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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탄 Mar 08. 2023

짧은 머리 엄마와 긴 머리 아들

하노이에서 남자 머리처럼, 또는 여자 머리처럼

평생소원이었던 ‘반 삭발’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짧은 머리로 살아가고 싶었던 시기였다. 아이를 낳고 독박육아가 시작되자 나는 투블록 커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전까지는 베트남 미용실을 주로 이용해 왔지만, 이번엔 큰 마음을 먹고 비싼 한국 미용실 여러 군데에 커트 가격을 문의했다. 그러나 하노이에 있는 모든 한국 미용실에선 길이가 아닌 성별에 의한 ‘핑크 택스’ 가격이 책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남자랑 똑같은 머리 스타일을 해도 여성 커트는 돈을 더 내야 하나요?’라는 내 반박에 정확한 답을 주는 곳은 없었다. 분명 억울한 ‘핑크 택스’였지만 나는 이번 한 번만 눈감기로 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 커트 가격의 차이가 가장 적은 한국 미용실을 찾아갔다. 사방에 물건들이 가득 찬 작은 공간, 엄청나게 말이 많은 한국인 남성 미용사가 거울 앞 의자에 앉은 내 요구를 듣더니, 내 뒤쪽에 앉아 만두와 놀고 있던 남편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짧게요? 사모님, 사장님한테 허락은 받으신 거죠?”


내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해졌고 당황한 남편은 내 눈치를 봤으나 미용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 채 능글맞게 웃기만 했다. 큰소리를 치고 뛰쳐나올까 했지만 그런 통쾌한 장면은 내 상상 속에나 있을 뿐, 거울 뒤로 보이는 천진한 만두의 모습에 의자에 붙은 내 엉덩이는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제 머리 자르는데 왜 남편한테 허락을 받아요?’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를 했고, 소심해진 마음 때문에 투블록 대신에 그냥 짧게만 잘라달라고 요구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나는 집 근처 베트남 미용실에서 다시 투블록 커트에 도전했다. 원하는 스타일을 주절주절 설명하니, 나이 어린 베트남 남자 미용사가 ‘아, 남자 머리처럼요?’라고 말했다. ‘남자처럼’이라는 말이 거슬렸지만, 말 그대로 ‘남자 요금’을 받았다. 그곳은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핑크 택스’가 없다는 이유로 내 단골 미용실이 되었고, 두 번째 방문부터 미용사와 나는 ‘남자 머리처럼’이 아니라, ‘이전 내 머리처럼’이라는 말로 합을 맞추게 되었다.


사실 머리가 짧으면 더 손이 많이 가고 자주 다듬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나는 몇 년째 짧은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내 아이뿐 아니라, 만두의 베트남 친구들, 그리고 하노이에서 만나는 많은 한국 아이들 마저 나를 처음 보고는 ‘남자 머리 같아요.’, ‘왜 아빠처럼 머리 했어요?’라는 질문들을 서슴없이 했기 때문에 더 오기를 부렸다. 나는 하노이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머리가 짧은 엄마’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리고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어린 만두는 머리카락이 바짝 잘려나가는 소리에 기겁을 하며 울어대곤 했다. 달래주려 해 봐도 미용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드라이기의 큰 바람 소리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어렵게 만들었다. 미용실을 멀리한 아들 덕분에 나는 어느새 이웃에서 얻은 이발기와 미용 가위로 아이의 머리에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하노이의 추운 겨울이 되면 ‘언젠가는 아이가 거부할’ 지도 모르는 바가지 머리를 해줬고, 무더운 여름이 되면 땀이 많은 아이를 위해 6mm 길이로 옆머리와 뒤통수를 시원하게 밀어주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입학을 1년쯤 앞둔 어느 날, 만두는 갑자기 가까이 지내던 형의 파마를 눈에 새기더니 자신도 파마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보였다. 유튜브를 따라 하던 미용 실력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나는 ‘아이의 마음이 다시 바뀔까’ 싶어 냉큼 아이의 손을 잡고 미용실로 달려갔다. 똥그랗고 큰 얼굴 위로 복슬복슬 가늘고 부드러운 갈색의 털실들이 얹혀 있는 듯, 만두는 난생처음으로 굵게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에 자꾸만 웃음이 났지만 만두는 어색함도 잠시, 다행히 자신의 모습을 맘에 들어했다.


두 번의 파마 후, 그 컬이 반쯤 풀린 귀밑 단발머리를 한 채로 만두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Covid-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입학식을 했고, 그때부터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반에서 유일한 한국인 학생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만두는 충분히 눈에 띄었지만, 컴퓨터 화면 속에 칼같이 짧은 머리를 한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 부스스한 만두의 머리 스타일은 유독 독보였다. 이러나저러나 눈에 띄는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 우린 오히려 ‘뭘 해도 상관없다’는 용기가 생겼다. 온라인 수업이 2개월 차 만두는 ‘혼자서 해보겠다’는 독립 선언을 하며 옆 자리에서 앉아있던 엄마를 방 밖으로 내쫓았다. 첫 수업에서 베트남어 인사말 한마디 밖에 할 줄 모르던 아이의 노력과 성장이 참으로 고마웠지만, 여전히 선생님의 질문에 더듬거리며 간신히 문장을 만들어가는 수준이었기에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홀로서기 며칠 째, 오전 수업을 마치고 방에서 나온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만두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이의 울음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 오늘 수업시간에 친구들이 놀렸어."

"왜? 뭐라고 했는데?"

"머리핀은 여자가 하는 건데…… 나보고 여자래."

"뭐? 만두 여자야?"

"아니! 나 남잔데!"

"남자는 핀 꽂으면 안 돼?"

"아니~ 되는데,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잖아."

"근데 만두야, 머리에 핀은 왜 꽂은 거야?"

"머리가 기니까. 엄마가 자꾸 커튼 열라고 해서."

"그럼 머리는 왜 기르는 거야?"

"기르는 게 좋으니까."

"그래. 좋으면 하면 되는 거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정말 용감한 건데, 그 친구들은 아직 그걸 모르나 보다."

"친구들은 왜 모르지?

"친구들 주변엔 그걸 알려주는 어른들이 아직 없나 봐. 아쉽네."

"그래?"

"근데 만두가 친구들 말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하고 싶은 데로 하는 용기를 보여주면, 나중에 그 친구들도 그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게 될 거야."

"응."

"이따 오후 수업할 때는 핀 빼고 할까? 아니면 머리 고무줄이나 머리띠로 바꿀까?"

"아니! 나 계속할 거야. 이따가도 무지개 핀 계속하고 수업할 거야."

"정말 괜찮아?"

"응! 나 무지개 핀 좋아해."

"그래, 좋아!"


아이가 놀림을 받는다니 소심한 어미는 ‘그냥 머리카락을 자르게 구슬려볼까’ 하고 잠시나마 흔들렸지만, 먼저 용기를 내준 건 만두였다. ‘맞아, 앞으로도 베트남에 계속 살면서 편협한 시선과 부당한 편견을 수 없이 마주하게 될 터인데 이 정도의 일로 후퇴할 수는 없지……’ 나는 내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만두를 꼭 안아줬다. 그리고 '남자도 머리가 길 수 있고, 여자도 머리가 짧을 수 있어! 내가 좋으면 할 수 있는 거야!'라는 베트남어 문장을 내 무릎에 앉은 아이와 함께 몇 번이고 연습했다. 그날 저녁 만두는 일찍 퇴근한 아빠가 긴 앞머리가 눈에 찌를까 머리핀을 꼽은 채 요리하는 모습을 봤고, 엄마가 알고 있는 머리 길고 섹시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어야만 했다.




어쩌다 머리를 기르게 된 만두가 계속해서 머리를 자르지 않게 된 건 바로 제주에서 홈 스쿨링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전이수’라는 어린이 작가 때문이었다. 전이수 작가의 그림책들을 여러 권 읽고 난 만두는 어느 날 한국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찰랑찰랑한 긴 머리를 휘날리는 이수형의 일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 속에서 이수 형은 머리띠를 하고 뒤로는 머리카락을 늘어놓은 채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긴 머리를 말총처럼 하나로 묶은 채 자유롭게 뛰어다니기도 했다. 지난여름에 베트남 중부의 ‘호이안 한 달 살이’에서 만두에게 좋은 기억을 주었던 미국인 할아버지 ‘조셉’ 역시 그런 말총머리를 한 터였다. 흔하지 않았지만 만두가 ‘머리 긴 남자’를 만난 것은 이수 형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가발이 필요한 암 환자들을 위해 머리를 기르고 있다’는 이수 형의 이야기를 들은 만두는 결국 본인도 머리를 계속 기르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수 형처럼.


“엄마, 나 몇 센티 남았어?”

“뭐? 머리카락?”

“응. 25 되려면 나 얼마나 남았어?”

“어디 보자…… 음.. 한 5cm 정도 남은 거 같은데?”

“어?? 아직 5cm나 남았다고?”


2학년이 되어 산수시간에 한창 길이 단위를 배우고 있던 만두는 자기 손바닥보다 작은 5cm의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 한 번에 가늠하지 못했다. ‘한 달에 1cm씩 자라는 머리카락이 5cm나 자라려면 무려 다섯 달이 필요하다’는 곱셈 계산도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애지중지 기른 머리가 25cm가 되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마도 만두는 이번 여름 방학을 보내고 나면 자기 말대로 ‘아픈 사람들에게 머리카락을 만들어 주는 멋진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머리카락을 기증받아 ‘소아암 환자’들에게 가발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베트남에는 2015년에 만들어진 ‘베트남 여성 유방암 네트워크(Mạng lưới ung thư vú phụ nữ Việt Nam)’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단체는 전국에 43개의 ‘머리카락 도서관(Thư viện tóc)’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머리카락 도서관'을 통해 매년 약 2,000~2,500명의 기증자와 가발이 필요한 유방암 환자를 이어주고 있다. 기증을 원하는 사람은 규정에 맞게 자른 머리카락을 지정된 병원이나 미용실로 보내거나, 지정 미용실에 직접 가서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다. 외국 문화의 유입으로 최근 들어서 파마를 하거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것이 베트남의 신여성들을 중심으로 퍼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베트남 전통 안에서 ‘긴 생머리’는 곧 ‘여성’을 상징하며 대부분의 노인 세대는 여전히 ‘자르지 않은 긴 머리’를 고수한다. 길거리에 나란히 앉은 여성들이 서로의 늘어진 긴 머리 사이에서 흰머리를 뽑아주는 모습을 보는  어렵지 않다. 긴 머리카락, 그것도 엉덩이까지 오는 엄청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들이 많다 보니 미용실에서 돈을 주고 머리를 감고 마사지를 받는 문화 역시 보편적이다. 어느 시골 구석을 가도 미용실에 누워 긴 머리 감고 있는 여성들이 존재한다. 만두네 반 긴 머리의 여자 친구도 이틀에 한 번씩 엄마가 등록해 놓은 단골 미용실에 홀로 가서 머리를 감고 온다고 했다. 이런 베트남에서 그 ‘긴 머리카락’을 잃어버린 여성 암환자는 얼마나 상실감이 클까?




베트남에서 여성이 짧은 머리를 하는 것만치 남자아이가 머리를 기르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두는 머리카락 기장이 귀 아래를 훌쩍 넘어가면서부터 ‘이수 형’처럼 머리띠를 하거나 머리를 묶어야만 했는데, 그건 동네에서 오지랖 넘치는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에게 아주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베트남에서 만두의 긴 머리를 보고 ‘멋지다’라는 표현을 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면, 나머지 99명은 ‘왜 남자애가 여자애 머리를 했냐’며 웃거나 되물었다. 늘 빼먹지 않고 만두의 머리에 이목이 집중되는 곳은 바로 아파트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에서 아기를 안거나 유모차에 태우고 있는 베트남 할머니들은 어김없이 아직 말을 못 하거나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들을 대신해 만두에게 이런 인사를 건넸다.


“안녕, 언니(누나)!”


처음에는 긴 머리 남자아이를 보는 어색한 시선에 만두도 ‘나 남자인데..’라며 엄마에게만 들리는 작은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나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을 잘못 보는 시선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여자니? 남자니?’ 하고 직접 묻는 사람에게는 ‘저 남자예요.’라고 또박또박 대답하기 시작했고, ‘왜 머리를 여자같이 길렀니?’하는 질문에는 ‘기르고 싶어서요.’라고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머리 스타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면 ‘암에 걸려서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들한테 줄 거예요.’라는 설명 뒤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전 제 긴 머리가 좋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아빠보다 짧은 투블록 스타일로 머리를 자르고 온 엄마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만두였다. 평소에 원하는 건 딱히 없지만 ‘엄마가 공주님처럼 머리카락을 한 번만 길게 기르면 좋겠다’고 말하던 아이였다. 그런 만두는 어느새 여러 시선들 사이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지켰고, 온라인 수업이 끝나고 처음으로 간 학교에서는 긴 생머리 혹은 꽁지머리를 한, '나처럼 머리 긴 형'들을 하나 둘 찾아내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사랑하게 되었듯, 어느새 엄마의 짧은 머리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어느덧 같은 반 친구들은 만두에게 더 이상 ‘왜 남자가 머리를 기르는지’, ‘왜 여자처럼 고무줄을 묶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만두네 엄마는 '짧은 머리 아줌마', 만두는 '긴 머리 남자 친구'일 뿐. 


3학년이 된 만두는 베트남 여성 유방암 네트워크와 협력하는 하노이의 한 미용실에 찾아가 고대했던 25cm의 머리카락을 기증했다. 3년 가까이 어렵게 기른 머리카락 세 묶음은 각각 3초 만에 잘려 버렸다. 긴 머리에 익숙했던 만두는 짧은 머리가 예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며칠 뒤 '다시 기를래?' 하는 어른들의 물음에는 더워서 당분간은 싫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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