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의 침입
아토스는 영지의 업무로 영지와 조금 떨어진 도시 '툴루즈'로 떠나기 전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마음속 깊이 아라미스와 라울을 두고 혼자 떠나는 것이 걱정되었다.
아라미스는 그의 출발 전날 밤, 총사대 시절 무기를 다루던 솜씨를 발휘해 조용히 칼과 권총의 성능을 챙겨 아토스 앞에 내밀며 말했다.
“여기 있어. 당신의 무사 귀환을 위해 준비했어. 먼 길을 가는데 우리가 얼마나 불안해할지 알잖아.”
아토스는 그녀의 손길이 닿은 무기를 받아 들며 짧게 웃었다.
“고맙다. 하지만 네가 더 조심해야 해. 알겠지? 나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을 보내야 해.”
“걱정 마. 우리는 삼총사고 나는 파리 최고의 검객 아라미스잖아. 누가 감히 우리를 건드릴 수 있겠어?”
아라미스는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었지만 아토스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툴루즈에 도착한 아토스는 업무를 처리하며 흉흉한 소문들을 들었다. 요즘 일대에서 활동하는 강도 무리가 단순히 재물을 훔치는 것을 넘어, 젊은 여성을 납치해 겁탈하거나 노예 시장으로 팔아넘기는 끔찍한 짓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금발에 파란 눈을 하고 있는 젊은 여성의 경우 무조건 그들의 납치 대상이 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 소문은 그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는 일정을 최대한 빠르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라페르 영지에 도착한 날, 아토스는 저택 앞에서 아름답게 꾸미고 그를 반기는 아라미스와 라울의 모습에 안도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분명 칼에 스친 듯한 상처를 본 순간 그의 미소는 사라졌다.
“그 상처, 대체 뭐야?”
아토스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안에 걱정이 가득했다.
아라미스는 손으로 상처를 살짝 만지며 무심한 척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실수로 스친 거야.”
“실수? 아라미스! 칼로 스친 상처가 분명한데 그게 무슨 실수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토스는 그녀에게 다가가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아라미스는 잠시 머뭇거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검술 연습을 하려고 숲에 갔는데... 어떤 자들이 숲에서 길을 막았어. 그들에게 겁을 주려도 일부러 칼을 들고 나섰지. 다행히 그들의 실력은 보잘것없었고 그 자리에서 도망갔어. 상처는 그저 스친 정도야.”
아토스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이 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는 것이 더 그를 속상하게 했다.
“아라미스. 네가 얼마나 강한 검술의 달인인지 알아. 하지만 네가 다칠 때마다 내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넌 모를 거야.”
아라미스는 미소로 그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아토스는 그녀를 더 꼭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다음부터는 나한테 말해. 나 없는 동안 뭐가 되었든.”
아라미스는 그의 품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아토스는 아라미스의 말을 믿으려 했지만 그녀의 미묘한 표정 변화와 조금씩 어긋나는 이야기에서 조금씩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침착하게 아내를 다시 불러 앉히고 물었다.
“아라미스 내 앞에서 거짓말은 하지 마. 정말 숲에서 있었던 일 정말 그뿐만이야?”
아라미스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결국 숨기고 싶었던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숲에서 만난 놈들은 그냥 날 떠보는 정도였어. 문제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있었어. 그 우두머리와 함께 밤중에 저택으로 몰래 잠입해 침실로 들어왔어.”
아토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라미스는 눈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이었어... 내가 검술을 잘한다는 것을 저택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싸워야 했어. 그래서 내가 그들을 밖으로 유인했지. 치열했지만 결국 그들을 제압하고 생포했어.”
아라미스는 손끝으로 자신의 칼에 스친 상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그때 생긴 거야. 내가 잠시 실수했을 때 생긴 상처였어. "
아토스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분노와 걱정 그리고 혼자 두고 간 깊은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다.
“왜 말하지 않았어, 아라미스? 내가 떠난 사이 그런 일이 있었다면 바로 나한테 전갈을 보냈어야 했어.”
“알잖아 아토스. 당신은 일로 바빴고 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
아라미스는 조용히 말했지만 아토스를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다.
아토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니야. 네가 다칠 수도 있었잖아. 라울까지 위험했을 수도 있고.”
그는 그녀의 팔을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넌 늘 강하려고 해. 그게 너다워. 하지만 내가 곁에 있을 때는 나를 믿어야 해. 널 지키는 건 내 책임이야.
아라미스. 널 혼자 두는 게 이렇게 위험할 줄 알았다면 절대 툴루즈에 가지 않았을 거야.”
아라미스는 그의 손길을 느끼며 미소 지으려 했지만 그의 심각한 표정에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아토스는 이어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은 그녀를 책망할 때가 아니라 상황을 해결해야 할 때였다.
“그 자들은 어디에 있어?” 아토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라미스는 조금 망설이다 대답했다.
“뒤뜰 창고에 가둬뒀어. 내가 심문하려고 했지만... 확실한 정보를 얻기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 해.”
아토스는 아라미스가 그들을 고문까지 하면서 심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토스는 칼을 챙기고 바로 창고로 향했다. 아라미스도 그의 뒤를 따랐다.
창고 문을 열자 두 남자가 묶인 상태로 앉아 있었고,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 보다 절대 말을 하지 않으려는 고집이 더 강해 보였다.
아토스는 아라미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라미스. 잠시만 밖에 나가 있어.”
“하지만?”
“나에게 맡겨. 넌 충분히 했어. 이제 내가 처리할게.”
아라미스는 이런 상황에 아토스가 어떻게 할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문 밖으로 나갔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창고 안에서는 낮은 목소리와 간혹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비명이 들리고.
문이 열리고 아토스가 나왔을 때 그의 얼굴에는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는 머플러로 대충 얼굴을 닦으며 문을 닫았다.
“아토스! 그들이 누구야? 혹시 철가면 일당이야?” 아라미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토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없이 창고 문을 잠갔다.
“아니. 그저 여자들을 납치해 팔아넘기는 인신매매 강도들일뿐이야.”
“그래?”
철가면 일당이 아니라는 소리에 안심하는 아라미스에게 아토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라미스. 이 일은 이걸로 끝났어.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는 이어 말했다.
“단순한 강도들은 아니었지만...... 내가 영주의 권한으로 저택에 무단으로 침입한 자를 처벌했으니 다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라미스는 그의 말에서 어떤 진실을 숨기려고 하는 것을 눈치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라미스는 아토스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는 혼자 하려고 하지 않을게.”
아토스는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녀가 알아서는 안 될 진실을 감추려는 복잡한 마음이 있었다. 그는 아라미스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네가 여기서 나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감사해.”
그는 문 밖으로 걸어 나가며 창고에서의 일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썼다. 하지만 불안감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아토스는 얼굴을 씻고 방금 전의 일을 생각했다.
아토스는 창고 안에서 묶여 있는 두 남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미 아토스는 칼로 그들에게 충분히 고통을 준 상태였다. 그들은 이제 겁에 질려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은 그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왜 이 집에 침입했지?” 아토스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단호했다.
한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린... 그저 돈 좀 훔치고... 그리고 그 부인을...” 그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토스의 눈빛이 더 차갑게 변했다.
“그다음은 뭐지?”
다른 남자가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부인에게 손 하나 대지 않았어요. 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금발을 한 여자를 맨손이라는 자에게 넘기려 했던 겁니다! 우리가 원해서 한 것도 아니고, 그 낙타라는 별명을 가진 맨손이라는 자가 우리에게 명령을 해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맨손?"
“그... 그 자가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젊은 여자들을 데려가면 돈을 몇 배로 더 많이 준다고 해서... 우린 그냥 심부름꾼일 뿐이에요!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요. 목숨만 살려주세요!”
아토스는 잠시 그들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맨손이라는 이름. 철가면 대장의 오른팔 부하였던 자의 이름. 16세의 아라미스의 약혼자였던 프랑소와를 죽인 '낙타'라는 별명을 가진 맨손이다. 그는 오래전 프랑소와를 죽인 것으로 모자라 몇 년 전 철가면 조직의 요새에서 아라미스에게 여자로 씻지 못할 치욕을 안겨준 놈이었다.
당시 아라미스는 복수를 위해 모든 힘을 다해 맨손을 처단하려 했고 최후의 결투를 벌였다. 맨손은 분명 아라미스에 의해 절벽에서 떨어져 바다로 떨어졌다. 아토스도 아라미스도 그 현장을 목격했다. 분명 죽었을 것이라 아라미스는 물론 아토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가 결국 살아남아서 아라미스를 찾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이 엄청난 큰 위험을 내포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또한 이들이 단순한 강도가 아니라 맨손과 얽혀 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 놈들을 정부 관활에 넘기면 내 가족의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가겠지.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아토스는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희 같은 자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다. 이곳에서 다시는 누구도 해치지 못하게 해야겠지.”
남자들은 겁에 질려 바닥에 엎드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아토스는 독사보다 차가운 눈빛으로 칼을 들었다.
그날 밤 창고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토스는 아라미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아라미스는 그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토스는 늦은 시간 혼자 창고에 불을 지르고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는 내가 없더라도 아라미스가 이런 상황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해야겠어.”
그날 밤. 아토스는 잠들지 못하고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맨손이라는 이름. 그 자의 행적이 자신과 아라미스 그리고 라울의 미래에 새로운 위험을 가져올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계속 떠나지 않았다.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