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천을 사랑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야겠다. 포천을 사랑해야 할 것 같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어도, 직감적으로 느끼건대 아주 오랜 시간을 포천에서 살아야 할 것 같으니 사랑하는 편이 감정적으로 좋을 듯하다.
포천은 나날이 발전한다. 감히 장담하건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의 유년 및 학창 시절의 포천은 송우리 등 극히 일부 동네를 제외하고는 논밭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저곳 공장지대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당연히 땅값이 싼 곳을 찾아오느라 북으로 북으로 공장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 덕에 내가 운영하고 있는 모텔도 덩달아 영업 면에서 조금의 이득을 얻고 있는 형편이다.
신북, 용정, 양문 등 공단 지대가 생겨났고 그에 따라 공장 노동자들이 포천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회사 회식 등을 하고 시간이 늦으면 모텔에 와서 하룻밤을 묵고 간다. 혹은 사적으로 모텔에 오는 사람도 종종 있다. 게 중에는 자주 모텔을 이용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도 그런 사람이었다. 작년 5월이었을 것이다. 여름 관광철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투숙객도 별로 없는 수요일이었다. 그는 늦은 시간에 홀로 모텔에 들어섰다. 청색의 작업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인근 공장의 노동자이겠거니 했다. 처음에는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냥 주변 공단 지역의 노동자에게 관심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 후 그는 간혹 모텔을 찾았다. 어느 날은 술을 많이 마신 듯 취한 모습이었고, 또 어떤 날은 동료들과 함께 모텔의 현관문을 밀고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도 나에게 “방 있습니까?”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서너 차례의 방문으로 그의 생김새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키는 크지 않으나 다무진 인상을 주는 체격이었다. 딱 봐도 힘깨나 쓰는 몸집이었다. 얼굴은... 잘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것까지는 모르겠으나 약간 처진 눈매가 선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름이 끝날 즈음 그의 방문은 그쳤다. 나는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릴 아무 이유가 없었다. 그가 다시 모텔에 나타난 것은 가을이 한창 무르익을 때였다. 뜻밖에 그는 여자와 함께였다. 반가웠다. 그러나 내가 반가움을 드러내기에는 그의 얼굴이 너무 어두웠다. 아침에 그들이 나가는 것은 보지 못했다. 다시 그의 방문은 중단되었다.
나는 새벽녘이면 잠을 잔다. 투숙객들은 방 열쇠를 안내대 앞에 놓인 수거함에 놓고 모텔을 떠난다. 그러면 그들과의 인연은 끝이 난다.
바람이 점점 날을 세우고 있었다. 몇 잎 남지 않은 나뭇잎은 바람과의 싸움에 안간힘을 쓰다 지쳐 떨어졌다. 슬슬 눈치를 보다 이제 기세를 세운 겨울이 진군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밤에 과음을 했다. 대학 동창이 찾아와 지나간 일을 안주 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신 술자리가 자정을 넘겼다. 내가 없는 날은 장 씨 아저씨가 모텔을 봐준다. 고마운 아저씨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동창과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와 그에게 객실 하나를 내어 주고 나는 내실에 들어가 곯아떨어졌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혼이 나간 모습으로 내실로 달려 들어왔다.
“아이고 이를 어째. 사람이 죽은 것 같아요.”
나는 그 소리가 꿈속에서 들리는 소리인 듯했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사장님, 사람이 죽었어요!”
아주머니는 악을 쓰며 나를 깨웠다. 그 소리가 마치 망치로 머리를 치는 듯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섰다.
“몇 호예요?”
“삼백오 호예요.”
단숨에 객실로 뛰어 올라간 나는 화장실 욕조 안에 축 늘어진 채 누워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욕조 밖으로 내놓은 남자의 한쪽 팔 손목에 검붉은 피가 엉겨 있었고, 그의 손가락 끝에서 떨어진 피는 하수구로 붉은 시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안내데스크로 내려와 경찰에게 신고를 하고 CCTV를 돌려 보았다. CCTV 화면에 그가 나타났다. 그는 밤 11시 객실로 들어갔다. 여자와 함께였다. 이후 객실을 드나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는 새벽 5시경에 모텔을 나갔다.
경찰들이 몰려들었다. 이후 며칠간은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고 정신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남자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이 내려졌다. 사망 추정 시간은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지만, 객실에서 사람이 죽은 것은 모텔 운영을 맡은 후 처음이었고 꺼림칙한 기분은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는 전혀 생각지 않고, 단지 죽음의 장소로 나의 모텔방을 택한 것을 원망하였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남자가 죽은 그 방을 손님들에게 대여해 주지 않고 비워두었다.
평소 안면이 있는 조 형사가 들려준 남자의 자살스토리는 이러했다.
남자는 애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나도 알만한 여인인듯하다. 함께 모텔에 투숙했던 여자이겠거니 했다. 무슨 삼류 연애 소설 이야기 같지만, 남자는 시골 출신의 공장 노동자였고, 여자는 대학을 나온 회사원이었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다. 여자는 남자의 존재를 집에 알렸다. 여자의 집안에서 탐탁하게 생각할 리가 없었다. 집안의 반대에도 여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욱 문제는 남자의 자격지심이었다. 남자는 여자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 자신의 처지가 너무 초라했다. 급기야 여자의 집에서는 다른 남자를 소개했고, 그 남자와의 결혼을 압박하였다. 남자가 죽기 며칠 전, 여자는 남자에게 찾아와 같이 도망가자고 했다. 남자는 그것이 오히려 여자를 더 불행하게 할 것 같아 거부했다. 남자는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 여자를 위한 최선의 길인 듯하여 세상과의 이별을 선택했다.
조 형사가 참고인으로 소환한 함께 투숙한 여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라 했다. 조 형사의 이야기는 너무 통속적이어서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스토리 중에서도 너무나 흔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뒷부분의 이야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조 형사의 창작인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살의 동기가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조 형사는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사건 당일 경찰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귓전으로 얼핏 들었다. 사내가 유서를 남겼는데 그가 무슨 실종 사건의 용의자였다는 것이었다. 조 형사는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나의 바람은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고 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에게 그 사내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린 순수한 청년이 아니라, 제 앞가림도 못하는, 세상을 살아갈 강단도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며칠 간의 성가신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내가 죽은 방이 꺼림칙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여자가 나타났다. 남자가 죽은 지 일 개월 만이었다.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여자는 삼백오 호 방을 요구했다. 사내가 죽은 그 방을 굳이 요구하자 나는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그 여자였다. 순간 온몸이 쭈뼛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그 방을 거부할 하등의 명분도 없었다.
자줏빛 코트의 여인은 키를 받아 들고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갔다. 여인이 머물다간 자리는 차가운 겨울바람의 기운이 남은 듯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밤새 3층 복도를 비추는 CCTV를 주시했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자 묵었던 손님들이 하나둘씩 모텔을 빠져나갔다. 여자가 묵었던 삼백오 호는 9시가 넘어도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는 걱정에 조심스럽게 삼백오 호의 방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불안한 마음으로 연신 방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
주머니에서 비상키를 꺼냈다. 너무 불안한 마음에 열쇠 구멍에 열쇠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비껴 나가기가 여러 번이었다. 가까스로 문을 열었다. 몸이 쓰러질 정도로 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마치 숨이 멎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봐요!”
여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여자가 눈을 떴다.
“인기척이 없어서...”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여자의 어깨까지 덮였던 이불이 조금 걷혔다. 여자는 알몸이었다. 여자가 민망한 모습으로 침대 옆에 서 있는 나를 잠시 빤히 쳐다보았다.
“걱정했습니다.”
“걱정을요? 왜요?”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같이 왔던 분이...”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모텔이 운영하고 처음 겪은 일이라..., 그래서 혹시나 해서.”
“제가 혹시...”
“아...저...그냥.”
“저는 그럴 용기도 없어요.”
여자가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자조적인 웃음인 듯했다.
“안 오네요. 밤새 기다리면 올 줄 알았는데.”
“아마 몰래 왔다가 지켜보고 갔을 겁니다.”
“그럴까요?”
“네.”
나는 단정적으로 대답했다.
“아직도 지켜보고 있을까요?”
“...”
나는 그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여자가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를 안아 주실 수 있으세요?”
여자의 말은 쇠몽둥이가 되어 나의 머리를 내리쳤다. 여자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나의 손을 잡았다.
어찌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날의 정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짧은 정사가 끝나고 여자가 말했다.
“이제 그도 나를 버릴 거예요. 나도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어찌할 바 모르고 있던 나에게 여자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순간이 현실의 사건 같지가 않았다. 여자가 떠난 후 멍하니 몇 시간을 보냈다.
내실에서 넋을 놓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이 평소와는 다른지 장 씨를 나를 보고 걱정스럽게 한마디 했다.
“어디 아프세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때 마침 텔레비전에서 철 지난 홍콩영화 돌아가고 있었다. 화질은 구렸고, 내용은...
‘천녀유혼.’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진희와 함께 본 영화였다.
영채신은 난약사에서 여인을 만났다네. 여인의 이름은 섭소천. 영채신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했지만, 그녀는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지. 귀신이었던 그녀는 지옥의 흑산노요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지. 불쌍한 섭소천, 더 불쌍한 영채신. 사람이 아니면 어떤가. 사랑이지 않던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지옥을 넘나들었고, 마침내 그녀를 구해 지옥에서 나온 영채신. 그러나 이미 날이 밝아 섭소천은 영채신을 만날 수 없게 되었지. 영채신은 섭소천을 곽북현에 묻어 환생을 빌어주고 길을 떠났다네.
침대에 누워 진희에게 물었다.
“귀신이 예쁘면 목숨도 걸 수 있을까?”
“너는 어때?”
진희가 되물었다.
“나? 자신 없어.”
“뭐가 자신 없어?”
진희가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목숨을 걸 수는 없지 않아?”
“바보.”
진희는 팔꿈치로 나의 옆구리를 푹 지르고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걸쳤다.
진희와는 오래 사귀지 못했다. 진희와 헤어진 후 여관방에서의 대화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대답이었다. 말이라도 그럴싸하게 해야 했다. 귀신이면 어떻고, 사람이면 어떤가, 사랑에 목숨을 걸 수 있다고.
텔레비전의 영화는 결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찍찍거리는 광동어의 발음이 귀에 거슬려 모니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 속에서 여자의 마지막 말이 생생하게 울렸다.
“이제 그도 나를 버릴 거예요. 나도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참을 곰곰이 집어보았다.
자신이 이렇게 더럽혀졌으니 남자가 자신을 찾지 않고 버릴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결국 나는 그녀를 오염시킨 도구에 불과했다.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해 겨울은 그렇게 깊어갔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
그리고 눈이, 눈이 하염없이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