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빛날, 경(炅) 2

by 마정열

경아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 게 육 개월이 훌쩍 넘었다. 나도 이제 여자를 불러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싫었다. 경아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경아와 내가 가슴에 사무친 기억을 공유한 사람도 아닌데 뭐 그리 오래 부여잡고 있겠는가?


일상의 연속이다.

모텔을 운영하다 보면 경찰서 출입이 보통 사람들보다는 잦다. 모텔에 묵은 사람들이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서 경찰들이 모텔로 탐문을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역 경찰들과도 안면을 꽤 익혔다.


그날도 조 형사가 도움을 요청해 경찰서를 방문했다. 며칠 전 투숙객이 차를 그대로 둔 채 사라졌다. 종종 있는 일이다. 대개의 경우 며칠 있다가 슬그머니 와서 차를 몰고 간다. 그래서 이번 건도 별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어제 조 형사가 전화가 왔다.

“그 사람 인상착의가 기억하겠어?”

한밤중에 조그만 창을 통해 본 사람의 인상착의를 어떻게 정확히 기억하겠는가. 나는 대충 그 사람의 인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검정색 남방을 입었는데 덩치가 좀 작았던 거 같은데요.”

조 형사는 다짜고짜 경찰서로 잠시 나와 달라고 하였다.

아니, 내가 자기 종인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게. 나는 기분이 살짝 상했다. 자기가 모텔로 와서 CCTV를 확인하면 될 거 아닌가. 그렇다고 대놓고 거절할 수는 없다. 알지 않는가, 모텔 주인과 경찰의 관계를.


조 형사가 보여주는 수많은 사진 속에서 자동차를 두고 사라진 사내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선명한 기억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흐릿한 로비 불빛 아래에서 일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본 사람을 정확히 기억해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단지 명확하게 기억나는 건 몸집이 좀 작았다는 것과 왼손의 검지가 조금 짧다는 것이었다. 숙박비를 건네받을 때 봤다.

몇 번의 망설임과 주저 끝에 서너 장의 사진을 꼽아주고 일어섰다. 무슨 사건이냐고 물어봐도 조 형사는 별거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좀 얘기해 주면 안 되나. 평소 형님 형님하며 제 비위를 얼마나 맞춰 줬는데...”

나는 구시렁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구월 말인데도 더위는 여전했다. 나는 현관에 있는 음료 자판기에서 캔 음료 하나를 꺼내 정원 벤치로 갔다.

경찰기동대 버스 하나가 들어오더니 개미 군단인 양 푸른 제복의 경찰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쏟아졌다. 의무경찰인듯하다. 그들은 순식간에 오와 열을 맞춘 대열을 지어 부동의 자세로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들 앞에 푸른 제복의 한 사람이 오더니 무어라고 말을 한다.

“네!”

우렁찬 대답 소리가 내게까지 전해진다. 대열 앞의 사람이 사라지자 그들의 대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느릿하게 걷는 몇 명을 앞질러 몇 명은 불이 나게 뛰어간다.

푸르른 청춘은 아닌 듯하다.


그들에게서 눈을 거두니 다시 차를 두고 사라진 사내가 생각이 났다. 사내는 차를 두고 사라졌고 그 사내를 경찰이 찾는다. 뭔가 그림이 좋지 않다.

음료를 목구멍으로 흘러내렸다. 달콤하고 차가운 기운이 식도를 자극하고 뇌에까지 짜릿한 느낌을 전한다. 순간의 전율이 조금 전의 찝찝함을 잊게 하였다.


손등으로 입 주위를 훔쳤다. 그때 손등 너머로 경찰서 현관을 나서는 여인을 보았다. 놀라움과 반가움. 선희, 아니 경아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를 불렀다.

“경아 씨”

목소리가 들떠있다고 나도 느꼈다. 그 들뜸이 그녀에게도 전해졌나 보다.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척 보고 싶은 사람이었나 보다. 나는 좀 전의 찝찝한 기분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았고 그녀가 어서 내게로 와 주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옆에는 중학생인가 고등학생인가 되는 아이 한 명이 있었다. 그녀가 아이에게 무엇이라 이야기를 한다.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발길로 땅을 뚝뚝 치면서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아이는 그녀의 곁을 떠나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를 흘깃 훔쳐보는 듯하다. 몇 발자국을 가더니 잔디밭에다 침을 냅다 갈긴다.

‘저 녀석이’

그녀가 내게로 걸어왔다. 나는 아이에게서 눈길을 거두고 만면에 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그녀도 웃음으로 나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 네. 어떻게 지내셨어요?”

“잘 지내요.”

우리는 자리를 경찰서 앞 찻집으로 옮겼다.

여러 대화 주제 중에 첫 번째가 역시 그 남학생에 관한 것이었다. 경아가 말했다.

“동생이에요”

중3이라고 했다. 사고를 쳐서 경찰서를 왔다고 했다.

오토바이를 훔쳐 탔다. 이번 건 외에도 수시로 사고를 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힘이 든다고 경아가 말했다. 학교에서 싸움은 일상사라고 했다. 그래도 어떻게 힘이 닿는 데까지 돌보아야 한다고 했다. 동생이니까 그래야 한다고 했다.


그녀도 동생의 존재를 이번에 알았단다. 십수 년 가족과 소식을 끊고 살았다고 한들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아니 갈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뇌졸중이었다. 어찌어찌 수습하여 요양병원에 입원을 시키니 옆에 한 명이 남아 있었다. 그게 남동생이었다.

어머니와 새아버지는 벌서 여러 해 전에 이혼했다고 했다. 둘 사이에서 난 아이는 어머니의 몫이었고 그게 이제 자신의 몫이 되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이혼했고,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다 보니 관심과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해 그런지 늘 사고를 치고 다닌다고 도리어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경아가 말했다.

나는 잘될 거라고 그냥 지나가는 빈말로 그녀를 위로했다.


그날의 이야기는 대충 여기까지였던 것 같다. 그녀가 다시 공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서둘러 일어서는 바람에 막상 궁금한 것은 하나도 못 물어봤다.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종종 연락하자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보도방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경아, 아니 선희 포천에 있던데?”

“알아.”

사장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두어 달 전쯤에 연락이 와서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일자리를 부탁해서 양문공단에 있는 플라스틱 공장을 소개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쪽 일은 이제 안 하겠다고 하더군. 하긴 그 나이에 이쪽 일은 이제 어렵지.”

이 자식은 꼭 말을 해도 이렇게 밉상으로 한다.

나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며칠 후 나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큰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고, 저녁 무렵 우리는 주점에서 만났다. 서로의 잔에 술을 몇 번 부어주고 서로의 말에 추임새를 넣다 보니 우리는 오래된 술친구처럼 상대의 눈을 편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뻔한 질문을 했다.

“동생이 있는데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잖아요.”

경아의 대답이었다.

어떻게 포천으로 다시 왔는지 물었다. 어디에서 살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포천에서 오래 살았고 또 아는 사람도 조금 있어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다시 왔다고 했다. 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치켜주었다. 경아가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술을 한 잔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켜고 숨을 고르며 물었다.

“그동안 왜 가족과는 연락을 끊고 살았어요?”

경아가 자기 앞에 놓인 술잔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한 잔 주세요.”

나는 경아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그녀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술잔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탁자 위에 놓였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밖에 없어요. 철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가 제 손으로 술을 잔에 채웠다. 그리고 잠시의 여유도 없이 잔을 비웠다.

“빛날 인생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살다 보니 꼬여 버렸네요.”

나는 괜한 것을 물었나 싶어 도리어 미안해졌다.

“오빠가 생겼어요.”

경아는 빈 잔을 응시하며 숨을 한 번 몰아 쉰 뒤 말을 이었다.


오빠가 생겼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오빠가.

계부에게 아들이 있었다. 대학생이었다. 계부가 이혼을 할 때 엄마를 따라갔다가 대학생이 된 이후에 서울에서 자취하고 있다고 했다. 경아는 그의 존재를 엄마의 재혼 이후에 알았다.

그가 간혹 찾아왔다. 이혼 이후에도 계부와는 왕래가 종종 있었다. 그도 아버지의 재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와의 첫 만남에서의 떨림을 경아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 불쑥 찾아온 남자. 엄마는 이미 그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넉살 좋게 경아에게 말을 건넸다.

“니가 경아구나, 반갑다. 잘 지내자.”

그가 악수를 청했다. 경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뜨거움인지 짜릿함인지 그 느낌을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확실한 것은 떨림이었다.

그때 경아는 고등학교 이 학년이었다.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했는데, 공부나 했어야 했는데 왜 그와 사....랑...”

경아가 말을 잠시 멈췄다. 내가 할 일은 경아의 빈 술잔을 채우는 일밖에 없었다.

“말이 어색하네요. 사랑이라니 당치도 않게.”

경아가 술잔을 들며 말했다. 경아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어느 날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와 경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는 떠날 줄을 몰랐다. 그녀는 그를 떨쳐내는 방법을 몰랐다. 모든 일상이 그의 생각으로 채워졌다. 그가 집에 찾아온 날은 경아는 어쩔 줄 모르고 혼자 허둥거렸다. 그가 건네는 실없는 농담 한마디에도 얼굴이 붉어졌다. 돌이켜보면 철이 없는 시절이었다. 철이 없어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을 혼자 설레며 보냈다.


달이 좋은 밤이었다. 아버지를 찾아온 그가 경아에게 달구경을 가자 했다. 그를 따라 나셨다. 마을 뒷동산에 올라 달을 보았다. 구름이 없는 밤이었는데 바람이 불었다.

북풍이 몰려오다가 바다를 만나 멎더니 나는 더 거센 바람을 만나 바다로 들어갔다네.

곡명을 알 수 없는 노래를 그가 불렀다. 시월의 바람이 으스스했다.

“추워?”

“아니, 괜찮아요.”

“말을 편하게 하래도 또 그런다.”

그가 웃음 띤 목소리로 경아를 꾸짖었다. 그리고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 주었다. 그가 경아의 눈을 응시했다.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그날 경아는 그의 따뜻한 입술을 받아 들었다.


그해 경아는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그녀는 서울로 올라가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뻔한 속셈이었지만, 엄마와 계부는 아직 그들의 관계를 몰랐다. 처음에 만류하던 엄마도 완강한 그녀의 태도에 고개를 내둘리며 허락을 했다. 계부는 오빠와 함께 지내며 공부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동생을 잘 보살피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사랑도 아니었고, 그냥 불장난이었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간혹 우리는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럴수록 그들은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더욱 서로의 육체를 탐했다.


그들의 관계는 예고도 없이 방문한 동생에 의해 발각되었다. 나란히 누워있는 그들을 본 동생은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더니,

“이런 미친 ...”

신음 같은 외마디 소리를 나직이 내지르고 문을 세차게 닫고 나갔다.


“불장난이 진짜로 집안을 홀랑 타 태워 버렸어요. 그때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나는 너무 두려워 도망쳤어요. 도무지 엄마 아빠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그야말로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출산하여 육아에 정신이 없었던 엄마에게 경아의 소식은 그야말로 날벼락과 같은 충격이었다. 이 일로 재혼한 남편과도 사이가 어색해진 엄마는 결국 몇 년 후에 이혼을 했다. 동생은 경아의 연인, 그러니까 이복 오빠를 아주 심하게 폭행하여 소년원 신세를 짓게 되었고, 출소 후에도 연놈들을 죽어 버리겠다고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소식을 경아는 들었다.

경아는 거리를 헤매었고, 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했다.


“참 지랄 같은 인생이죠?”

경아는 목소리는 담담했다.

“지랄 같은 과거사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의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음을 나도 알고 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동생만 보면 내가 저 아이의 삶마저 엉망으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미쳐버릴 것만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동생을 돌보고 싶어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인 것 같아요”

“경아 씨는 잘할 거예요.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잖아요.”

“열심히 살긴요. 막살았죠.”

그 웃음이 쓸쓸하다.

“아니에요. 내가 보기에는 진짜로 열심히 살아왔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 거를 알고 있어요. 이름처럼 빛나게 살 거예요.”

“그럴 수 있을까요? 빛나게 살 수 있을까요?”

“그럼요, 빛나는 경아 씨.”

나는 파이팅의 의미로 주먹을 쥐어 경아의 앞으로 내밀었다. 경아도 붉게 상기된, 수줍은 미소를 띤 채 야무지게 쥔 주먹을 내 주먹에 마주쳤다.


나는 내 이름의 의미를 의식하고 살아본 적은 없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지어지고 불린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내 이름을 왜 정수(正秀)라고 지었을까? 정(正)은 항렬자이니 아버지가 정해준 이름은 빼어날 수(秀)이다.

빼어난 인물, 빼어난 인생을 원했을까? 어떤 부모가 자식의 삶이 빼어나지 않기를 바라겠는가?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은 참으로 평범한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평범함에 부합하듯 나는 빼어난 아이도 아니었고, 빼어난 인생을 산 것도 아니다. 내가 나를 평가하면 그렇다.


경아의 주먹은 순간의 전율이 되어 내게 전해졌다. 아버지의 바람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존재함을 스스로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빼어난 그리고 빛나는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이름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아는 지금도 포천에 산다. 이름이 삶을 지배하는 날을 기약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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