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빛날, 경(炅) 1

by 마정열

나는 모텔의 주인이다. 모텔의 이름은 ‘나이아가라!’ 이름이 좋지 아니한가? ‘나이아가라’가 미국과 캐나다의 접경에 있는 폭포라는 것쯤은 세상사에 조금의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우리말 단어가 주는 느낌이 새삼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가?

‘나이아, 가라!’

요즘 한창 불리는 대중가요인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젊음을 되찾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반영하는 듯한 단어인 듯도 해, 모텔의 이름으로는 적격인 것 같다.


이 모텔의 설립자는 나의 아버지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하신 아버지가 퇴직금과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세운 모텔이다. 5층의 아담한 건물 1층에는 안내소 및 로비가 있고, 객실이 2개 있다. 2층부터 4층까지는 층마다 객실이 6개씩 있다. 5층은 가정집이다. 전에는 부모님이 살았고, 지금은 내가 살고 있다.


나는 이 모텔을 직장으로 삼고 싶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서 헤매고 있을 때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모텔을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재작년 봄, 작은아버지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부산에서 포천으로 밤길을 달려 올라오다가 트럭과의 충돌로 두 분은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모텔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경황이 없는 가운데 모텔의 운영을 맡고 보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망연자실하게 며칠을 보냈다. 다행히 예전부터 모텔 일을 봐주던 장 씨 아저씨의 도움으로 차츰 일에 적응해 나갔다.


포천, 내 생각이지만 낙후되고 별 볼 일 없는 도시인 것 같다.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는 늘 탈출을 꿈꾸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진학을 이유로 서울로 떠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동안의 백수 시절에도 포천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성화셨다. 괜한 집을 두고 할 일도 없으면서 왜 서울에 있냐고. 취직하면 다시 올라가더라도 지금은 포천으로 내려와 같이 살자고. 나는 취업을 위해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어머니의 성화를 견디어 냈다.


모텔은 만세교 바로 옆에 있다. 만세교가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서울에서 의정부를 거쳐 43번 국도를 타고 쭉 올라오다 보면 포천이 나온다. 포천에서 계속 올라가면 강원도 땅, 철원이다. 만세교는 43번 국도상에 있어 찾기가 쉽다. 포천의 중간 지역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신북면과 영중면의 경계에 있다.


만세교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3.1 운동 때 이곳에서 만세를 불러 만세교라 했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조선 초, 이성계가 함흥을 오갈 때 이 지역의 다리를 지났다 하여 ‘만세다리’, ‘만세교’라 불렸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포천의 중심지에서 떨어진 만세교 인근의 모텔이 무슨 돈벌이가 되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직접 운영을 맡고 보니 모텔의 수익은 의외로 괜찮았다. 백운계곡과 산정호수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주말이면 거의 공실이 없다. 또 인근에 양문공단을 비롯한 소규모의 공장이 은근히 많아 거기와 관련된 손님도 꽤 있는 편이었다.

43번 국도는 밤이 되면 차량의 통행이 뜸하다. 간혹 군부대의 차량이 야음을 틈타 대규모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 외에는 한여름 피서철이 아니면 듬성듬성 차가 굉음을 내고 모텔을 스치고 지나친다. 그럴 때마다 건물의 측면에 붙어있는 ‘나이아가라’라는 간판이 불빛에 번뜩인다.

남녀 한 쌍이 모텔로 들어선다.

“어서 오세요.”

남자가 안내대 앞에서 계산을 하고, 여자는 뒤에 쭈뼛이 서 있다. 계산을 끝내고 방 열쇠를 내어 주면, 방 열쇠를 받아 든 남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보고 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길게 하품을 한다.

남자가 비틀거리며 들어온다. 술에 취한 남자를 장 씨가 방으로 안내한다. 뒤이어 외국인 노동자 대여섯 명이 들어온다.

휴가철이 아니면 이런 날의 연속이다.


간혹 여자를 불러 달라는 손님이 있다. 여기는 그런 것 안 한다고 하면 그런 거 안 하는 모텔이 어디 있냐고 막무가내로 여자를 불러 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 난감하다. 몇 번을 거절하다 소란이 일 거 같으면 불법인 줄 알면서도 여자를 불러줄 수밖에 없다.

전화기를 든다.

“여기 나이아가란데, 애 하나 보내줘. 빨리.”

잠시 기다리면 승합차 한 대가 모텔 앞에 서고, 한 여인이 모텔로 들어선다. 선희다.

“몇 호예요?”

“사백삼 호.”

선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선희가 내린다.

“잘해 드렸어요?”

“......”

아무 말도 없이 모텔문을 나선 그녀는 기다리던 승합차를 타고 사라진다.

저년이 쌀쌀맞기는...”

나는 여자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이렇게 툭 내지른다. 듣는 데서는 절대 못 한다.


선희는 우리 모텔에 주로 오는 여인이다. 대부분의 여인들은 송우리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어, 먼 이곳을 꺼리는데 선희는 불평 없이 잘 와 준다. 그래서 고맙다.

자신을 데리러 온 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선희가 로비에서 서성거릴 때면 그녀와 몇 마디 나눌 시간이 주어진다. 아마 그녀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첫날이었을 것이다. 내가 처음 물은 말은 어디 사느냐는 것이었다.

“송우리에 살아요. 동생들과 함께.”

“송우리에서 여기까지 멀지 않아요?”

“돈 벌려면 멀어도 와야죠.”

“송우리에도 많을 텐데...”

말을 해 놓고 아차 싶었다. 안 해도 될 말이었다.

“나이가 많아 쉽지 않아요.”

선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받았다. 미안했다. 나는 여자의 얼굴을 흘낏 바라보았다. 낮은 조도 때문인지, 화장 때문인지 나이가 가늠되지 않았다. 대화는 진행되지 않았고, 어색한 침묵에서 나를 구원해 줄 차가 도착했다.


선희의 나이는... 잘 모르겠다. 짐작으로 나와 거의 엇비슷한 삼십 대 중반 정도인 거 같다. 그냥 지나쳐 보면 모르는데 자세히 보면 선희는 다리가 약간 불편하다. 그래서 노래방에는 잘 안 나간다고 한다. 예전 노래방에서 일할 때 동생들이 손님과의 다툼이 있었는데 선희가 싸움을 말리다가 밀려 넘어져 다친 거라 한다. 보도방 사장놈이 알려준 거다.


선희는 함께 일하는 그룹 중에서 연장자에 속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타고난 천성이 그러한지 동생들을 잘 챙긴다. 동생들에게 애로 사항이 있으면 선희가 나서서 사장에게 이야기한다. 그날의 싸움도 자기와는 관계없는 옆방에서 일어난 것인데 동생들이 술 취한 남자들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들다가 다친 것이라 한다.

“지 몸이나 챙기지, 바보 같은 년.”

보도방 사장놈이 선희의 이야기를 하다가 한 마디 내뱉는다.


간혹 이런 날도 있다.

선희가 울면서 내려오고 모텔문을 나선다. 내가 놀라 선희의 뒤통수에다 대고 묻는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잠시 후 남자가 내려오며, 나에게 대뜸

“아니 저년은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해야 할 거 아냐?”

하며, 화를 쏟는다. 이럴 때 나는 그냥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수밖에 없다.

“재수가 없을래니까...” 하며 투덜거리며 나가는 사내의 뒤통수를 한 대 패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은 그의 꽁무니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는 내 모습이 약간은 가련하다.

그리고 또 혼잣말로 주절거린다.

“선희 저년은 동생들 일 나설 때처럼 악을 써 저런 놈들 기를 죽일 것이지 왜 질질 짜고 지랄이야.”

말은 이렇게 해도 선희와 같은 직업여성을 보면 약간은 짠한 마음이 있다. 그리고 이런 날이면 이 짓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처음에 나는 선희의 성격이 진짜로 쌀쌀맞다고 생각했다. 말을 건네도 대답도 잘 안 하고, 눈도 잘 안 마주쳤다. 그러나 몇 차례 안면을 익히고, 한두 마디를 주고받으니 의외로 말을 따뜻하게 했다. 그래 이 표현이 정확한 거 같다. 내가 직업여성들을 많이 겪어 본 것은 아니지만, 직업여성들의 말에는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날이 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선희의 말에는 날이 없었다. 나직한 말끝에 얼핏 엿보이는 미소가 보기 좋았다.


선희, 아니 이제는 이름을 정확히 불러야겠다. 선희의 본명은 경아다.

나는 그녀의 이름이 선희로 알고 있으니 항상 “선희 씨”라고 불렀다. 하루는 “선희 씨”하고 부르니,

“내 이름은 경아예요, 빛날 경.”이라 한다.

유독 빛날 경을 강조한다.

“아버지가 빛나는 아이가 되라는 뜻으로 빛날 경에다 아이 아자로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런데 전혀 빛나지 않네요.”

그 말을 할 때 선희의 미소는 쓸쓸했다. 그래서 평범한 가명을 쓰기로 했다나. 빛나게 살지 못할 바에야 착하게나 살자고 선희라 이름 지었다 한다.

나는 이름을 잘못 지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을 착하게 살아봤자 누구 하나 너 착하게 잘 살았구나, 하고 알아주지 않는다. 착하면 바보같이 이용당하기만 할 뿐이다.

인생살이를 몇 년 하지 않은 나의 천박한 견해다.


경아는 우리 모텔로 일을 나오지 않는다. 벌써 몇 개월이 되었다. 경아의 소식이 궁금하긴 하다.

송우리에서 보도방 사장을 만났다. 그에게 경아의 소식을 물었다.

“경아? 아 선희. 나도 잘 몰라.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에 잠시 갔다 온다더니 소식이 영 없네.”

요 자식은 나보다 나이도 어린 게 꼭 반말이다. 저랑 나랑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닌데. 모텔을 맡아 운영을 하는 중에 여자를 요구하는 손님들 때문에 골머리 썩이고 있을 때 장 씨 아저씨가 소개해 준 녀석이다. 안면도 익히고 친목도 도모하자는 의미에서 두세 차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가 나보다 한 살 적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그에게 나이 차도 얼마 나지 않으니 말을 놓고 지내자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나의 불찰이다.

“가족하고 연락을 주고받나 봐?”

“가족 하고는 연을 끊고 사는데 친척들하고는 연락을 하나 봐.”

보도방 사장놈이 심드렁하게 말한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그년은 나이가 있어 갈 데도 없을 텐데.”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보도방 사장놈의 면상을 한 대 갈기고 싶었다.


사장놈하고 친하게 지내니 좋은 점도 있긴 하다. 보도방이 관리하는 아가씨들하고 안면이 조금씩 있어 그들로부터 경아의 이야기를 짤막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경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모텔 주인과 일 나온 여자가 무슨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겠는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그녀의 나이도 모른다. 단지 같이 일하는 여자들이 언니, 하고 부르니 그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만 어림짐작할 뿐이다. 그녀들로부터 주워 모은 경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 이야기도 정확한지 아닌지 그것은 모른다.


경아의 고향은 진주다. 경아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는 경아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어머니, 경아 그리고 남동생이 남았다.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역할을 충실히 이어받았다. 어머니의 모습에 식당 주인이 반했나 보다. 주인이 어머니에게 청혼을 했다. 경아가 고등학교 때였다. 어머니는 식당 주인아저씨와 결혼을 했고, 경아는 집을 나왔다.


딱 여기까지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중구난방, 전하는 사람마다 말이 다 다르다. 어떤 이는 경아가 친구의 꾐에 빠져 집을 나왔다 했고, 어떤 이는 새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나왔다고 했고, 어떤 이는 새아버지가... 그만두자, 상상하는 것도 역겹다.


어쨌든 그녀는 그때부터 거리의 여인으로 살아온 듯했다. 그게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삼십이 넘은 나이에 그리 유쾌하지 못한 인연으로 나와 만났고, 간혹 얼굴을 스치고 지내다가 포천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