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이던 재래시장 속, 작은 제과점이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면 갈색빛의 고소한 빵 내음이 내 코를 유혹하던 그곳, 막대기에 꽂혀 하얀 옷에 갖가지 색을 입은 사탕은 창문에 비친 햇살에 따라 그 빛을 더했다. 아직 작던 내가 한 번에 입에 넣기엔 너무 커다랗던 왕별사탕.
내 나이가 아들보다 어리던 그때, 나는 우리 집의 막내였다. 늘 알뜰하게 살아야 한다며 미용실에서 제일 오래가는 파마로 머리를 보글보글 말았던 엄마는, 시장 앞의 제과점에 있던 반짝이는 사탕을 바라보는 내게 늘 이렇게 말했다.
"저건 너무 커 그리고 계속 먹다 보면 맛도 없어."
그래도 나는 제과점 앞을 지나갈 때면 사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금이라면 맛이나 궁금해할까 싶은 그 녀석을 얼마나 바라봤을까. 시간이 지나 어머니의 청춘, 새로 지은 집에 이사를 앞두던 날, 시장에 나선 엄마는 말없이 그것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짠순이 엄마, 그녀가 무슨 일이었을까.
그렇게 왕별사탕은 내게 왔다.
2023년 6월 23일
체코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다. 체코 프라하 공항은 이스탄불 공항에 비하면 작고 아담했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한 렌터카를 수령하려니 다양한 렌터카 회사가 하나의 주차장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여러 회사의 차가 섞여있었고 회사별로 주차구역이 달랐다. 방심하고 대충 들은 층수와 기둥번호로 예약한 렌터카를 찾으려니 어디가 어딘지 한참을 헤매다 자동차를 찾았다.
남편이 렌터카와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나는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바로 처음 시도한 튀르크젤 휴대폰 해외 로밍에 대한 문제였다.
이스탄불에 살기 시작한 후, 튀르키예에선 소득과 통장이 없는 완벽한 백수가 되곤, 해외여행은 가지만 휴대폰 로밍은 하지 않은 채,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는 여행을 했다. 패키지 여행을 이제껏 한 번도 안 한 내 성격에 남편만 보고 아들 손을 잡고 따라다니니 한 편으론 편하면서도, 한 편으론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니 괜히 심통이 올라왔다. 그래서 도전한 튀르키예 휴대폰 해외로밍, 선불제라서 그런 건지 로밍이 처음이라 그런지 이것 또한 좀처럼 쉽지 않았다. 튀르키예어를 썼다가 영어를 썼다가, 영어도 튀르키예어도 아닌 것 같은 말을 쓰며 0번으로 만난 튀르키예인 안내원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무슨 말인가. 다시 한번만 더 말해달라며 부탁을 전해본다. 결국 그의 튀르키예식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에게 이카멧 정보에 있는 나의 엄마 이름을 정확히 대답하여 내가 나라는 것을 어렵사리 증명했다.
렌터카를 찾던 중이었던 남편은 그냥 돈을 버렸다고 생각하라며 내게 그만두라고 말하는데, 어차피 자동차를 기다리는 시간이라며 튀르키예 통신 회사에 전화해서 휴대폰 로밍 잠금까지 푼 내가 퍽 대단한가 보다. 나보다 더 바쁘게 이리저리 돌면서 렌터카를 찾아온 부지런한 그는, 가만히 앉아 겨우 말만 한 내게 연신 쌍엄지를 올렸다.
"Tekrar söyleyebilir misin? 다시 말해주실 수 있나요?"
이런 어수선한 엄마 아빠를 말없이 기다려주는 것만으로도 아들은 얼마나 자란 것인가. 아들은 렌터카 회사 앞에서 다른 일에 바쁜 나를 그저 바라보았다.
"엄마, 내가 할 일 없어요?"
"응, 네가 잘 기다려주는 게 도와주는 거야."
우린 그렇게 겨우 프라하 공항을 벗어났다. 한참을 다시 달려 한국사람이 없는 한인마트*에서 장을 보고 그 근처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먹고서야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했다.
2023년 6월 23일, 여행 1일 차 오후 4시.
이제 이 여행의 시작인데, 왜 이리 피곤한 건지. 첫날이건만 이틀은 지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럴 만했다. 우린 새벽 3시에 이스탄불 집에서 출발했다. 부지런도 병이라, 늘 일찍 나서자는 새벽형 인간인 남편 덕분에 여행을 오면 우리는 하루를 두 배로 살아간다. 렌터카 수령 후, 이동시간에 잠깐이라도 잔 아들과 달리 이것저것에 신경 쓰느라 남편과 나는 어느새 13시간째 여행 중이다.
"엄마, 저 왕별사탕 맛있겠다."
평소의 나와 같다면, 저건 너무 크다며 먹어봤자 별 맛없다고 아들에게 어서 돌아서라고 할 것이다. 그런 내가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날의 엄마, 그녀도 나와 같았을까.
저 크고 화려한 별사탕이 특별한 맛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지금 이곳까지 오는 우리의 여정이,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모든 일들 일어난, 그리고 도착한 이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이 모두 오늘 하루에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했다. 공간을 넘어선 이동과 그동안 우리에게 주어졌던 오늘의 열 세 시간. 이스탄불에서 프라하로, 그리고 다시 체스키크룸로프까지 오는 이 시간들이 그저 아들, 네가 이미 알 만한 평범한 맛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문득, 긴 하루 속 우연히 너와 내가 만난 이 사탕 가게의 네가 고른 왕별사탕이 참으로 특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아들과 계획 없이 들어간 체스키크룸로프의 사탕가게에서 아들과 함께 예쁘고 고운 왕별사탕을 사고, 남편의 손을 잡고 거리의 행위 예술가의 공연을 보았다. 그리고 외줄 타기 곡예를 하는 그를 보며 아슬아슬한 순간에 같이 가슴을 졸였다. 아들은 그렇게 마음에 드는 왕별사탕을 들고선 다음엔 저기 보이는 저 카누를 타보자고 외치고 우리는 다시 이곳, 체코 체스키크룸로프에 오는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저녁밥을 먹고 어느새 저녁 7시, 해가 길어 고마운 유월 여름의 체코, 우리는 드디어 첫날 숙소가 있는 오스트리아로 다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곤 한참 왕별사탕을 잘 먹던 아들이 말한다.
"엄마, 이거 맛없어."
"이런, 역시!"
"이 녀석! 아하하하"
그렇게 우린 크게 웃곤, 다시 국경을 넘어 체코 체스키크룸로프에서 오스트리아로 가고 있었다.
*프라하 공항에서 렌터카 수령 시, 자동차 위치인 층수, 기둥번호를 정확히 알고 이동하시길 바랍니다. 렌터카 계약에 보통 체코 비넷(비네트, vignette; 고속도로 통행료 지불티켓)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렌터카 계약 시 비넷 포함 여부를 꼭 확인하세요.
*Arama yapabilmeniz icin oncelikle hattinizi yurtdisinda kullanima actirmaniz gereklidir. 00905327570532 yi UCRETSIZ arayip hemen actirabilirsiniz.
전화를 걸기 전에 먼저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회선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00905327570532번으로 무료로 전화하시면 즉시 답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TURKCELL)
-혹시 튀르크젤 애플리케이션에서 로밍요금제를 선택하고 결제하신 후, 위의 문자를 받으셨다면 안내원 연결 '0'번을 누르고 영어로 말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İngilizce konuşmak istiyorum. 잉글리제 코뉴슈막 이스티요룸) 영어가 가능한 안내원과 통화하실 수 있습니다. 이카멧 정보를 확인하고 회선을 활성화 하실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안내원이 이카멧에 있는 저의 엄마 이름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외국인 신분증에 엄마, 아빠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본인 확인시 사용됩니다.
*한국마트, SAPA, 142 00 Praha-Libuš, 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