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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진하게 그리곤 연하게

이스탄불에 산다면 당신이 느낄 수 있는 것들

by 미네 Mar 11. 2025


 밤에 누워 들리는 에잔 소리, 갈색 차이, 자미(모스크), 고양이, 엄청 큰 개, 동물을 위한 빵부스러기, 공사장과 교통체증, 마치 버스를 타는 것 같았던 배 정류소, 정류소 옆에 있던 서점과 도서관, 어서 가자는 자동차 빵빵 경적 소리, 꽤 긴 거리를 하염없이 후진해서 골목을 나오는 무서운 자동차, 안전벨트 없는 택시, 꽉 찬 버스, 버스 안에 유모차를 밀고 올라오는 엄마의 패기, 검은 매연을 뱉어내는 오래된 차, 한편에 달리는 화려한 유럽의 명품자동차들.


 길거리에 꽃 파는 상인들, 오토바이 타고 세차게 달리는 배달 아저씨, 무단 횡단하는 사람, 그리고 자연스레 같이 무단횡단하는 나, 카페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마천루, 고가도로, 신호 없이  고불고불 이어지는 미로같은 도로, 한국어 하는 튀르키예인, 블랙핑크를 너무 좋아하는 청소년, 나를 연예인처럼 보고 사진 찍자는 청소년, 그 청소년을 걱정하는 엄마, 우리는 형제라고 말하는 튀르키예인,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식 이름을 스스로 짓고 내게 불러달라는 어머니,  6.25 전쟁을 나보다 잘 아시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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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깨끗한 자미의 화장실, 아이에게 유독 친절한 어른들, 내 기준엔 세상 느린 튀르키예 사람들, 그들 기준에 너무나 급한 나, 히잡을 쓴 어머님과 아가씨, 무채색의 패딩을 즐겨 입는 사람들, 시미트 빵, 가 엄청나게 박힌 라마잔 빵, 도로 벽의 캘리그래피, 교통단속하는 경찰관, 어디든 하늘 높이 펄럭이는 튀르키예 국기


 엄청나게 아래로 파놓은 지하철역, 거리의 사람들, 쓰레기통에서 돈이 되는 것을 뒤져 수레에 싣고 그것을 밀고 가는 사람들, 엄청난 크기의 쇼핑몰,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뒷정리를 해주시는 어머님, 화장실에서 상주하고 계신 청소 어머님, 내가 잘 못할까 휴지까지 뽑아주는 친절한 튀르키예인, 무수한 커피숍과 다양한 브랜드, 높은 고개에서 아래바라보는 멋진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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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수해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람들, 가끔 그러니까 내 실수도 네가 봐달라고 하는 넉살, 나쁜 튀르키예 사람 만나면 내야하는 꽤 비싼 외국인 요금, 튀르키예어하면 일단 무조건 잘해줌, 튀르키예어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일단 묻지도 않고 그냥 통과도 해 줌, 도로의 갈매기 똥, 개똥, 좁은 골목, 90도의 경사도 위의 집과 도로, 주차신만 가능한 좁은 주차장, 직진만 가능하다는 표지판, 오래된 가로수, 무수한 쓰레기통과 벤치, 버려진 담배꽁초, 다시 지붕 위의 고양이, 애완동물샵, 파랗다 못해 너무 높은 하늘, 다리를 지나서 바라보던 보스포루스 해협, 다시 낮잠 자는 고양이와 활공하는 갈매기들


 어느새 많이 큰 나의 아이의 귀여운 친구들, 함께 사는 이야기를 나눈 외국인 엄마들, 가끔 신세한탄도 응원도 서로의 이야기를 하던 한국인 엄마들, 아랫집 할머니, 경비 아저씨와 청소 아저씨, 오래된 집을 살만하게 고쳐준 기술자 아저씨, 바깥 산책을 즐기는 집고양이 까미, 동네 커피집, 과일가게 총각, 무수하게 찾아간 아들의 학교, 학교의 사람들, 부동산 아저씨, 같은 시떼에 산 이웃들, 관리비가 너무 비싸서 목욕이라도 해야 하지만 참 멋진 수영장, 집 안보다 밖이 좋았던 우리 집, 매일 잔디만 깎는 듯한 정원사 아저씨, 바람에 흔들거리던 새시, 지진, 휴교를 일으키던 눈, 그 새시 앞에 자라나는 덩굴나무와 밤새 울어대던 아기 고양이, 아들이 화단에서 가져와 키우는 달팽이, 똥 밟아 냄새나던 아들의 신발, 이제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고양이, 터져버린 세탁기, 무수한 트렁크 캐리어, 냉동 돼지고기를 담아 오던 아이스팩, 한국 반찬을 가방에 담고 결국 한국맛을 찾아다니던 유럽여행, 끝나고 나면 한가득 쌓인 빨래더미, 돌아서면 또 오는 아들의 방학 .


 자주 갔던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아들에게 내게 건네시던 사탕.


 이스탄불, 가끔 진하게 적혀 나를 슬프게도 했지만 때론 연하게 변하여 나를 기쁘게도 했던 것들,


 하지만 이곳을 떠나고 나면 내게 다시 연하게 잊혀져, 이 모든 것을 그리워할 이스탄불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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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를 미루고 있어 죄송합니다. 곧 라마단과 관련된 이야기와 글을 올리겠습니다. 요즘 제 글을 읽으면 너무 우울해서 마음에 안 들어서요. 아하하.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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