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네 May 03. 2024

여전히 어설픈 건

당신의 오늘을 기억하는 이스탄불

 아들의 학교에서 수영 수업을 시작했다. 코로나와 수영장 공사로 국제학교 생활 3년 만에 그는 수영을 시작했다. 학교의 수영수업에 편하게 적응하려면 미리 배우면 좋다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아들이 이스탄불에서 수영을 시작한 지 어느새 햇수로 3년째다.


 내 눈엔 어설프기 그지없는 그의 발차기. 

 아들은 자신의 반 친구들 중에서 고급반에 해당하여 수업을 다녀온 그는 물속에서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을 도와준 무용담을 쏟아낸다.


 "엄마, 있잖아."

 

아들 녀석의 표정을 보니, 참으로 뿌듯했나 보다.


 이곳에서 처음 수영을 시작할 때, 아들은 튀르키예인 수영선생님과 함께 물에 들어갔다. '어푸어푸' 물을 먹고 내게 원망도 하고 펑펑 울던 녀석. 어색하던 선생님의 손에 의지해 그는 처음으로 깊은 물속에서 물장구를 쳤다. 한국과 달리 느슨한 수영 교육법, 아들의 발장구는 나와 많이 다르다. 앞으로 가지만 무언가 느슨한 느낌.    느긋했던 선생님은 아들에게 연신 너 자신을 믿으라며 용기를 주셨다.


 한국식 교육이 익숙한 엄마는 처음, 이 느슨함이  참으로 어색했다. 그래도 아들은 다이빙을 배우고 영법을 하나씩 익혀갔다.

 아들이 수영을 시작한 후 피부가 이상해지고, 때론 하기 싫다는 그의 말에 연거푸 그만둘까 하는 고민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이곳에서 제일 잘한 일은 그에게 계속 수영을 가르친 일이었다. 아들은 아주 깊은 수영장에서도 두려움 없이 마음껏 헤엄을 친다.


 매주 만나던 수영 선생님이 살이 빠져가고, 그는 자주 수업을 취소했다. 수업을 해도 내 건강과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는 다시 수업을 자주 빠졌다. 그리고 몇 달 뒤 우리는 수영장에서 다시 만났다. 빨간 열꽃이 그의 얼굴에 피었다. 그의 살이 너무나 빠졌기에 괜찮냐는 안부인사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가 없이 나와 아들 둘이서 수영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다시 그에게 연락했을 때, 수업을 잠시동안 못할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내게 '미안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그를 위해 기도했다.


 시간이 지나 수영장에 아들과 앉아 그를 생각해 본다. 아들은 수영을 하며 함께 물속에 함께 있는 내게 손뼉을 마주치며 웃는다. 내게 선생님이 많이 아프시다는 말을 자주 들은 아들은 내게 말했다.


 "선생님이 나를 다시 가르치긴 힘들 것 같아."


 이스탄불, 이곳 삶에서 가장 환하고 밝았던 수영장에서 아들과 나는 그를 기억하고 함께 수영을 한다. 이전에 선생님이 이렇게 가르쳐 준 것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해보자고 서로에게 말한다. 그리고 내 눈엔 여전히 어설픈, 아들의 발차기를 바라보며 그를 기억한다.


 아주 뒤늦게, 부고를 알리는 전화가 왔다. 아마 누군가 그의 신변을 정리하나 보다. 그의 휴대폰에 나와 그가 나눈 대화가 있었을 것이다. 장례를 치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미 내가 알고 있던 그의 소식이 전해졌다. 제대로 된 위로의 말을 전달할 수 없는 나의 튀르키예어.

 그녀는 내게 몇 가지를 묻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사용하여 그녀에게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도 괜찮다고 말했다. 대화 속 나의 말이 너무 어설퍼, 전화를 끊고 서글퍼졌다.


 그렇게 여전히 어설픈 건, 사실 나였다.


 

 



이전 09화 사랑니를 뽑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