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대설주의보 1

by 마정열

산을 오른다. 따뜻한 날이 며칠간 지속되었지만, 그늘진 곳은 아직 잔설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날이다. 조 형사는 주위를 살폈다. 산허리에 오르는 동안 사람을 보지 못했다. 철원 쪽 명성산은 포천 방면의 명성산과는 달리 널리 알려지지 않아 평소에도 등산하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이마의 땀을 훔친다. 등산로가 아닌 길을 한참을 올라왔다. 조 형사의 마음은 조급했다. 오늘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해는 어느새 중천이다. 배낭을 고쳐 매고 조 형사는 다시 산길을 오른다.

한 곳에 이르러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손으로 잔설을 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비한 야전삽으로 표면의 흙을 걷어 내려했다. 땅은 얼어 도저히 파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조 형사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주위의 마른 낙엽을 모아 땅 위에 흩뿌렸다. 땅의 맨살이 가려졌다.


조 형사는 주변을 정돈하고 올라온 길을 되돌아 산길을 내려왔다. 등산로 입구에 세워둔 차가 보였다. 조 형사의 차 옆에 다른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주차할 때에는 없던 차였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지나 않았을까 하는 등골이 서늘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다시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조 형사는 빠른 동작으로 차에 들어가 시동을 걸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침부터 띵하던 머리가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 지독한 두통이다.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다. 철원의 경계를 벗어나자 외진 곳에 차를 세웠다. 시트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뒤섞여 회오리치듯 눈앞에서 맴돌고 있다. 조 형사는 양손의 엄지로 눈 주위를 세게 눌렀다. 두통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쁜 새끼!”

어디서 표독스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환청이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가 미래를 지워버린 여인이 떠올랐다.


서른여덟, 여인의 생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


조 형사는 기억 속 여인의 흔적을 떠올려보았다.

서른다섯, 이름은 한수희. 여인은 노래방 주인이었다. 탐문을 나가 처음 만났다. 좀도둑 사건이었다. 도둑 수준에도 못 미치는 드는 동네 양아치들이었다. 편의점에서 물건이 자주 사라진다는 사건접수를 하고 CCTV로 용의자를 확인하고 그들이 드나들 만한 노래방, 술집을 탐문 중이었다.


“며칠 전에 왔어요.”

사진을 디밀자 한수희는 사진을 잠시 물끄러미 보더니 기억 속에 담긴 그들의 행적을 이야기했다.

세 명이 몰려 들어왔다. 술이 어지간히 취해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서비스 시간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심지어 옆방 손님들하고 시비가 붙었다. 옆방 손님들이 피하는 바람에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한수희는 이럴 때면 난감하다.

조 형사는 그들의 행적보다는 한수희의 끝맺음 말이 더 또렷이 들렸다.


“여자 혼자 이런 장사 힘들어요. 그만 접을까 봐요.”


동네 양아치들은 곧 검거되었다. 그날 조 형사는 동료들과 회식 후 노래방을 찾았다. 한수희가 조 형사를 알아봤다. 조 형사는 그냥 놀러 왔다고 했다. 동료들이 놀고 있을 때 그는 잠시 룸을 나와 홀에서 한수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놈들 잡혔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장사 이야기, 주변 동네 이야기, 등 십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 형사는 이야기 중간중간 그녀의 얼굴에서 그녀의 나이를 셈하였다. 서른은 넘었고 마흔은 아직 안 되어 보였다.


자주 노래방을 들렀다. 그랬나 보다. 부인할 수 없다. 그녀에 대한 호기심과 감정을. 그리고 술 먹고 치근덕거리는 손님을 몇 건 해결해 주었고, 한수희도 그런 조 형사에게 호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필요를 느꼈을까?


“자기 이래도 돼?”

“뭐가?”

“집에 있는.....”

“그만해, 됐어.”

한바탕의 정사를 끝내고 한수희가 조 형사의 품에 파고들며 말했다. 조 형사가 한수희의 말을 끊었다. 마치 죄책감을 끊어내듯이.


“경찰이에요?”

“네.”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지 않은 직장 생활이 어디 있습니까?”

이지숙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조 형사를 바라보았다. 그때 카페 안에는 재즈 선율에 실린 여가수의 흐느낌 같은 목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맞선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라고 조 형사는 생각했다.


한수희와의 관계는 항상 이지숙을 생각하게 했다. 불편한 일이다. 이지숙은 친척의 소개로 만났다. 짧은 교제의 시간을 가진 후 결혼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탐색했을 것이다.


왜 결혼을 선택했을까? 어떤 점이 이지숙에게 끌렸을까?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아련한 눈빛? 가정을 가지고 싶은 마음?


뭔지는 모르겠지만 객지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썰렁한 집이 싫은 것만은 분명했다. 이지숙은 어떠했을까? 결혼한 지가 오 년이 넘었지만 아직 조 형사는 왜 나랑 결혼했냐고 이지숙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아이가 생겼다. 그리고 지루한 일상이었다. 지루함이 불륜을 합리화하지는 못한다.

한수희와의 관계는 조 형사의 도발이었다.

분명 집에서 살림하는 이지숙보다 한수희은 더 세련되고 예쁘다. 산후조리를 잘못했는지 몸집이 불어난 이지숙의 둔한 움직임. 아이와 뒤엉켜 흐트러진 머릿결로 자는 모습. 그것을 그냥 일상적 주부의 모습으로 알고 그 일상을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준 것은 값싼 욕정임을 조 형사는 알고 있었다. 욕망, 욕정, 무엇으로 명명하든 남의눈이 두려운 관계였다.


한수희의 고향은 춘천이다. 결혼 전까지 춘천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늘 춘천 자랑을 입에 달고 살았다.

춘천은 말이에요, 로 시작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진짜로 춘천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조 형사에게 춘천은 군에 입대하기 위해 찾아간 103 보충대의 기억밖에 없다. 그리고 강원도의 기억은 인제에서의 그리 아름답지 못한 군 생활의 추억이 전부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조 형사는 자신의 고향, 고양을 떠올렸다. 고양은 춘천보다 자랑거리가 더 많다고 생각했으나 말하지는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향이었다.

아버지는 농사꾼이었다. 지금의 고양과 농사는 연결이 잘 안 되겠지만 유년 시절의 고양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농촌 마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조 형사의 집이 신도시 개발이라는 엄청난 광풍을 맞아 극적으로 변화하였다. 집에 돈이 넘쳤다.


아버지는 농부의 삶에서 벗어나 제법 규모가 있는 음식점을 냈다. 그것마저도 잘 되었다. 갑자기 돈맛을 들인 형들과 누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형들과 누이는 먹잇감을 노리는 이리떼 같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들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내던져진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큰형과 작은형은 돌아가면서 갖가지 사업을 말아먹었다. 오 형제의 막내인 조 형사가 고등학교 입학 무렵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손에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조 형사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제대 후 경찰이 되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애초에 사명감 따위는 없었다. 군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경찰이 되고 얼마 안 지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조 형사는 형들과 누이에게 선언했다. 이제는 연을 끊고 살자고. 그리고 그것을 지금껏 실천하고 살고 있었다.


“군인이었어요.”

한수희가 말했다. 후회나 미련 따위는 없다는 목소리였다.

직업 군인이었던 그를 따라 춘천에서 화천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겼고, 거기서 이혼을 했다. 몇 년 같이 살지도 않았다 한다. 처음부터 여러 가지로 어긋나는 게 많았다.


“그럼 왜 결혼했어?”

“그러게요. 나는 모든 게 실수투성이예요. 연애할 때는 몰랐어요. 그냥 나에게 잘해주고 관심이 많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관심을 넘어 이건 거의....”

‘의처증?’

조 형사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말하지는 않았다.

이혼 후 고향에 가기 싫어, 남 보기가 부끄러워 철원을 거쳐 포천으로 왔다고 한다.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조 형사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부부 생활을 돌아보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누가 문제였을까?’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감흥은 없다. 평범한 삶이다. 아내는 항상 남편 걱정밖에 없다. 고맙다. 아이도 잘 큰다. 그것도 고맙다. 한수희와의 관계도 끝내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휴대폰의 진동음이 들렸다. 조 형사는 윗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조 형사님, 어디세요?”

강 형사다.

“응, 뭐 좀 알아볼 게 있어 잠깐 나왔어. 뭔 일 있어?”

“아뇨, 별일은 아니고요. 국과수에서 명성산 그 여자 부검확인서가 왔어요. 예상한 대로 약물 과다, 자살이네요.”

“어 그래, 알았어. 그렇게 보고서 쓰고 사건 종결하자.”

“네, 형님. 저녁에 술 한잔해요.”

귓속을 맴도는 강 형사의 하이톤 목소리의 여음을 느끼며 조 형사는 통화를 끝냈다.

조 형사는 다시 차의 시동을 걸었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는 목 뒤를 주무르며 운전을 했다. 눈앞에 산정호수와 명성산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명성산의 그 여자가 발견된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며칠째 겨울답지 않은 푸근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쌓인 눈들은 녹아내렸고, 감춰졌던 지상의 비밀도 한 꺼풀씩 벗겨졌다.

명성산 기슭에서 여인의 시신이 녹은 눈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산을 오르던 등산객이 발견했다. 시신은 산의 초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바위 뒤에 자는 듯 누워있었다.


조 형사가 현장에 갔을 때는 시신은 하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천을 들추자 파리한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눈에 덮여 있어서 그런지 파랗게 변색된 피부를 제외하고는 곤히 잠든 모습이었다. 현장에는 과학수사대에서 나온 요원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현장을 살피고 있었다.

“자살인 거 같은데요.”

강 형사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

조 형사는 짧게 답했다.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두근거림의 소리가 산을 울릴 것 같아 불안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제 할 일을 하느라고 분주히 움직였다. 시신은 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졌다. 며칠 내로 그곳에서 사인에 대한 통보가 올 것이다.

‘뒤편, 철원 쪽 명성산에도 눈이 녹았겠지.’

조 형사는 현장 조사를 하는 내내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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