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덩치가 작은 아이를 주변의 아이들이 못살게 굴었다. 작은 아이는 학교가 싫었다. 특히 중학교 시절이 그러했다. 죽으려고 했다. 기왕 죽을 거라면 자신을 괴롭힌 놈들에게 복수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의 곁으로 큰애가 다가왔다. 소년은 기다렸다. 책상 밑에 숨긴 손에는 심지가 나온 볼펜을 움켜쥐고 있었다. 큰애가 소년의 뒷덜미를 잡았다.
“야, 다람쥐. 학교 끝나고 뭐 할 거냐?”
소년은 대답 대신 온 힘을 다해 그의 허벅지에 볼펜을 찔렀다.
“아악!”
비명과 함께 큰애가 교실 바닥에 쓰러졌다. 소년은 쓰러진 큰애의 몸을 올라타고 힘껏 움켜쥔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마구 때렸다. 그동안 당하기만 하던 아이의 반격에 반 아이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올 때까지 소년의 주먹질은 계속되었다. 기왕 죽기로 결심한 마당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선생님이 뜯어말렸다. 그리고 소년은 교무실로 끌려갔다. 다음날 할머니가 학교를 찾아갔다. 소년은 며칠 동안 학교를 가지 못했다. 대신 상담 기관에 가서 여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그랬냐고 물었다.
죽기 전에 손을 볼 놈이 더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흠칫 놀라는 듯했다. 선생님이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 물었다.
대답하기가 싫었다.
지금은 어떠냐고 물었다.
대답하기 싫었다.
학교생활은 어떠냐고 물었다.
이것은 대답했다. 개 같다고. 그리고 아이들 이름까지 대가며 이 새끼들을 손보고 죽을 거라고 말했다.
며칠 동안 상담은 계속되었다.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죽지는 못했다.
다시 학교에 나갔다. 반 아이들이 자신을 슬슬 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관없었다. 소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 상담을 통해 배운 결과다.
선생님이 그랬다.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고 맞서라고.
소년은 산 아래 공터에서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한 아이와 맞서 싸웠다. 많이 맞았다. 다음 날 다른 녀석을 찾아가 싸우자고 하였다. 많이 맞았다. 이후로도 서너 번 더 싸웠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학교에서 소년을 괴롭히는 아이들은 없어졌다. 오히려 소년은 큰애들의 무리에 끼여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그랬다.
깡다구 조.
이것이 고등학교 때 소년의 별명이었다. 죽기 살기로 싸웠다. 신체적 약점을 가리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사내는 도로로 나왔다. 그냥 걸었다. 시외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는 버스에 올라탔다. 좌석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아우 조그만 게 귀엽네, 꼭 천사 같아.”
옆집 여자는 아이를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었다. 아이는 맑은 미소로 여자의 입맞춤을 받았다.
“그러게 말야,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어떻게 버리고 갈 수 있었을까?”
또 다른 여자가 아이를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여자도 사정이 있었겠지.”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남편 죽었다고 바람난 게지.”
노인이 달려왔다.
“우리 병구 여기 있었구나.”
노인이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노인의 품이 안겨 졸린 눈을 껌뻑이며 잠이 들었다.
사내가 눈을 떴을 때 버스는 의정부 시외버스터미널에 정차에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버스에서 내린 사내는 갑자기 갈 곳을 잃었다. 서울로, 탱크 형님에게 일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까?
그러면?
생각이 헝클어져 다음 일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비로소 모텔에 차를 두고 왔다는 생각이 미쳤다. 다시 차를 가지러 모텔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합실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의 몰골을 흘낏거리고 지나쳤다. 사내는 그냥 멀리 떠나고 싶었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 곳으로. 거기에서 자신의 존재를 잊고 싶었다.
그렇게 지방을 떠돈 지가 한 달이다. 회사에는 사정이 있어 그만두겠다고 알렸다. 탱크 형님한테는 일을 잘 처리했다고, 그리고 일이 있어 지방에 있다고 거짓 보고를 하였다.
나주의 여관방에 은거하고 있을 때, 넙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병구야. 저번에 일 맡겼던 그놈 있잖아. 증권회사 다닌다는. 그놈이 실종됐나 봐. 며칠 전 탱크 형님이 이야기하더라. 골치 아픈 일 생겼다고. 형님이 아는 경찰한테 들었다고... 아직 우리에게 불똥은 안 튀었는데 그놈 주변을 탐문하다가 우리 이름 나올까 봐 전전긍긍하더라. 너도 알고 있어라. 그리고 잠잠할 때까지 서울 오지 마라. 내가 종종 연락할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일과 관련하여 죄 될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몇 년 되지 않은 세월이 단편단편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청과물 상회 이 씨는 삶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 같았다.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할 뿐 언제 갚는다는 말은 없었다. 집기를 내던지며 위협을 해도 그는 돈을 내놓지 않았다.
“아, 씨팔! 감당도 못 할 돈을 왜 빌려? 일주일 줄 테니까 마련해 놔요. 이게 마지막입니다. 나도 이제 어쩔 수 없어요.”
세 번째 허탕이다. 가게 문을 세차게 걷어차고 나왔다. 사내는 사장에게 어떻게 말할까 걱정이 앞섰다. 성과를 보여줘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어느 세계가 마찬가지였다.
탱크 형님의 소개로 회사에 취직했다. 처음에는 선배들과 함께 다니며 일을 배웠다. 어느 정도 일이 돌아가는 것을 알고 사내도 일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돈을 빌려 간 시장 상인들은 아쉬운 소리를 해도 갚을 돈을 갚았다. 밀려도 하루 이틀 안에 돈은 해결되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리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여기는 대부업체가 아닌가?
사내가 맞닥뜨린 첫 번째 시련이 청과물 상회 이 씨였다.
“힘들어?”
사장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했지만 사내는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아닙니다.”
“처음엔 다 그래, 같이 가 보자.”
사장이 사내의 어깨를 다독였다. 사장의 옆에 서 있는 선임의 입가에도 야릇한 미소가 돌았다.
그날 밤, 학창 시절에도 그러했지만, 사내는 자신의 작은 몸집이 사람들에게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자신이 이런 일을 하기에 과연 적절한 사람인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이 일을 여기에서 그만둔다면 세상은 또 자신을 업신여기고, 그 경멸 속에 서 있는 자신이 초라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폭력은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사장과 선임이 지켜보고 있다. 여기는 물러나서는 안 된다.
사내는 이 씨를 험하게 몰아붙였다. 주먹으로 안면을 강타했다. 뒤로 나뒹구는 그의 복부를 힘차게 걷어찼다.
“야이 새끼야, 너 강도야? 왜 남의 돈을 그냥 삼키려는 거야. 돈 빌리러 왔을 때 이자랑 다 설명했고 니가 동의했잖아, 새꺄.”
나이가 거의 삼촌뻘인 이 씨에게 사내는 상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때 그의 머릿속은 오직 자신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사장과 선임은 한 구석에 서서 사내의 행동을 지켜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이 씨는 간이침대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사내가 위협을 가하기 위해 간이침대를 걷어차자 시트 밑에서 돈이 흘러내렸다.
“이 새끼 봐라.”
사내는 이 씨를 쏘아보았다.
“그건 안 돼요. 그 돈 없으면 우리 식구 다 죽어요.”
피투성이가 된 이 씨가 달려들었다. 사내는 이 씨의 가슴팍을 발로 내질렀다.
“이 돈 없으면 나도 죽어, 새꺄.”
사내는 흩어진 돈을 주워 챙겼다. 사장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사내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이후부터인 것 같다. 폭력은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자신을 주위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사내는 알았다. 그리고 거기에 익숙해지도록 자신의 몸을 폭력으로 물들여나갔다.
이전부터 내 속에서는 폭력의 유전자가 존재했던 것일까?
폭력의 유전자는 아닌 것 같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것보다는 열등감의 유전자가 폭력의 형태로 발현된 것뿐이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여관방 안에서 사내는 몇 날의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리고 그는 이제부터는 빅맨 행세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빅맨은 나약한 자신이 세상을 버티기 위한 허세임을 포천의 공돌이가 알려주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주위의 사람이 있을 때 그들에게 보이기 위해, 한편으로 그들의 힘을 믿고 까분 것 같다. 자신은 리틀 조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살아온 세월이었다.
세상 원망도 않기로 했다. 리틀 조로 살았으면 결국 버티지 못했을 것이고, 빅맨으로 살아가게 만든 것은 거친 이 세상이라고 항변도 하고 싶지만, 돌려 생각하면 그것은 폭력에 길들여진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일 뿐이었다.
한순간 모든 것을 놓아 버릴 수는 없지만 하나씩 정리해 나가고 싶었다. 서울로 올라가려는 발걸음을 넙치의 전화가 계속 머뭇거리게 하였다.
“야, 어제 탱크 형님이 경찰서 갔다 왔다. 갈 때는 잔뜩 긴장하더니 와서는 별거 아니라고 하더라. 그 자식 메모에서 우리 회사 이름이 나왔나 봐. 우리가 뭐 죄지은 것도 없잖아. 쫄 거 없어. 근데 우선 몸은 사려야겠어. 우리 일이 그렇잖아. 너도 조심해라.”
넙치는 쫄 거 없다고 강조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도 넙치는 전화를 통해 서울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탱크 형님과의 통화도 있었다. 별말이 없이 입조심을 당부하였다. 형님의 당부가 없어도 떠벌리고 다닐 만한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자 의뢰인 실종 사건은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그렇다고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차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그 앞에 다른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어 차를 뺄 수가 없었다. 낭패였다. 아무도 모르게 차만 가지고 올 생각이었다.
사내는 어쩔 수 없이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사장인 듯한 남자가 침대보를 한가득 가슴에 안고 계단을 내려왔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이시죠?”
아직 숙박객이 올 시간이 아님을 알고 사장은 말을 이렇게 바꾸었다.
“아, 네. 저기 주차되어 있는 차 좀 빼 주셨으면 해서요.”
사장이 사내의 얼굴을 응시했다. 사내는 사장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사장은 차를 두고 사라진 사내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포천경찰서 조형사가 차를 두고 간 사람의 인상착의를 묻었을 때 자신이 엉뚱한 이를 지목해 알려주었음을 알았다.
“차주 되십니까?”
“네.”
“저렇게 차를 두고 가시면 어떡합니까?”
“죄송합니다.”
사장은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차를 두고 사라지고 경찰이 찾고 한 달이 지나서 나타나고...
썩 좋은 일 같지는 않았다.
사장은 프런트에서 키를 가지고 나와 사내의 차가 나갈 수 있게 차를 한쪽으로 빼주었다.
“감사합니다.”
사내가 차에 올라 시동을 켜고 떠나기 직전에 차창을 내려 사장에게 물었다.
“그리고 혹시 누가 나를 찾지는 않았습니까?”
“아뇨, 아무도 찾지 않았습니다.”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누가 물으면...”
“걱정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사장이 사내의 말허리를 자르고 말했다.
사내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많았으니, 앞으로도 무슨 일이 많을 것이다. 무슨 일이 닥칠 때 아무 일도 아니다, 하고 버텼으면 좋겠다.
사내는 사장의 빈말의 위로가 고맙게 느껴졌다.
차는 모텔을 빠져나왔다. 잠시 달리다 사내는 룸밀러로 뒤를 살폈다. '나이아가라'라는 간판이 보였고, 그 아래 한 남자가 모텔 입구에 서서 멀어지는 사내의 차를 응시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