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리히터 6.2 강진 속의 우리
지난주, 튤립 가득한 에미르간 공원은 마치 한국의 90년대처럼,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이스탄불 사람들은 아니 튀르키예 사람들은 다 이곳으로 나온 것만 같았다. 각 지역에서 온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평소라면 공원 내 차량 진입이 가능하지만 좀처럼 수월치 않았다.
튤립의 절정, 모든 생명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 봄. 튀르키예의 사람들은 너나없이 공원 가득한 꽃에 얼굴을 파묻었다.
공원 안 꽃보다 사람이 많은 탓이다. 사람이 가득한 공원은 차량 통제가 계속되었다. 조금 지친 듯한 부모들과 달리, 아이들은 풍선을 던지며 소리치고 다시 웃는, 그런 평범한 날들이었다.
4월 23일 수요일, 어제는 튀르키예의 어린이날이었다.
사람 많은 게 싫은 나는 이런 날 집에 있는다. 곧 돌아갈 한국. 빠르게 안정된 생활을 찾아가기 위해 남편과의 논쟁을 시작한다. 이것 다음에 이것, 그다음엔 이것, 차례대로 세워진다. 하지만 아직도 도대체 무엇이 미래를 위한 최선인지 알 수 없는 마흔 너머의 우리.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괜스레 불안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다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다툴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예산에 맞춰서, 변화된 상황에 맞춰서 가장 최선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잘하고 싶은 마음, 계획대로 진행시키고 싶은 그 욕심 때문에, 우리의 선택이 늘 최선이길 바라는 그 마음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마치 갑자기 땅이 흔들리듯, 그렇게 찾아왔다.
창문이 덜컹 거린다.
지진이다.
자그마한 식탁 주위에 앉아 심각히 이야기를 하다, 앞서 나눈 이야기도 다툼도 모두 잊고 작은 손 여섯은 머리를 감쌌다. 아까의 고민은 작은 식탁 아래서 싹 잊혔다.
땅이 흔들린다. 그러나 땅에 가까워지려고 머리를 감싸고 움츠리니 마음은 오히려 평온해졌다.
"당장 오늘 죽을 수도 있는데, 뭔 계획이냐. 하하하."
리히터 6.2의 지진이 끝나고 한참을 동네 밖을 어슬렁거리며 걷다 집에 돌아와 김밥을 싸서 먹곤, 지진대비 가방을 싸서 현관 앞에 놓았다. 그리곤 온 가족은 거실에 나란히 이불을 깔고 눕는다. 괜스레 불안한 마음도 같이 누웠다.
만약 우리가 헤어질 상황을 대비하며 모일 장소 1순위, 2순위를 나열해 본다. 집 근처 이스탄불의 공원들도 같이 이불 위에 누웠다.
다행히 어제의 강도 6.2의 지진으로 이스탄불 내의 사망자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백여 차례 여진이 있었다. 튀르키예 어린이날 행사로 축제가 계속되어야 할 학교는 결국 목요일, 금요일 이틀간의 휴교가 시작되었다.
나와 영어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이 모인 왓츠앱 대화창의 튀르키예 아버지는 수강생 모두의 안녕을 묻는다. 그리곤 알라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젊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진로 선택을 권했다.
"친구 여러분, 저는 공교육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이 이곳에서 교사나 교직원이 되는 것을 고려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 센터들은 매 학교 방학마다 바로 휴가를 가는데, 세상이 참 아름답네요."
구글 번역으로 옮겨진 튀르키예어는 지진으로 또다시 휴교를 맞이한 어느 맞벌이 아버지의 하소연이었다.
지진 상황을 알기 위해 튼 튀르키예 방송은 또 다른 뉴스를 전한다. 튀르키예의 줄어든 출산율을 이야기한다. 그리곤 연신 위기를 외친다.
위기, 위기, 위기! 몇 마디 아는 튀르키예어를 되내어 나도 '위기'를 사전에서 찾아본다.
아이들은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아이들은 휴교를 맞아 슬금슬금 늦은 오후에 이르러서야 흐린 이스탄불 위에서 공을 찼다.
내가 사는 시떼의 외국인 중, 가장 많은 구성원을 차지하는 일본인들은 어제의 지진은 없었던 일처럼, 모두 일본인 학교에 갔다 평소처럼 돌아왔다. 일본 정부가 관리하는 학사일정에 따르는 이스탄불의 일본인 학교는 같은 상황임에도 평소와 동일한 일상을 살았다.
다행히 백수인 나는 휴교를 맞이한 아들과 작은 식탁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하다, 창문 너머 하교하는 일본인 아이들을 바라본다.
어느새 저녁밥을 준비할 시간이다. 마치 어제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문 앞에 재난 가방이 더해진 채 밥을 차린다.
그런데 머리를 감싸기 전, 나는 남편과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다가 머리를 감싸고 들어간 건지. 모든 게 하얗다.
어제 이스탄불 집 작은 식탁 그 아래서 흔들린 건, 어쩌면 이스탄불 땅만이 아니었나 보다.
https://youtu.be/VyL18tFogWQ?si=5qfYxw6rpZvHfv-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