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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가득, 라테 한 잔

어느새 국제학교 4년 차, CIS 평가 학부모 인터뷰를 경험하고

by 미네

어느새 4년 차, 아들이 다니는 국제학교가 CIS 평가를 한다며 학부모와 진행하는 '학부모 면담'이 있다며 협조 요청 메일이 왔다.


애매한 시간, 오후 1시 15분.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참여할 오전 시간도 아니고, 아이들이 하교하는 3시 즈음도 아니다. 정말 진심으로 학교 평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가 없다면, 학교에 가야 할 이유가 없는 어정쩡한 시간이었다.

집안 청소를 하고 저녁반찬을 미리 만들곤, 오르막내리막 가득한 이스탄불 거리를 걷는다.


걸어서 20분, 이제 제법 따뜻해진 이스탄불 거리. 도로의 땅은 파헤쳐 있다. 커다란 중장비는 두두두 소리를 내고 도로는 갈라졌다. 동네 자미엔 사람들이 가득하다. 장례식이 열리고 있었다. 유명한 사람이 돌아가셨나 보다. 줄지어 서 있는 화환들을 뒤로하고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향했다.

곧 오겠다는 외국인 엄마들, 오늘 올 세 명의 학부모들 중에 제일 먼저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유달리 나를 더욱 반기는 아들의 학교 선생님은 평소와 달리 사뭇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녀 옆으로 낯선 외국인들이 지나간다. 우리 학교 사람들이 아닌가 보다.


늘 쾌활하고 자유로운, 캐나다인 그녀는 평소처럼 커피를 마실지 물었다. 나는 내가 직접 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인터뷰 장소에 가져다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CIS 학부모 인터뷰담당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내게 평소와 다른, 거품 가득한 라테가 내게 건네졌다.


"이런 거품 가득한 라테를 만들 수 있는 커피 머신이 우리 학교에 있었구나! 아하하."


국제학교 4년 차에 처음 받아본, 선생님이 건넨 거품 가득한 라테 한 잔에 황송하기 그지없다. 그리곤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마치, 이스탄불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그날처럼 하나씩 예전 이야기를 꺼내본다.



2025년 5월 15일, 이스탄불의 시간으론 아직 '스승의 날'이다. 페이스북에 친구목록으로 뜨는 나의 옛 제자들. 몇 년 만에 로그인하니 뜬금없이 제자의 인사가 남겨있다.


잘 지내시냐는 물음이다. 나는 몇 개월 전의 메시지에 아주 뒤늦은 답장을 남겨본다.


"잘 지낸다. 너는 어떠냐?"


시간이 흘렸다. 우린 이제 '어른'이 되었다. 교복을 입고 내 앞에 앉아 있던 나보다 키가 크던 너도, 나이 들어 보이고 싶어 진하게 화장을 더하던 나도 모두 어른이 되었다.

그 시절, 교무실에서 지쳐 엎드려 자다, 노란색 믹스커피를 타서 교실로 들고 가던 나였다.


내일 학교에 손님이 오신다고 했다. 내가 일하던 학교엔 평소 복도에 없던 꽃 화분이 줄지어 섰다. 교사였던 나 또한 평소보다 청소에 더욱 신경을 써본다. 평소보다 길어진 청소시간에 아이들은 청소를 핑계 삼아 물장난을 쳤다. 장난을 치는 아이들 뒤로 혼내는 학생부장 선생님이 보인다.


"평소엔 안 하다 왜 청소해요!?"

"평소에 안 했으니 오늘은 해야지!"


교무실엔 한 움큼의 서류들이 줄지어 놓였다.

" 저걸 언제 다 읽을까? "

모든 게 처음이었던, 아주 여렸던 선생님의 아주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리고 학교 평가에 직접 참여해 주실 학부모님들의 자리는 도서관에 차려졌다. 각자가 쓸 펜과 종이, 학부모님의 명단이 정리되어 책상 위에 놓였다. 입장과 동시에 본인을 확인하는 과정을 진행하기 위함이다. 책상엔 학부모님을 위한 간식, 주스까지 가득히 놓여있었다. 우리의 소중한 학부모님들께서 설문지에 답을 하시다가 갑자기 당이 없어서 혹여나 쓰러질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하하.


그렇다. 학부모님, 그들은 교사였던 내게 무척 어렵고 소중한 존재였다.



이제 학부모가 되어 아이들이 없는 교실에 앉았다. 지난 3년을 함께했던 외국인 엄마 킴도 함께다. 작년에 알게 된 인도네시아 그녀도 다소곳이 자신의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내게 된 이유를 말해본다.


이미 함께 한 시간이 오래라서 그런 걸까. 사람 사는 모습이 결국 비슷한 탓일까.


결국 모든 질문은 왜 이 학교를 선택했냐 물음으로, 같은 대답으로 끝이 났다.

질문에 대한 세밀한 대답은 세 엄마의 국적처럼 모두 달랐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결국 모두 한 가지였다.


"이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각자의 최선을 다해서 그 시절 선생님이었던 나도, 현재 아들의 선생님인 그녀도, 그리고 이제 엄마가 된 그녀도 모두 한 자리에 있다.


한 때,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CIS평가원인 그녀는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한국인이 유달리 많은 이스탄불의 국제학교가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왜?'라는 질문에 나는 객관적이고 싶지만 나의 대답은 지극히 주관적일 것이라는 답변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국인이며, 한국에서 교사로 살았던 사람의 기준으로, 이 학교를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나의 말의 시작에 그녀는 깊은 공감을 표현했다.


그녀는 한국이 어떤지 아는 사람 같았다.


나는 객관적이고 싶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한국인의 관점으로 진실하게 모든 질문에 충실히 대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마치 마음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이상하게도 말을 할수록 거품 가득한 라테 한 덕분에 나는 더욱 총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참으로 대화는 즐거웠고 유쾌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껏 걸었던 길을 되돌아, 이제 본래의 자리, 나의 집으로 돌아간다. 자박자박.


가끔 우리의 삶에 거품이 있어야 하나보다.


모두 최선을 다해서 그런 것일까. 오늘의 라테는 어느 이스탄불의 커피숍의 커피보다 참으로 향긋했다.



https://www.cois.org/

학부모 면담동안 아이의 학교 교사는 없는 상태에서, CIS평가원들과 다른 학부모와 함께 차례로 현재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에 대한 소개 및 학부모 본인 소개, 본교를 선택한 이유, 학교의 강점과 약점, 개선해야 할 사항 등을 대화했습니다. 학부모로서 국제학교에서의 지난 4년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한국의 학교평가와는 사뭇 다른 인터뷰 형식이라 마치 상담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이 노력하신 만큼, 아이의 학교에 좋은 소식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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