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경찰서에서 차량 조회 요청이 왔다. 뺑소니 차량이었다. 사고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사고 현장에서 찍힌 차에는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조회 결과 뺑소니 차량은 도난 차였다. 도난 신고자는 편의점 앞에 세워둔 차를 누군가가 몰고 갔다고 했다. 교통과에서 편의점 주변의 CCTV를 뒤져 차를 훔쳐 간 사내의 영상을 찾았다. 뺑소니 차량의 운전자와 편의점 앞에서 차량을 훔친 자가 동일인임이 드러났다.
“조 형사님!”
몇 시간째 중랑천 여인 살인 사건 현장 주변의 CCTV를 살핀 조 형사는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본관 앞 벤치에서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고 있었다. 조 형사는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포천 경찰서의 이 형사였다.
“어, 이 형사 여긴 웬일이야?”
조 형사는 이 형사를 발견하고 벤치에서 일어나 이 형사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이 형사가 웃으며 조 형사의 손을 잡았다. 이 형사는 포천에서 조 형사와 오랜 시간을 같이했다.
“잘 지냈어요? 여긴 어때요?”
“다 그렇지 뭐.”
조 형사는 올봄 정기 인사 때 포천서에서 의정부서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조 형사에게는 구원의 밧줄과도 같았다. 포천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목을 조이고 있던 숨통이 터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웬일이야?”
“뺑소니 사건 때문에 알아볼 게 있어서요.”
“그래 일은 끝났어?”
“네, 잘 됐어요.”
이 형사가 대강의 사건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차량 운전자의 신원도 알아냈다고 했다.
이승호. 그가 다니던 공장은 폐업을 하였고, 그 이후 그는 이곳저곳 아르바이트로 연명 중이었다. 가장 최근까지 다니던 직장은 배달 전문 음식점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주방 보조 및 배달을 하였고, 한 달 전에 그만두었다. 그의 거처도 알아냈다.
“지금 가 보려고요.”
“같이 가 볼까?”
“그래 주면 고맙죠.”
조 형사는 박 형사에게 자신이 하던 CCTV 검토를 부탁한 뒤 이 형사와 함께 이승호의 거처를 찾았다. 고시원이었다.
1층의 안내소에서 이승호의 방이 404호임을 알아낸 둘은 계단을 올랐다. 4층 건물의 고시원은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4층 복도에 들어섰을 때 마침 404호 앞에서 서성이던 사내를 보았다. 방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은 사내가 돌연 몸을 돌려 계단 쪽으로 걸어왔다.
사내가 그들의 곁을 스칠 때 조 형사는 저놈이구나, 하는 느낌에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순간 사내가 거칠게 손을 뿌리쳤다. 조 형사의 몸은 순간 휘청했다. 무언가 모를 힘이 자신을 밀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사내는 계단 아래로 달아났다. 조 형사와 이 형사가 그의 뒤를 쫓았다. 좁은 골목을 달리던 사내가 조 형사의 사정권 아래 놓였다. 조 형사가 사내의 뒷덜미를 잡아채려는 순간 사내가 조 형사를 밀쳐냈다. 엄청난 힘이었다. 조 형사는 나뒹굴었고 순간 사내는 난간을 넘어 도망쳤다. 이 형사가 사내의 뒤를 쫓았다. 잠시 후, 이 형사가 헉헉대며 고시원으로 왔다.
“어떻게 됐어?”
“놓쳤어요.”
“어쩔 수 없지. 방에 한번 가 보자.”
둘은 고시원 주인에게 신분을 밝히고 방을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주인은 그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 주인이 열쇠로 방을 열자 경악할 만한 광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은 온통 핏물로 얼룩져 있었으며 화장실에는 시체 한 구가 피에 젖은 이불에 쌓여있었다.
고시원은 순간적으로 살인 사건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괴학수사대 요원이 출동하였고, 강력계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시신의 신원이 밝혀졌다. 박형구. 그는 이승호의 친구였다.
중랑천 여인 살인 사건의 단서는 의외의 곳에서 풀렸다. 죽은 여인의 손톱 밑에서 나온 살점의 DNA가 박형구의 DNA와 일치하였고, 여인이 살해된 날, 사건 장소에서 얼마 안 떨어진 술집에서 이승호와 박형구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CCTV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여인의 남편을 불러 조사한 결과 여인과 둘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왜 죽였는지는 이승호를 잡아 심문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또 이승호가 살인 사건의 공범인 박형구를 무슨 이유로 죽였는지는 그것 역시 이승호의 체포 전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이승호의 흔적이 포착되었다. 그는 인천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조 형사와 박 형사는 그의 뒤를 쫓아 인천으로 차를 몰았다.
*
여관방은 어두웠다. 단 한 줄기의 빛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커튼이 창문을 단단히 봉쇄하고 있었다. 칠흑의 어둠 속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가물치였다.
가물치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불안하면 나오는 습관이었다.
출항일이 정해졌다. 며칠만 견디면 된다.
일이 너무 꼬였다는 생각에 지난 며칠을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다. 시간은 후회는 허락을 해도 수정은 허용되지 않는다. 가물치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푸른 바다가 눈앞에 떠올랐다. 남국의 태양은 강렬했다. 웃통을 벗은 가물치의 몸은 벌겋게 익어 있었다.
더 이상은 진도가 나아가지 않았다. 명확하게 청사진이 그려지지 않았다. 파도가 자신을 덮치기도 하고,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하였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어둠을 응시하던 눈을 감았다. 수많은 영상이 눈꺼풀을 영사막 삼아 펼쳐졌다가 사라짐을 반복했다. 여인을 죽이던 밤이 영사막 위에 펼쳐졌다. 발버둥 치는 여인이 보였다. 영상을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한밤중인데도 핏빛은 선명하게 빛났다. 피에 흥건히 젖은 여인이 조금씩 몸을 움직여 일어났다. 가물치는 몸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인이 가물치 앞에 섰다.
“같이 가자.”
여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안돼. 죽기 싫어.”
가물치는 소리를 질렀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어. 마땅히 죽어야 할 놈이 있는 법이지.”
“내가 왜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이지?”
“내가 굳이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어쩔 수 없었어. 아니,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어.”
“관계없어. 다 네가 행한 일이야.”
여인이 서서히 가물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가물치가 여인의 손을 거부하기 위해 몸을 틀려했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여인의 손이 가물치의 목을 감싸 쥐었다. 가물치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미 짐작하겠지만, 너는 지옥에 갈 거야. 나도 지옥에 갈 거야. 그곳이 어떤 곳인지 나도 모르겠어. 그래서 무서워. 같이 가, 그러면 조금은 두려움이 가실 거야.”
“싫어, 싫어.”
가물치의 목에서 가느다란 쇳소리가 삐져나왔다.
“풀어야 할 전생의 업이 있었을까? 너와 이승에서의 인연은 안 좋았어. 저승에서 이승의 기억이 남아 있을까? 아마 기억은 없고, 업보만 남아 있겠지.”
여인의 넋두리 같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가물치의 의식은 연기에 쌓인 듯 뿌옇게 흐려져 갔다.
“이봐, 친구!”
귀에 익은 목소리다. 흐려져 가던 가물치의 의식을 깨우는 소리였다.
“이봐, 친구. 정신 차려.”
가물치는 감기려던 눈을 온 힘으로 버티고 초점을 모아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새우였다.
“어떻게 여길....”
가물치의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떨렸다.
“한참을 찾았어.”
“미안해, 정말 실수야. 죽이려는 마음은 없었어.”
“괜찮아. 다 운명인 게지. 나의 업이 그러한 걸 어떠하겠나.”
새우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새우가 자신을 해코지하리라고 생각했던 가물치는 새우의 태도에 적이 당황했다.
“궁금해, 나는 어떤 업보로 세상에 왔는지, 어떤 업보길래 이런 인생을 살았는지 정말 궁금해.”
회한에 젖은 목소리로 새우가 말했다.
“무슨 말이야? 너의 운명은 너의 선택이었잖아. 왜 바보같이 횟집을 털자고 부추겼냐 말이야. 그 일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까지는 없었잖아.”
가물치는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 새우 때문인 것 같아 그에게 화가 솟구쳤다.
“상관없어. 이제 다 끝이야. 너도 이 세상에서의 시간을 끝내고 나와 같이 가.”
“나는 아직 죽기 싫어.”
“무서워하지 마. 나와 같이 가자.”
새우가 손을 내밀었다. 가물치가 새우의 손을 뿌리쳤다.
“조금 전의 여인이 그랬어. 나는 분명 지옥에 갈 거라고. 무서워.”
가물치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새우가 가물치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그를 안심시켰다.
“지옥이라고 이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 네가 살아온 삶을 생각해 봐. 어땠어?”
가물치는 잠시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았다. 떠오르는 것은 온통 어둠에 싸인 기억뿐이었다.
힘들고 고단하고 삶이었다.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 이런 팔자로 태어났나, 하고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하기까지 하였다.
“힘들었어.”
“그래, 우리의 삶이 지옥이었어.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 이승의 삶을 다시 한번 더 산다고 생각하면 돼.”
가물치는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하니 이런 삶을 다시 산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안 돼, 이런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데 죽어서도 이런 생활을 하다니 그건 안 돼.”
가물치는 손을 뻗어 새우를 밀쳐냈다. 새우가 가물치로부터 멀어지며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이제 너의 시간은 다 됐어. 살아도 별반 다를 것 없잖아?”
새우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가물치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제쳤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진홍빛 노을이 마치 선명한 핏빛 같았다.
*
치밀한 성격은 아닌 듯했다. 연쇄 살인범답지 않게 그는 자신의 흔적을 곳곳에 남겨 놓았다. 시외버스에서 내린 그는 버스를 타고 인천항 근처의 여관이 몰려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조 형사와 박 형사는 CCTV에 나타난 그의 행적을 집요하게 뒤쫓았다. 골목의 여관들을 샅샅이 탐문하던 그들은 드디어 가물치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조 형사와 박 형사가 여관방에서 가물치를 덮쳤을 때, 그는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다. 가물치는 침대에 누워 초점 잃은 눈으로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체포 과정은 순탄했다. 가물치는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도리어 형사들이 자신을 잡아가 주기를 바라는 듯하였다.
끝났다. 조 형사는 의정부 경찰서로 전근하여 맡은 첫 번째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만족했다. 수갑이 채워진 가물치는 박 형사와 함께 뒷좌석에 앉았고, 조 형사가 운전대를 잡았다.
퇴근 시간이 훌쩍 넘긴 어두운 도로를 차는 막힘이 없이 경쾌하게 달렸다. 몇 날밤을 새웠는지 모르겠다. 피로가 일시에 몰려드는 듯했다. 자꾸 눈이 감겼다. 얼핏 유리창에 무슨 그림자 같은 것이 비췄다 사라졌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신경을 곤두세워 정면을 주시했지만 앞선 차량의 후미등만 보일 뿐 그 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 형사는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흔들며 손으로 뺨을 쓸어내렸다.
순간 전방에서 트럭이 굉음을 울리고 조 형사의 차를 스치고 지나갔다. 차가 휘청거렸다. 다시 유리창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가 점차 선명한 영상으로 바뀌었다. 피를 흘리고 있는 한지은이었다.
“너 뭐야?”
순간적으로 조 형사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급히 핸들을 꺾었다. 차는 브레이크 파열 소리와 함께 뒤집혀 뒹굴었다. 서너 차례 뒹군 자동차는 가드레일에 부딪혀 멈췄다. 잠시 후 폭발음과 함께 차는 불길에 휩싸였다.
다음 날 신문에 사건 소식이 실렸다.
인천의 한 도로에서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태운 경찰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여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와 운전을 하던 경찰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동승했던 경찰은 중상으로 인근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오세주 기자)
차가 불타고 있었다.
“끝인가요?”
가물치가 물었다.
“그래, 그러나 시작일 수도 있어.”
조 형사가 대답했다.
“다시 시작이면 너무 힘들어요. 이 불길이 나의 영혼마저 소멸시켜 주면 좋겠어요.”
가물치의 몸은 점점 불길에 휩싸여갔다.
가물치를 삼킨 불길이 조 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 형사는 그것이 마치 한지은의 원혼처럼 느껴졌다. 이승의 업은 이승에서 끝내야 했다.
조 형사는 자신에게 번져오는 불을 눈을 감은 채 받아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