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킬러, 빅맨 리틀 조 1

by 마정열

버스는 사내를 내려놓고 쏜살같이 자신의 길을 달려 나갔다. 사내는 잠시 버스의 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바짓가랑이를 툭툭 털었다. 먼지가 묻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실없는 행동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해를 찾았다. 오랜만에 보는 빛나는 태양이었다. 사나흘 내내 흐리거나 간간이 비가 오는 날의 연속이었다.

정오가 가까워졌나 보다.

고개를 완전히 젖혀야 해를 볼 수 있었다. 해를 본다는 거. 이것도 여유라 해야 하나. 굳이 해를 보려고 고개를 젖힌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버스가 사라진 저쪽에서 군용 트럭 몇 대가 줄지어 나타났다. 사내는 군용 트럭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바쁜 일정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군용 트럭은 점점 커지더니 순식간에 사내를 스치고 지나갔다. 군용 트럭의 화물칸에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추워 보였다. 그렇게 보였다.


사내는 군 생활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신체검사 결과 보충역으로 편입되었다. 나라를 지키기에 적합한 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고 주변의 사람들이 군을 제대하자 그들 대화의 주된 주제는 군대 생활이었다. 그들은 세상 고생의 전부를 군대에서 경험했다고 푸념을 하였으나 실상은 자신에 대한 우월감과 자랑이었다. 사내는 할 말이 없었다. 그들에게서 군 미필자를 대하는 무시의 눈치를 사내는 느끼고 있었다.


군용 트럭도 시야에서 사라진 한참 뒤다. 사내는 발을 두어 번 쿵쿵 굴려 신발의 먼지를 털어낸 뒤 길을 나섰다. 시외버스의 정류장은 띄엄띄엄 있어 모텔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한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 길을 걸었다.

공장 지대가 보였다. 외면했다.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다. 치욕적이었고, 삶은 엉망으로 헝클어졌다.

사내는 입 안의 침을 모아 힘껏 뱉었다. 가슴 한쪽이 뻥 뚫리기를 기대했으나 기분은 여전히 그리 개운치가 않았다.


한가한 오후였다. 골머리를 썩이던 연체 건도 어제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김 과장도 자리를 비웠고, 사무실에는 사내와 김 양밖에 없었다.

사내는 소파에 몸을 깊숙이 누이고 퇴근 후 무엇을 할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김 양도 별일이 없는지 거울을 앞에 두고 손톱을 다듬고 있었다.

사내가 김 양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더니 한 마디 던졌다.

“김 양아, 손톱 손질하면서 거울은 왜 꺼내 놓냐?”

“남이사...”

김 양이 하던 일을 계속하며 톡 쏘아댄다.

“저 뇬이..”

저년한테 말을 걸어 좋은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말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우 씨팔, 냄비라도 있으면 연애라도 할 텐데.”

사내는 김 양이 들으라고 냅다 한 소리를 내지르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휴대폰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저녁에 뭐 하냐?”

탱크 형님이다. 그는 고등학교 선배로 사내를 대부업체에 취직시켜 준 고마운 형님이다.

“저녁에 별일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 좀 잠깐 보자. 한 일곱 시쯤.”

“네, 형님. 달빛 카페에 가 있겠습니다.”


탱크 형님은 심부름센터 사장님이시다. 간혹 사내에게 간단한 일거리를 부탁한다. 그리고 수당은 항상 두둑하게 챙겨주신다. 그래서 고맙다.

사내는 이번에도 일거리를 부탁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적중했다.

“일 하나 처리해 줘.”

카페에서 만난 탱크는 사내에게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네 형님. 무슨 일입니까?”

“사람 하나만 처리해 줘.”

사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람을 처리하라니. 혹시...’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그런 일은 해 본 적이 없다. 지금껏 한 일은 누구의 소재지를 알아봐 주거나 미행하여 사진을 찍는 일이 고작이었다.

“별일 아니야. 길거리에서 그냥 시비 붙는 척하다가 혼만 내줘.”

탱크가 계속 말을 이었다.

“잘 아는 사람한테 부탁받았는데 내가 며칠 지방을 다녀와야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내가 나설 정도도 아니고.”

“넙치 있지 않습니까?”

넙치는 심부름센터 직원이다. 얼굴이 넓적한 넙치는 사내와는 막역한 친구 사이이자, 탱크의 심복이다.

“아, 이번 지방 건은 덩치가 조금 있어 넙치랑 같이 가야 돼.”

“그렇군요....”

사내가 말꼬리를 흐렸다. 사내의 미지근한 태도에 탱크가 다시 한번 호기롭게 말했다.

“야, 깡다구. 오랜만에 니 솜씨 한번 보여줘. 깡다구, 빅맨 조가 살아있다는 거 한번 보여줘 봐.”


빅맨 조, 오랜만에 들어보는 별명이다. 덩치는 작아도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사내를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정확히는 빅맨 리틀 조.

사내는 거절할 수 없음을 느꼈다. 더군다나 탱크 형님의 부탁이었다.

“그냥 혼만 내주면 됩니까?”

“그래, 별일 아냐.”

탱크는 사내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봉투를 열어보니 남자의 사진과 사는 곳의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누굽니까?”

“포천에 사는 공돌이야.”

“왜 이런 사람을 ...”

“몰라, 우리가 그런 건 묻지 않잖아.”

“네, 알겠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지?”

“네.”

“잘해 봐. 잘만 처리하면 이런 방면에는 꽤 괜찮은 일거리가 많아.”

탱크와 헤어진 사내는 홀로 길거리 포장마차의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봉투 속에서 사진과 종이를 꺼내 한참을 바라보았다.


경기도 포천시 정자산업단지 xx플라스틱(주)


무슨 사연인지 사진 속 남자의 눈매가 슬퍼 보였다.


사내는 며칠 동안 시간을 내어 공장 주위를 돌아다녔다. 대낮, 공장지대는 인적이 뜸했다. 간혹 물건을 실은 트럭만이 오가며 거리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사내는 목표물이 사는 곳을 확인해야 했다. 퇴근 시간을 기다려 공장을 나선 그를 미행하였다. 목표물은 공장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빌라로 들어갔다. 직원 숙소인 듯했다. 그곳이 숙소인지 확실하게 알기 위해 사내는 새벽 일찍 그곳으로 가서 몸을 숨기고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빌라에서 나왔다. 그것도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기 한참 전에. 숙소를 확인했으니 이제 실행만 남았다.


빌라 주위를 살펴보았다. 빌라의 뒤는 작은 야산이었다. 사내는 몸을 숨길 곳을 찾기 위해 산을 올랐다. 산은 높지 않았다. 산 정상에서 빌라 반대쪽을 보니 산 아래 모텔이 하나 보였다. 사내는 하늘이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모텔을 나와 산을 넘어 빌라로 가면 공장지대의 CCTV에도 찍히지 않는다. 일을 처리하고 다시 모텔로 돌아가 차를 타고 떠나면 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밤늦게 모텔에 도착한 사내는 날이 밝아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둠이 조금씩 걷히는 듯했다. 모텔의 복도는 조용했다. 사내는 방 열쇠를 프런트에 놓고 모텔을 나왔다. 객실을 나서서 지금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희뿌옇게 안개가 낀 산길을 걸어 빌라로 갔다. 빌라의 모퉁이에서 입구를 주시하며 목표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빌라의 현관문이 열리고 남자가 나타났다. 목표물이었다. 사내는 조용히 목표물의 뒤를 따랐다. 주머니 속의 손이 금속의 서늘한 감촉을 온몸에 전달했다. 호흡이 조금 가빠지는 것 같았다.


목표물의 어깨를 퉁, 치며 걸어 나가자. 목표물이 비틀거리면 그때 목표물의 얼굴을 한 대 강타하고 허벅지에 칼침을 놓고 자리를 뜨면 끝이다.


사내는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그렸다. 주위에 인적이 없음을 깨달은 사내는 걸음을 재촉하여 목표물의 뒤에 바짝 붙었다.

너무 서둘렀나 보다.

목표물이 눈치를 챘는지 몸을 사내의 쪽으로 돌렸다. 순간 당황한 사내는 엉겁결에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은 목표물에 닿지도 않고 허공을 휘돌았다. 그 순간 중심을 잃은 사내의 몸은 휘청였다.

도리어 다른 주먹이 사내의 얼굴을 강타했다. 사내는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듯 쓰러졌다. 남자가 사내의 몸 위로 올라타 그의 얼굴을 두어 차례 더 때렸다. 사내는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사내의 몸 위에 올라탄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내는 남자에게 여지없이 제압당했다.

깡다구라도 것도 이 순간에는 필요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이런 놈한테 이렇게 쉽게...’

모멸감이 밀려왔다. 주변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는, 이 순간에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떠올랐다.


“넌 누구야?”

“...”

“왜 이러는 거야?”

“...”

“이 새끼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남자는 다시 사내의 면상을 두세 차례 내리쳤다.

“나도 몰라, 그냥 누가 시킨 거야.”

“누가 시켰어?”

“몰라, 그냥...”


남자가 사내의 팔을 꺾은 채 사내를 일으켜 세웠다. 조금 있으면 사람들의 왕래가 있을 것이다. 도로에서 이렇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사내의 뒤에서 팔과 목덜미를 제압한 채 걸었다. 그들은 주택가에서 떨어진 공터로 왔다. 남자가 오는 도중 노끈을 주워 사내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다시 묻는다. 누구야?”

“진짜 몰라.”

남자가 다시 무자비한 폭력을 사내에게 가하였다.

“알아내, 지금 당장.”

남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손 좀 잠깐 풀어줘.”

폭력으로 거의 곤죽이 된 사내가 말했다. 남자는 사내의 상태를 잠시 주시하더니 사내의 손을 풀어 주었다. 사내는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와 통화를 시도했다.

“넙치냐? 나 병구.”

“어, 그래. 웬일이냐? 아침부터.”

“그냥. 근데 저기 탱크 형님이 맡긴 일말야...”

“아, 그 일. 원래 내가 해야 되는데 내가 형님하고 지방에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서 너한테 부탁한 거야. 근데 왜?”

“아니, 그냥. 의뢰인은 누구야?”

“증권회사에 다니는 놈인데 자기 애인이 옛날 애인을 만나고 다니는 것 같다고 기분 나쁘다나. 곧 결혼해야 하는데 그놈 혼도 내주고 관계도 정리하고.... 뭐 그래. 미친놈이지. 지들 연애는 지들이 해결하지 왜 우리까지 불러들이고 지랄이야.”

넙치의 주절거림을 스피커폰으로 남자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 것 같다는 눈치였다. 남자가 사내의 곁에 앉아 숨을 골랐다. 그리고 사내의 발을 죄던 결박을 풀었다.

“가, 그리고 이런 일 그만둬. 어울리지 않아.”

남자가 말했다.


사내는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나의 선택이었는지 정해진 운명이었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감정은 초라해진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것, 그것이었다.

주변의 화장실을 찾아 피범벅이 된 얼굴을 씻었다. 거울 속의 퉁퉁 부은 얼굴이 비웃고 있었다. 못나고 찌질한 놈. 중학교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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