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셋 젊은 엄마와 늙은 딸의 더부살이 (14)
엄마와 나는 비슷한 것도 많지만 다른 점도 꽤 있다. 내 나이의 시간만큼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니 어쩔 수 없이 공유하는 것이 많으니 공감하게 되는 폭이 넓어진다. 반면, 사회생활을 통해서 얻는 일의 경험과 관계맺는 사람들, 연령에 따른 문화 차이, 성향의 차이도 있다. 어느 가족, 어느 구성원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똑같은 사람은 없지만 엄마와 나의 다른 부분은 왜 그렇게 다른지, 그리고 달라서 힘들어지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특히, 정리 문제가 그렇다.
정ː리(整理)
명사
1. 한군데에 모으거나 둘 자리에 두거나 불필요한 것을 없애거나 하여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
2. 일정한 순서나 체계나 조리를 가진 상태가 되게 하는 것.
<출처: 옥스포드 사전>
사전의 정의에서도 보듯, 정리는 종류가 비슷하거나 쓰임이 같은 것을 한 곳에 모으거나 불필요한 것을 없애면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일정한 순서와 체계를 가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엄마와 나의 정리는 좀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다. 엄마는 물건을 포개두거나 쌓아두는 편이고, 아니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찾기도 어렵게 쌓아두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내일 입을 옷은 그냥 눈에 띄는 자리, 화장대 의자 등받이에 걸어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바로 당장 사용할 것이 아니면 원래 있어야 할 그 물건의 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방 양념통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엄마는 한 번에 많은 양을 유리병에 담아 주방 수납장안에 넣어놓고 사용하고 싶어하시지만 나는 한 동안 쓸 수 있는 양만큼 양념통에 담아서 조리대 한 쪽에 정렬하여 바로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냉장고 속은 더 그렇다. 난 음료수, 반찬, 장류, 소스류 각 종류대로 나누고 음료수 같은 것은 일렬로 줄 세워놓고 유통기한에 따라 마치 편의점처럼 선입선출하기를 바란다. 엄마는 엄마 나름의 정리 방식이 있는데 음식을 많이 했을 때는 양에 맞는 큰 통에 담아놓았다가 반 이상 먹어갈 쯤에는 음식 양에 맞게 작은 반찬통으로 다시 옮겨담아놓아야 한다. 대파나 다진 마늘도 먹기 좋게 손질해서 대용량으로 하나의 봉투에 담아 비닐노끈으로 묶어놓으신다. 내가 그렇게 조금씩 나누어 작은 통에 담고 차곡차곡 정리해놓자고 해도 번거롭다 하시고 싫어하신다. 소분해놓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신다. 번거롭다거나 소위 장난질(?)하는 것 같다고 하시는 이유인데 나로서는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서로 정리하는 방식도 편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니 집안을 정리하고 가꿔야 할 일에는 번번히 부딪히게 된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실갱이를 하다 결국 어느 한 쪽의 뜻에 따라 정리하고 만다. 물론 지금까지 대부분은 엄마의 뜻에 따르게 되었지만, 한 고집하는 나도 엉덩이를 깔고 양보하지 않을 때도 간혹 있었다. 자신의 뜻이 꺽인 쪽은 풀이 죽어 있거나 입이 나와 있거나 못마땅해하기도 하지만 평화를 위해서, 더 깊은 갈등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6개월 전에 서울 은평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오래된 단독주택과 아파트 사이에 새로 생긴 아파트와 빌라까지 여러가지 형태의 집이 섞여있는 동네인데 우리는 신축급의 빌라로 이사오게 되었다. 신축급이라고 한 것은 지어진 지는 몇 년 되었는데 건축주의 아들이 살려고 하다가 개인 사정으로 그냥 비워두어서 아무도 살지 않은 새 집이었기 때문이다. (중개하는 사람이 전해온 이야기니 믿거나 말거나) 먼지는 좀 앉았지만 아무도 살지 않은 거의 새 집 같은 곳으로 이사를 오니 엄마도 새로운 마음으로 정리하고 꾸미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사갈 집에 들어갈 살림살이는 니가 알아서 고르고 주문해
정말? 그래도 돼? 그래도 엄마가 같이 봐줘야지
난 됐어. 그냥 이번에는 따라갈거야. 그러니까 알아서 해.
엄마는 이사갈 집에 들어갈 살림살이며 가구며, 배치까지 다 맡기겠다고 하셨다. 뭐 대단한 살림살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운동장만한 넓은 집도 아니어서 이것 저것 꾸며놓을 것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사는 가족들에게 큰 일이고 중요한 일인데 늙은 딸래미한테 다 맡기고 일임한다고 하시니 엄마로써는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었다. 엄마는 결심한듯 이야기하셨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의 뜻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주방에는 이런 정리함을 놓으려고 한다, 거실에 소파는 이런 색이 어떠시냐, 이 테이블은 계속 사용하는 게 좋겠는지 등등 계속 묻고 동의를 얻은 후에야 구입했다.
엄마와 나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서로의 정리방식을 제대로 나누고 더 좋은 것은 배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