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베라트의 밤(Berat gecesi)을 기다리며
오늘 아침, 이스탄불 시정 안내를 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Berat Kandilimiz'라는 메시지가 왔다. 아들을 보내고 동네 한 바퀴를 걸으며 구글 번역에 이 문장을 따라 적는다. 한국어로 번역되어도 그대로 한국어로 읽어진다. 무슨 뜻일까.
bera/berâet (البرائة)
'베라, 베레트'로 아랍어에서 유래된 이 말은 튀르키예어로 베레트, '두 가지 사물 사이에 관계가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의무로부터 자유롭거나 의무가 없다'는 것을 것을 의미한다.
즉, 무슬림들에겐 오늘 밤은 알라의 용서와 사면을 통해 그동안의 죄를 사면받는 날이다. 무슬림들은 오늘 밤은 다른 날과 달리 저녁에 금식을 하고 더 많이 기도를 하면 자신의 죄를 사면받는다는 신성한 날이다.
한참을 '베라트의 밤'에 대해 찾아 읽어보다 사람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한다. 나는 과연 인간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지금 나의 삶은 정말 자유로운가. 그 어떤 사물과 관계없이 지낼 수 있는가.
그러다 하얗고 통통했던 살찐이가 떠올랐다.
이스탄불에 살곤, 무수한 고양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에 와서 나의 생애 처음으로 고양이를 제대로 쓰다듬었다. 한국에서도 동물을 만났지만 나의 알레르기로 인해, 때론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는 한국 길고양이들의 특성으로 인해 단 한 번도 거리의 동물을 만져본 적이 없었다.
지하 노래방만 가도 목이 쉬는 알레르기가 심한 내가, 개털과 고양이털이라니.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을 만큼, 그 동물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그들을 대했다. 이스탄불에 와서도 반갑게 꼬리를 먼저 흔들고, 몸을 만져달라며 다리 사이를 지나다니는 녀석에게 곁을 온전히 주지 못하는 것은 나의 건강 때문인지라 너무 반갑게 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건물에 나보다 먼저 터를 잡았다는 고양이는 지난 3년 동안 거의 매일 내가 길을 나설 때마다 나와 함께 중앙 현관 앞을 지나 계단을 내려왔고, 나를 물끄러미 보며 저 멀리 가는 나를 배웅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새 그 녀석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살찐아"
통통하고 하얀 털이 윤기 있던 녀석은 이 건물에서 이름이 여러 가지였다. 내겐 너무 인자하신 1층 할머니의 화단에 오줌을 자주 싸는 통에 자주 물 바가지를 맞은 탓일까. 지난 시간 동안, 매일 나를 알아보고 배웅해 주는 녀석이었지만 내가 녀석을 만지려고 하면 나를 할퀴었다.
"성격도 못났지. 하하하."
나를 할퀸 살찐이를 때리려는 아들 앞에서 한참을 '살찐이' 대신 '못난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래도 매일 오후,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아들을 데리러 나가는 그 길을 잘 다녀오라고 우리 집 앞에서 나를 배웅해 주는 것은 성격이 좀 못난 살찐이뿐이었다.
살찐이는 내가 사는 시떼 건물에 십 년이상 산 고양이었다. 건물의 모든 사람이 나를 모르더라도 그 고양이는 모두 알 만큼, 녀석은 한 때 아주 작은 아기 고양이였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이 건물에서 살았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난여름부터인가 내가 지어준 살찐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그 녀석은 살이 빠져갔다.
그리고 한 달 전, 살찐이는 더 이상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처음에 나는, 녀석을 외면했다. 이 건물의 누군가가 녀석을 살려줄 거라는 믿음. 나는 고양이도 안 키워봤고 튀르키예어도 잘 못하는데 동물 약은 어찌하나 싶은 생각에 누군가의 구조를 그저 기다렸다. 그러나 다들 그런 생각이었을까. 피를 흘리는 살찐이를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건물의 사람들은 그저 '알라'만을 내게 말했다.
"신의 뜻대로"
성질 급한 내가 결국, 난생처음 아들 손을 잡고 고양이 약을 사러 동물병원에 갔다. 단번에 느껴지는 동물 체취 냄새, 알레르기가 심한 내겐 쥐약인 공간이었다. 마스크를 동여매고 차례를 기다려 수의사를 만나니 약 다섯 알과 영양제 한 통에 몇십만 원이 넘는 돈을 말했다.
비싸디 비싼 약값, 덥석 사겠다는 소리를 못하고 망설이니 손님 한 명이 내게 영어로 고양이의 사연을 묻는다. 그리곤 옆에서 다른 개의 치료를 받던 아주머니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지갑에 있던 돈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 손가락 마디마다 끼워진 반지보다 그녀가 망설임 없이 돈을 꺼내는 모습이 더 대단해 보였다. 결국 나는 그녀의 도움 덕분에 그 약값의 절반을 지불하고, 생애 처음으로 고양이 약을 샀다.
"야, 왜 안 먹어. "
내 아들이 아플 때 처음 약을 먹이던 때의 내가 이랬을까. 약을 먹자마자 도로 뱉어내는 녀석을 보자 화가 올라왔다. 왜 내 눈앞에 나타나서 걱정시키더니 챙겨주는 약도 안 먹냐고, 그저 아픈 몸으로 자기가 늘 있던 자리에 앉아있고 싶은 녀석에게 화가 났다.
건물 입구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내게 한 마디씩 말을 건네거나 잠깐 나와 살찐이를 보고 지나갔다. 그리곤 답답한 마음에 시떼의 관리사무소로, 경비실로 이리저리 상황을 말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게 말했다.
"Allah" 신의 뜻대로.
결국, 내가 귀찮게 계속 약을 먹이려고 하니, 살찐이 녀석은 자리를 피해 버렸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살찐이가 나타났고, 다행히 약을 넣은 고양이 밥을 그 녀석이 먹자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다. 그리고 또 다른 날은 다시 집 앞에 나타나지 않아 괴로웠다. 그들의 말처럼 모든 것은 신의 뜻이건만 그 녀석에게 밥 먹이는 것 하나, 나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고통스러웠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다.
이제 겨우 일주일 치 약의 절반을 먹인 시점이었다.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떼의 청소부 아저씨들이 그 녀석을 빗자루로 몰아 종이 상자에 넣었다. 살찐이를 병원에 데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작 빗자루에 툭툭 치여져 잡힌 녀석은 그리고 다시 우리 시떼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동안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같은 건물의 튀르키예인 아주머니는 내게 말을 거셨다. 살찐이가 자주 앉던 자리를 내가 바라보고 있었던 탓이다. 성격 나쁘지만 배웅을 잘해주던 하얗고 통통했던 살찐이는 종이 상자에 실러 동물병원을 갔다. 그리고 노환으로 다시 회복되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아 길고양이를 보호하는 이스탄불의 동물 보호소로 보내졌다고 말씀하셨다. 영어와 튀르키예어가 뒤섞인 그녀의 말들은 내게 고스란히 잘 전해졌다.
"불쌍하다고 약 주면서 그대로 두면, 이 시떼 안에 있는 다른 고양이까지 병에 걸려 죽어."
그녀의 말의 의미를 너무 잘 알면서도, 나는 그동안 자유롭지 못했다. 그저 자기가 늘 있던 자리에 있고 싶었던 녀석에게 나아지게 하기 위해 약을 먹이려고 했고, 인간의 최소한의 의무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녀석을 확 끌어안아 집 안으로 들일 수 없는 내가 가진 변명과 욕심이었을까.
어느새 살찐이가 떠난 자리에 새로 자리를 잡은 고양이는 아들과 함께 놀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될 것이니 모두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베라트의 밤, 나는 무슬림이 아니건만 그들이 믿는 알라에게 기도해야 할 일이 생겼다. 나의 죄를 말해야 할 시간, 오늘이 지나고 그 어떤 흔들림 없이 그 어떤 거슬림 없이 자유로워지길 기도한다.
정말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임을 다시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