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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식 Mar 29. 2020

< 길 위의 명상 >

3. 연이은 시행착오_제주올레10-1코스 가파도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목표로 일단 사표를 냈지만 막상 회사를 나와서는 앞으로 뭘하고 살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무엇으로 나의 존재이유를 밝히고 또 어디로 삶의 방향으로 삼아야하는지 여전히 감감했다. 오로지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방법론만 막연히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여태껏 내가 아닌 부모님과 주위 분들의 바람과 생각에 따라 내가 원한 것과 상관없이 살아왔으니, 그럼 이제부턴 그와 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그냥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옛날 아버지는 고향에서 조그맣고 허름한 영화관을 잠시 운영했는데 그 덕분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영화관에서 수많은 영화들을 보며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고 나서도 언제나 영화보기는 나의 최고의 취미이자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면 반짝이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구하면 찾게 되는지, 평소 외부 모임을 통해 알고 지내던 기획 영화사 대표에게 그런 바람을 솔직하게 전했고 그분도 흔쾌히 같이 해보자고 수락해서 3년 남짓 꿈에 그리던 영화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릴 적 만화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로봇태권브이 캐릭터를 실사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게임으로, 테마파크로 다양하게 부활시키는 사업을 추진해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인연이 아니었던지 그때가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었던 시절이었지만 이런저런 사업기획들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영화사도 어려워졌고 대한민국 전체 영화산업계의 불황이 겹쳐 회사가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면서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절이 그랬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의욕만 왕성했던 나를 기꺼이 머물게 하며 영화산업계의 다양한 경험을 하게하고 더불어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지원해준 영화사 대표에겐 지금도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여하튼,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하고 싶었던 영화사가 나에게 허락된 길이 아니었음을 확인했지만, 마음속에 늘 하고팠던 작은 소원 한 가지를 시도해 보았고, 비록 영화사를 그만두어야 했지만 영화업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지울 수 있었다. 원 없이 부딪혀 보았고 경험해 보았으니 결과와 상관없이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다음엔 또 어디로 다시 방향을 잡아 나아가야 할지 첩첩산중이기만 했다. 타인이 아닌 나의 바람으로 시작했던 첫 번째 길이 봉쇄되자 다시 길을 잡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를 수개월이 지나도록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은 지금까지의 행보보다 더욱 깊은 차원에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향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쪽으로 막연하지만 가닥이 잡혔다. 남들처럼 공부해서 대학 가고 취직하고 돈 벌고 잘 살고 성공하고, 그런 삶을 추구하며 살았으니 그와 반대로 살아보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취직해서 돈 많이 벌고 잘 살고 성공하는 것과 반대로 사는 것, 그러니 앞으로 돈 벌어 잘 사는 게 아니고, 그렇게 성공하는 게 목적이 아닌 삶을 향해 살아야겠다는 길 하나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아보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대도시 서울이 아닌 외딴섬 제주도로 내려와 비영리사단법인을 설립하게 되었다. 

  막상 제주도로 내려와 서울에서 꾸려온 짐을 거처에 부려 놓자 동네 어르신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을 건네 온다. “멀쩡한 양반이 앞으로 이디 뭐 함심 먹고 살꺼우꽈?” 앞으로 여기서 뭐하면서 먹고 살 거냐는 말이었다. 막막했지만 돈 벌어 잘 먹고 잘 살아 성공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그게 바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조직, 즉 비영리사단법인을 설립해서 세상과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비영리사단법인을 세웠으나 세상과 사람들을 위한 일이 뭐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일을 하되 비영리사단법인은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외길 수순이었으므로 없는 길이라면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했고 아는 게 없다면 그때부터 새로 공부를 해야 했다. 2010년에 비영리사단법인을 설립하고 우선 제주도교육청을 통해 재능교육기부 프로그램 사업을, 그리고 2012년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세계 환경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세계자연보전총회’를 맞아 2020년까지 제주도를 ‘세계환경수도’로 만들자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이라며 기획안을 수없이 많은 밤을 새우며 작성해 들고는 제주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우리나라 전래의 관습인 두레나 품앗이와 같은 상부상조의 정신이 제주도에도 ‘제주수눌음’이란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었는데, 아무런 대가 없이 어려운 때 이웃을 돕고 살자는 제주도만의 독특한 정신에 매료되어 제주수눌음 정신을 재발견하고 계승해서 발전시켜 가면 좋겠다는 판단에 따라 그런 내용을 기획안에 녹여 내었다. 제주도를 지역별로 나누어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생태관광단지로 조성해서 제주도의 관광자원을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제주도를 찾는 외래 관광객들이 오랫동안 머물 수 있도록 콘텐츠를 개발해 지역경제활성화를 함께 도모한다는 청사진을 만들어 뛰어다녔다. 제주도청으로 마을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접촉했고 드디어 이제 뭔가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정신없이 지내던 시절을 몇 년 동안 그렇게 보냈다. 하지만 세계자연보전총회가 종료되자 그동안 함께 했던 제주도청과 연계기관들과는 더 이상 연락이 이어지질 않았고 후속사업들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비영리사단법인을 꾸려갈 인력과 사업목표들을 지속해 갈 수 있는 에너지원을 미리 확보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무능함으로, 행사가 끝나자마자 2020년을 준비하는 거창한 행사 기획안과 플래카드만 남겨 놓고 더 이상 비영리사단법인을 운영해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2년 여름, 역대급 태풍이었던 볼라벤이 제주도를 강타하면서 안덕면 사계리 너른 들판에 하얀 돔으로 만들어 놓은 건축물들이 모두 망가지고 무너져 내렸다. 재기내지 성공의 꿈은 태풍과 함께 무너진 사무실의 잔재처럼 흩어졌고, 함께해온 동료들도 어쩔 수 없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면서 기약할 수 없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의 무능력과 리더십 부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뼈아픈 시간이 도래했다. 거기에 더해 그해 12월엔 제자의 성장을 학수고대하며 삶을 이끌어주던 스승마저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삶의 목적과 방향을 발견한 다음 우직하고 한결같이 나아갈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막연히 옳다고 생각한 방향으로 요행 같은 우연을 바라며 시도한 일들의 결과는 참담했다. 영화산업의 화려한 겉모습에만 호기심 가득했고, 서울 대기업에서와 다르지 않은 제주판 성공 시나리오를 그리던 나에겐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무언가 멋지고 근사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명분만으로 치장하며 겉도는 삶을 사느라 분주했을 뿐, 실제 그 일들이 가능하기 위해 쏟아부었어야할 보이지 않는 땀방울과 노력과는 동떨어진 삶을 산 당연한 결과였다. 홀로 서지 못한 절름발이 영혼, 영혼과 삶이 하나로 연결되지 못한 표리부동의 영혼, 허명으로 동료들을 다그치며 그들의 힘겨운 어깨 위에 안이하게 올라 앉아 나만 드러나 보이고자 했던 이기적인 영혼, 나에겐 진심도 진정성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이고 쌓일 수 없는 모래성을 짓고 있었다.   

   

***     


두 번째길제주올레10-1코스 (가파도)  

   

  우도, 섶섬, 문섬, 새섬, 범섬,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 차귀도, 비양도, 추자도. 제주도의 동쪽에서 출발해 남서쪽으로 한 바퀴 돌며 제주도를 감싸고 있는 섬 속의 섬들이다. 무인도라 갈 수 없는 곳도 있고 뱃길로 연결되어 사람의 왕래가 가능하게 되면서 촌락을 이루고 있는 곳들도 있다. 제주올레에서 부속 섬들을 코스로 잡아 이어 놓은 곳이 있는데 가파도(10-1), 우도(1-1) 그리고 추자도(18-1)가 그들이다. 부속 섬들은 섬 밖으로 벗어 나와 제주도란 거대한 섬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장소들로, 그중에서 딱 한 군데만 따로 뽑아 추천한다면 바로 가파도다. 제주올레 10코스 중 송악산둘레길에서 바로 바다 건너로 이곳 가파도가 나지막이 보이고, 거꾸로 가파도에서 바라보면 송악산둘레길의 해안절벽과 조금 더 멀리 산방산과 알뜨르비행장을 굽어보는 모슬봉이, 그리고 아주 멀리로 구름 없는 날은 한라산까지 이어지며 이미 지나온 길을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우리나라 섬들 중 표고가 가장 낮아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섬이 모두 잠기고 쓸려 내려가지는 않을지 괜히 걱정이 되는 곳인데, 비탈진 곳 없이 섬 전체가 평평한 가파도에는 먹을거리가 없는 섬사람들이 그들의 귀한 식량이 되어준 보리농사를 지어 왔다. 매년 봄 3~4월이 되면 청보리가 섬 전체를 가득 메우고 푸른 바다와 초록 청보리가 어우러져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이때는 가파도 청보리축제가 열리면서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왕복운항 여객선도 수시로 다니면서 오랜만에 섬 전체가 시끌벅적해진다. 섬사람들이 봄에는 청보리로, 가을에는 해바라기와 코스모스를 심어, 바람이 너무 많은 겨울과 그늘을 만날 수 없는 한 여름만 아니라면 가파도는 언제 가더라도 초록, 노랑, 분홍이 너울대며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탁 트인 제주 바다의 또 다른 장관을 선물한다.      

  가파도행 여객선에 몸을 싣고 약 15분쯤 바다를 가로질러 이내 도착하는 북쪽 포구에  내리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파도를 걸을 수 있지만, 제주올레에서 안내하는 방향대로 올레 리본을 따라 4.2km 거리를 S자 코스로 섬을 종회무진 다닐 것을 추천한다. 마라도를 만나게 되는 가파도 오른쪽 바닷길로 시작해 가운데 청보리 밭을 가로질러 걷고 다시 한라산을 끼고 앉은 제주도 본섬이 시야에 들어오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면서 그냥 행복하단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 30분 정도면 마무리되는 가파도 산책은 이 섬이 얼마나 작은 곳인지를 실감케 하고 제주도 본섬이 한없이 넓은 대륙같이 느껴진다. 제주도가 만약 가파도 크기였다면 섬사람으로 10년 넘게 살 수 있었을까를 떠올려보게 되는데 고개가 갸우뚱해지는걸 보니 아마도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제주도의 삶을 시작한 산방산과 모슬포를 한발짝 떨어져 보고 싶을 때에는 무시로 가파도를 다시 찾는다. 

    

* 찾아가는길  

   

모슬포 운진항에서 매일 가파도를 왕복하는 여객선이 약 1시간 간격으로 있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모슬포 운진항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배편은 당일 바다 날씨에 따라 운항이 결정되므로 사전에 모슬포 여객선터미널(064-794-5490)에 연락을 해서 운항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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