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대설주의보 2

by 마정열

한수희가 노래방을 정리하고 춘천으로 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조 형사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몰려옴을 느꼈다. 안도감, 아쉬움, 불안감. 하여간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었다.

“왜?”

“동생이 죽었어요. 엄마 혼자예요. 내가 정리해야 해요.”


한수희의 동생, 한정도가 죽었다.

한정도가 죽은 날 이지은도 죽었다. 한정도와 이지은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정도는 자동차 영업사원이었다. 보험영업을 하던 이지은과는 일 관계로 만났다. 호감을 느낀 그들은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서로의 일거리를 소개해 주었다. 감사 인사로 몇 차례의 저녁 식사 자리가 육체관계로 발전되었다.


친화력이 있고, 활달한 성격의 이지은은 빼어난 영업 실적을 보였다. 그 덕에 남편 박정호는 실업 상태이었지만, 가정의 경제는 쪼들리지 않게 돌아갔다.

박정호는 한정도와 이지은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박정호는 은행원이었다. 업무 능력 면에서는 그리 유능하지 못했다. 그는 늘 구조조정의 대상이었고, 마침내 명예스럽지 못한 명예퇴직을 하였다. 집안 살림은 박정호의 몫이었고, 경제활동은 아내가 맡았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남자의 차에서 내리는 아내를 보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내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 아내는 피곤하다고 자리에 누웠다. 박정호는 아무 말하지 않고 아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밤늦은 시간 아내가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섰다. 박정호는 자는 척했다. 아내가 나간 뒤 박정호는 아내의 뒤를 밟았다. 카페에서 아내는 남자와 마주 앉았다. 그들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모텔로 들어갔다. 이지은은 그날 새벽에 집에 들어왔다. 그때도 박정호는 자는 척했다.


한수희도 동생의 불륜을 알고 있었다. 동생의 집에 갔다가 여자의 흔적을 발견한 한수희는 동생을 다그쳤다. 한정도는 어쩔 수 없이 이지은과의 관계를 털어놓았다. 이지은이 유부녀임을 알고 한수희는 아연실색하였지만, 관계를 정리하라는 말 외에 할 말이 없었다.


한수희는 송우리의 가게를 정리하고 고향인 춘천으로 내려갔다. 조 형사는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를 해야겠다고 다짐은 했으나 불쑥불쑥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 형사의 동선이 포천에서 춘천으로 길어졌다.

“내가 알아봐 달랬던 그 일 알아봤어요?”

춘천에서 만날 때마다 한수희는 조 형사를 채근했다. 조 형사는 아는 사람을 통해 한수희 동생 사건을 알아봤다. 관할서에서는 강도에 의한 단순 살인으로 취급했고, 그 범인은 아직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나 한수희는 동생을 죽인 범인이 박정호라고 단정했다.

“증거가 없대. 그날 박정호는 대전에서 대학 은사의 장례식에서 밤을 새웠는데 분명한 증인들이 있다는 거야.”

“동생이 죽기 얼마 전에 말했어요. 자기 주변에 누군가가 항상 서성이고 있는 것 같다고요.”

“알았어, 다시 알아볼게.”


한정도 사건은 끝내 미제로 남겨졌다. 그러나 한수희는 쉽게 포기할 줄 몰랐다. 한수희가 동생의 사건에 집착할수록 조 형사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정도 사건을 담당하던 춘천경찰서 김 형사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동생 사건으로 몇 번 만나다가 한수희의 접근으로 둘은 가까워졌다.

한수희의 입장에서 조 형사가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다면 김 형사도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다. 한수희는 김 형사의 품에서 동생을 죽인 범인이 박정호라고 말했고, 김 형사는 한수희를 안으며 다시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수희는 조 형사와의 관계를 끝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날의 사건은 정말로 어이없이 일어났다. 춘천에서 양구로 넘어가는 소양강 변이었다. 조 형사의 차로 이동하던 조 형사와 한수희는 차를 한쪽에 세워두고 가드레일을 넘어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강을 바라보며 앉았다. 경사가 심한 곳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침묵 끝에 한수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요.”

한수희가 춘천으로 거처를 옮긴 후 조 형사는 자신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예전과 다름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남자가 생겼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왜?”

“그냥요.”

“솔직히 말해봐. 다른 남자 생겼어?”

한수희는 말이 없었다. 말이 없음은 긍정의 표시라는 것쯤은 조 형사도 알고 있었다. 조 형사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수희가 먼저 말을 꺼내 주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나는 들러리였군. 아닌가? 그럼 호위무사?”

조 형사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하였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당신도 내 몸뚱아리로 욕정을 풀었잖아요.”

한수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응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잠깐 앉아 봐.”

조 형사가 일어나는 한수희의 팔을 잡아당겼다. 순간 한수희의 몸은 중심을 잃었다. 엉겁결에 조 형사도 한수희의 팔을 놓치고 말았다. 순간의 일이었다. 한수희의 몸은 비탈길로 굴러 넘어졌다.

“어어 수희야!”

조 형사는 허겁지겁 비탈길을 내려왔다. 강변 비탈에는 날카로운 바윗돌이 많았다. 한수희는 날카로운 바위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바위를 피로 젖히고 있었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피가 하염없이 쏟아졌다. 그녀의 몸은 점점 굳어갔다.


조 형사는 한수희의 시신을 앞에 놓고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경찰에 알린다?

그러면 자신과 한수희의 관계가 밝혀질 것이다. 가정은 파탄이 날 것이고 심지어는 자신이 한수희의 살인범으로 몰릴 수도 있는 일이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한수희의 시신을 몰래 처리할 수밖에 없다. 마침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고 CCTV마저 없는 곳이다.

조 형사는 강물로 피를 대충 씻은 후 주변을 정리하고 한수희의 시신을 차에 싣고 화천을 돌아 철원으로 갔다. 하오터널을 지나 철원에 도착했을 때 어스름 해가 지고 있었다. 조 형사는 큰 비닐을 샀다.

조 형사가 명성산 아래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어둠이 내렸다. 조 형사는 비닐로 감싼 시신을 어깨에 들쳐 매고 산허리를 올랐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시신을, 아니 한 여인의 일생을 외진 곳에 묻고 내려왔다. 그게 보름 전 일이었다.


나이아가라 모텔의 간판이 보였다. 두통이 영 진정이 안 된다. 조 형사는 조금 쉬었다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손님이 없는지 눈에 익은 모텔 사장의 차 한 대만이 주차장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조 형사는 차를 세우고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어, 조 형사님 어쩐 일이세요?”

로비를 서성이고 있던 모텔 사장 민정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조 형사를 맞았다. 둘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몸이 안 좋아 좀 쉬어다 가야겠어.”

“그러세요.”

조 형사는 민정수가 안내한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외투도 벗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졌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단편단편의 숱한 꿈을 꾸었다.


눈을 뜨자마자 창의 커튼을 젖혔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제법 굵은 눈송이는 세상을 백색의 정원으로 만들 기세였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은 족히 잔 것 같았다. 아팠던 머리는 한결 가벼워졌다. 시계를 보니 퇴근 시간까지 두어 시간 남아 있었다. 경찰서로 복귀해 봤자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다.

조 형사는 휴대전화를 꺼내어 반장에게 전화를 했다. 여성 실종 사건 탐문 조사를 하느라고 일동 근처에 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곧바로 퇴근하겠다고 했다. 반장이 그리하라고 응답했다.

“조 형사님 일어났어요?”

현관문을 나서니 민정수가 눈을 쓸고 있었다.

“어, 잘 쉬었어. 얼마야, 대실료?”

“아이 형님도 뭔 그런 말씀을 하세요.”

조 형사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하니 민정수가 조 형사의 손을 잡으며 말렸다.

“그러지 말고 커피 한잔하고 가세요.”

“아냐, 바빠.”

“그러지 말고 잠깐 커피 한잔만 하고 가세요.”

이 녀석 넉살은 알아줘야 한다.

민정수는 눈을 쓸던 빗자루를 던져 버리고 모텔 현관문을 열고, “아저씨! 나 잠깐 나갔다 올게요.”하고 소리를 쳤다.

둘은 온몸으로 눈을 맞으며 걸었다.

“밥이나 먹지?”

점심을 굶은 조 형사는 커피보다는 밥 생각이 간절했다.

“좋아요. 나도 출출하던 참이었어요.”


둘은 모텔에서 몇 발자국 안 떨어진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른 시간인지 손님은 없었다. 식당 주인이 밑반찬을 깔았다. 조 형사가 순댓국을 주문했다. 민정수도 따라 했다. 그리고 술도 주문했다. 순댓국이 나오기 전에 소주 한 병에 술잔 두 개가 식탁에 놓였다.

민정수가 조 형사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조 형사가 술병을 건네받아 민정수의 잔에 술을 채웠다. 둘은 술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쳤다.

몇 차례 술잔이 오고 갔다.

순댓국 두 그릇이 식탁에 놓였다. 조 형사가 뜨거운 김을 얼굴로 받으며 수저 가득히 국물에 적신 밥을 담아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뜨거운 열기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갑자기 취기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민정수는 국에서 순대 덩어리를 꺼내어 새우젓에 찍어 먹었다. 그리 배가 고프지는 않은 듯했다.

“민 사장, 혹시 이 여자 아나?”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입안 가득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조 형사가 안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민정수 앞에 내보였다.

반명함판의 여자 사진이었다. 분홍색 티셔츠의 여자는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명성산눈 속에 누워있던 여자였다.

조 형사도 처음에는 몰랐다. 여자의 신원조회를 하다가 나이아가라 모텔에서 자살한 사내의 참고인 조사를 하던 중 만난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슨 연유로 다시 포천을 찾아와 생을 마쳤는지 사연이 궁금하기는 하나 자기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더 급하여 거기까지 조사할 여유가 없었다.


사진을 받아 든 민정수는 흠칫 놀랐다. 분명 그녀다. 그 말도 안 되는 정사를 나눈 여인이었다. 민정수는 조 형사가 눈치채지 않게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글쎄요? 누굽니까?”

민정수는 말끝을 얼버무리며 물었다.

“저번에 모텔에서 죽은 그 남자 있잖아. 그 남자 애인. 참고인 조사 때 한 번 봤는데 죽었어. 자살이야.”

“네에! 어쩌다가요?”

“모르지. 명성산에서 발견됐는데 국과수에서 연락이 왔어. 약물로 인한...”

그녀와의 정사가 끝난 후 마치 영혼과 사랑한 느낌이었는데 진짜 그녀는 영혼이었구나, 하고 민정수는 생각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민정수는 순댓국물을 휘저었다. 하얀 김이 스크린이 되어 그때의 일이 점점이 박혔다.

민정수의 순댓국은 차갑게 식었다. 밥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뭔 생각을 그리하고 있어?”

조 형사가 젓가락을 놀리며 밥알을 뒤집고만 있는 민정수를 보며 물었다.

“아뇨, 그냥 입맛이 별로 없어서.”

“젊은 사람이 입맛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입맛이 없기는 조 형사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음식물을 욱여넣었을 뿐이었다. 식사를 마친 조 형사가 식당 입구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자리로 돌아왔다.

수저를 내려놓은 민정수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민정수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기억의 파편이 되어 떠오름을 느꼈다. 무엇으로부터 놓여나기를 원하여 눈 속에 자신을 묻었는지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수많은 기억을 세상에 남겨 놓고 스스로 미래를 지운 여인이 안쓰러웠다.

조 형사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굵은 눈발이 창의 전면을 가렸다. 조 형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덮어버릴 정도의 폭설을 기원했다. 그리고 자신의 악마성과 비겁함과 두려움도 얼음의 박제가 되어 녹지 않는 동토의 세상에 갇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수희의 미래가 사라졌듯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수희의 과거도 저 눈 속에 묻혀 지상에 드러나지 않기를 조 형사는 바랐다. 자신의 의식 속의 한수희도 심연에 갇혀, 얼어붙어, 의식의 언저리에서 지워졌으면, 하고 진정 바랐다.


큰 눈이 올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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