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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Apr 26. 2024

사랑니를 뽑았다

당신의 오늘을 기억하는 이스탄불

 해외살이, 살아보니 어떠하냐고 묻는 사람에게 한국에서 사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곳이 타향이니 모든 게 조금 더 낯설고 그 단계가 몇 개 더 있을 뿐. 나도 좀 살아봤다고 이제 예전처럼 더 이상 어렵거나 슬프지 않다 말했다.


 이제 익숙하다고, 제법 겉 멋이 들었다.


 사랑니를 뽑았다. 타향살이 길어지니 치과에 가서 이제 이도 뽑는가. 재차 보험을 병원 통역관을 통해 확인하고 자리에 앉아 차례를 기다린다.

 제 나름 느지막이 나를 찾아와 그래도 곱게 나 있어 다른 어금니들처럼 일하다 스스로 깨지니, 너도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병원 의자에 눕는다. 병원 통역관이 와서 삽십분 안에 끝난다는 말을 하는 튀르키예 치과의사 말을 다시 번역한다.


 '내 그 정도는 이제 알아듣는데.'


 속으로 한 이 생각도 마취주사를 테이블에 놓기 시작하자 멈추어진다. 그 덕분에 안 그래도 어설픈 르키예어 발음이 우스워진다.

 크게 벌린 입에 한참을 윙윙거리던 것이 사라졌다. 주의사항도 조심할 것도 없다는 의사의 말이 너무 담백하여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헛헛함이 몰려온다.


 얼마나 내 곁에 머물렸건 그건 중요하지 않는다며,  이렇듯 반듯하게 있다 갑자기 나를 떠나가는 사랑니에게조차 내가 이리 섭섭한 것을 보니 나도 어쩌면 이곳, 이스탄불을 떠날 때 다른 그들처럼 뒤돌아보고 울 지 모른다.


 저 큰 개가 길거리에 돌아다닌다며, 무섭다며 울음을 터트리던 아들 녀석 두 손 꼭 잡고 걷던 이 길을, 어쩌면 시간이 지나 이스탄불 거리를 텔레비전 화면에서 다시 보고 세상없을 반가움과 호들갑을 떨며 이 시절을 그렇게 그리워할지 모른다. 힘들었던 기억 모두 잊고 그렇게 너를 보며 커피 한 잔을 나누던 그 시간을 어쩌면 다시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게. 섭섭하다.

 고생했어.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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