 사람이 생기는 것조차 문제인 엄청난 맛집인가 보다.
"그래, 알겠습니다. 나갑니다. 우리 나가요."
그의 눈빛에, 한국말이 불쑥 나온다.
Parkplatz 3 für Busse
Parkplatz 4
다시 목적지를 찍어 나선다. 이유월 여름 햇볕에 저기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다시 걸어 돌아온다고, 그리고저 칠흑 같은 터널을 아들 데리고 지나야 한다고, 터널 속을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도 아니다. 돌아서자. 한 여름 땡볕 아래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아들, 너와 함께거기까지갈 수 없다. 다시돌아서 보자.
우리는그렇게 예상보다 어렵게,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에 도착했다.
드디어 자동차가 쉴 곳을 찾았다. 산과 들판만 가득하던 오스트리아에서 이스탄불의 주차만큼 여기도 힘들다며 우리에게매운맛을 보여주려는 듯, 할슈타트는 아이 걸음으로 족히 걸어서 왕복으로 1시간을 걸릴 듯한 '주차장 4'까지 가고 한참을 주차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머뭇거리다결국 돌아오고 나서,우리에게 '1'이란 숫자 하나를 보여주었다.
할슈타트에 도착하기 전, 알프스의 장엄한 풍광 속에 함께하는 오스트리아의 호숫가, 그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사람들, 여유롭게 햇볕을 받고 일광욕을 하는 그들. 알록달록한 긴 타월을 깔아놓고 누워있는 모습으로 같은 공간,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듯한 여유로움.
한국 검색 사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유명 관광지가 아니건만, 자동차 몇 대가 서 있어 그저 그 걸음에우리도 따라서면, 어느새 우린 그림 속에 잠시 같이 서 있었다. 솔직히, 조금은 어색하게.
이름 모를 그호숫가에서 마냥 놀고 싶다는 아들에게 더 좋은 곳이 있다며 인터넷에 적힌 무수한 인증에 따라, 이걸안 사면 너에게 손해라며, 남들이 가면 다 이유가 있다며 분주히 줄을 서, 그렇게 우린 할슈타트에 도착했다.
알프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일까. 맑은 물이 쏟아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럽 초기 할슈타트 철기 문명, 소금 광산, 그리고 알프스 기슭에 호수를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 '겨울왕국'의 배경. 무수한 수식어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공간.
19세기 후반까지 배를 타고서만 접근이 가능했다는이곳. 아까 우리가 주차를 위해 지나간 그 터널은 1890년에 뚫은 그 터널일까. 이 터널로 여기는 이렇게 북적이게 된 것일까 우리는 잘 다듬어진 그곳으로 걸어간다.
오후 1시,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Parkplatz 2는 다시 꽉 찼다는 표시를 올리고, 많은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서 대형 버스에 실렸다 내려졌다를 반복했다. 여행자 센터는 한 때 소금광산이었던 이곳에서 나는 고급스러운 소금을 팔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듯 동전을 넣는다. 여기에사람이 많이 오긴 하나보다. 버스에 내려진 사람들은 호숫가의 루터교회를 배경으로 삼아 차례로 사진을 찍는다. 모두 미스코리아 선발에서 일등이라도 될 듯, 같은 자리 비슷한 포즈로 활짝 웃는다. 저기가 사진 명당인가 보다. 나도 그들을 따라 비슷한 배경으로 줄을 서, 남편이 어서 서란다. 나도 거기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찰칵! 소리도 나지 않는 스마트폰의 카메라, 나는 어느 순간에 남편에게 찍혔을까. 아마 그의 순간을 모르니 필시 눈을 감았을 것이다.
이 사진 속에 콩알만 한 나의 표정을자세히 봐줄 사람은 사실, 나뿐이다.
벌써, 이 자리를 기다리는 다음 사람이 보인다.
여름의 햇살에 지쳐, 나는 어느새 관광이 지루해진 그들이 보인다. 이 가족은 이곳에서 체스를 두고 있다. 아빠와 어린 큰 아들은 이 시합에 새삼 진지하다.
우리 집 아들은 더 이상 걷기 싫다며 그 체스판 옆에서 돌탑을 쌓겠단다. 아들은 소금광산도, 유네스코 철기문화 박물관도 다 싫단다. 나도 박물관이 만든 그그늘에 앉아, 여름 더위를 핑계 삼아 돌탑을 쌓는 아들 옆에 털썩 앉는다. 나는 그들의 시합을 진지하게 관람한다. 아무래도 이 경기는 그의 아들이 질 거 같다. 그들은체스시합에 정말 진지하다. 필승의 정신으로 시합을한다. 대충 안 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 진지한 몸짓에 나도 그 경기에 집중한다.
그리고 결국, 그의 아들은 자신의 왕을 아빠에게 뺏겼다. 체스판에 왕은 힘없이 쓰러졌다.
그의아들은 주저앉아 있다벌떡 일어서, 체스판 위에서 모든 말을 패대기친다.
그걸 보는나는, 나도 모르게 불쑥 한국말이 튀어나온다.
"에라이!"
아들이 대성통곡을 하든지 말든지, 그의 아빠는 아주 평온하게 자신의 쓰러진 말을 제자리에 놓는다.
그리곤 잠시 후, 그의 아들도 자기 몫으로 남겨진 말들을 다시 세운다. 그는 체스판을 어지럽힌 아들에게 아무 말 없이 그가 다시 그 판을 세우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곤 그 가족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체스판의 처음 모습 그대로 놓아둔다. 그리곤내게 편안하게 체스 게임을 권했다. 그들은 우리가 그동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리고 체스판은 처음 그 모습으로 서 있었다.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던 내 젊음을 잠시 내려놓고, 빈자리를 찾아 조바심을 내며 줄을 서던 그 지친 마음을 오스트리아 그늘에 놓인 채, 나도 그들처럼 아들과 함께 유월의 할슈타트 그늘에서 돌을 쌓아보았다. 돌은 차곡차곡 올라간다. 그리고 무너진다. 그리고 다시 나도 그들처럼 편안하게, 그저 위에 돌을 함께 올려보았다.
그의 돌탑이 그리고 엄마인 나의 마음이, 제법 단단해지고 있었다.
*할슈타트 주차장, Parkplatz 1,2,4은 일반차량 주차 가능하며, Parkplatz3은 버스 전용입니다. 1,2는 주차를 하고 할슈타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주차장 4는 아이 걸음이라면, 왕복 1시간 거리이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야 합니다. 나이가 어린아이가 있다면, 관광객이 오는 시간보다 일찍 오셔서 1,2에 주차하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