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록수집가라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와중에 가까운 전주에서 기록문구페어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J에게 "문구 페어 가자! 금요일 뿌시자!"라고 보냈었다. 평소 연필을 좋아하던 내게 흑심(연필가게)이 참여하는 페어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한 달도 넘게 남은 문구페어를 기다리며 매일매일 라인업을 살펴보던 어느 날이었다.
J : 기록수집가 모집한다! 필사한 거 사진 찍어서 얼른 내라!
나 : 너도 할 거니? 같이 한다면 해보지!
J : 그래! 오늘 나 못하니까 내일 할 테니까 먼저 해!
나 : 응. 내일 마감이니까 까먹으면 안 된다?
이렇게 나는 기록수집가에 지원하게 되고, 나의 친구 J는 정말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물론, 난 안 될 줄 알았다. 고작 필사노트가 선정될까 싶은 마음이 컸다. 선정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록수집가에 선정되어서 얼떨결에 오프라인에서 나의 필사 노트를 선보이게 되었다.
만년필을 이용한 기록과 연필을 이용한 기록이 뒤섞인 탓에 장마철의 택배를 여러 겹으로 포장하여 겨우 보내었다. 번지면 끝인 만년필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이었는데, 다행히 무사히 도착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문구페어를 기다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중 두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J : 셀러 추가 모집하는데, 해볼래?
나 : 되겠냐?
J : 신청만 해보는 거지! 안 될 수도 있지만.
나 : 나는 팔 게 없단다. 친구야...
J : 포토카드 팔아! 나는 떡메랑 스티커를 좀 팔아야 하거든?
나 : 되면 어떡해? 나 낯가림 심하고 낯선 사람 만나면 우체통 되는 거 알지?
J : 걱정 마! 넌 옆에서 놀고 있어! 되면 내가 팔게!
친구의 농간에 넘어가 셀러 신청까지 하고 말았다. 물론 친구의 이름으로 하고 나는 놀러 가려는 속셈이 컸다. 단지, 하나 마음에 걸린 것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 내내 매대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토요일에 가족 여행이 있었고, 당연히 선정되지 않을 거란 생각(생전 처음 하는 셀러라서 아무런 판매 기록이 없는 데다 SNS는 그저 책만 가득함.)으로 신청한 거였으나, 그렇다. 왜 난 셀러가 되고 말았는가.
장대비를 뚫고 우린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나서 로고를 만들고 상품사진을 찍고, 제작을 급하게 진행하였다. 시작은 얼떨결에였으나, 내 생애 첫 플리마켓의 셀러는 꽤 재밌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처음으로 내보이는 내 포토카드를 보고 예쁘다고 해주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쉽게 얼굴이 붉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소수의 소중한 인연을 만나고, 많이 웃는 날들이었다. 꽤 재밌는 거구나. 내가 만든 것을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는 것은.
페어가 끝나고 셀러로서의 짐과 기록수집가로서의 짐을 챙겼다. 포토카드가 생각보다 많이 팔려서 그것은 가벼워졌는데, 나의 필사 노트들은...... . 무거운 마음으로 필사노트를 챙기러 전시 공간으로 갔다. 노트들을 챙기는데 스태프분이 다가오셔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이렇게 써요? 사진 많이 찍어가셨어요." 순식간에 빨개진 얼굴로 "가.. 감사합니다." 하고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자, 이제 양손 가득 무겁게 챙긴 짐을 가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생애 첫 전시, 생애 첫 셀러.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