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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Sep 23. 2024

셋이 있으면 뭘 안 해도 재밌다

주말부부의 주말 일상




올해 6월, 갑작스레 타지로 발령이 난 남편덕에

팔자에도 없던 주말부부 생활이 시작된 우리 집.


뭐 특별할 거 없던 일상은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늘 활기찼던 우리 집인데

남편이 없으니 가끔 축 쳐진다.


평일은 너무도 길다.

주말은 왜 이리 짧은 걸까.


얼른 주 4일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한 요즘이다.




그래서 자주 기차를 타고 남편에게 향한다.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미리 대구에 가서

여행 왔다 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금요일에 퇴근한 남편과

함께 집으로 내려오는 루틴.



좀 있으면 볼 건데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빨리 보면

좋다 ♡



자주 기차를 탄 덕분에

아이는 기차에서 조용히 앉아있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나도 기차에서 힘 빼지 않고

아이와 함께 창 밖을 바라보며 세상 구경을 하는 여유가 생겼다.




역에 도착하니 우릴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함께 맛집도 가고, 동네 구경도 하며 보낸 시간.


아빠를 바라보며 환히 웃는 아이를 보니

일찍 와서 조금이라도 함께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와서, 많이 놀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래도 드라이브 겸 즐겁게 대구 구경 했으니

더 비가 쏟아지기 전에 얼른 부산으로 내려가자.



요즘 우리는 대구로 이사를 갈까 말까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나만 결정을 하면 되는 일인데,


한 번도 고향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에게

타지로 오는 것, 그 자체가 무서운 일이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빠를 너무 좋아해

어디서든 아빠손 꼭 잡고 놓지 않는 아이를 보면

이사 가서 함께 있는 게 맞는 것 같다가도

또,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할 미래 생각만 하면

가기도 전부터 피곤해지는 마음.



들쑥날쑥이던 생각들로 한참을 힘들어했던

나는 지난주에 결정을 내렸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전세 내놓기로.


그리고, 고민하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집은 금방 나갔다. 단 하루만에.


와 되려면 이렇게도 되는구나-



물론, 이사를 결정한 것에

경제적인 이유도 없지 않다.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남편의 생활비가 더 많이 나가기도 했고, 왔다 갔다 교통비부터 알게모르게 세어 나가는 돈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으니.


외벌이 생활을 하며 늘 절약하던 우리 집 가계에

조금씩 새어나가던 돈들이

내 눈에 거슬릴 만큼의 큰돈이 된 것이다.



더불어 돈도 돈이지만

주말부부인 지금의 모습이

우리가 살고 싶어 했던 일상이 아닌 것도 한 몫했다.


맞벌이 부부로 지내던 우리가 외벌이를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시간을 위해서 외벌이 부부를 선택했던 우리.



셋이서 함께 보내는 일상들을 즐기기 위해

내가 일을 그만둔 건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 싫었다.




어쩌면 우리는 국민연금을 못 받을지 모른다는 요즘 세상에 아이 하나 키우면 몇 억은 금방 쓴다는 요즘 세상에 외벌이를 선택하며 돈 걱정 한 번 안 했다면 거짓말 아닐까.


아마 맞벌이 시절보다 허리띠를 졸라 메야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일 거고, 뻔히 보이는 미래가 무서워 일을 계속해서 다녔던 나.



외벌이를 결심하며 얻은게 뭐겠는가. 시간.


돈 대신 얻은 게 시간인데,

이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말도 안돼.



그래 이사가자.


지난 일요일, 우리 아들의 세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남편이 차린 생일상을 맛있게 먹고,

할머니가 사준 핑크퐁 자동차에

한참을 까르르 대던 아이.


케이크니, 국거리용 한우니, 장난감이니

결국 돈 쓸 일 밖에 없었지만


이런 데다가 돈 쓰려고

돈을 벌고 절약하고 저축하는 거 아니겠는가.



주말 내내 내리던 비가 귀신같이 멈춘 오늘 아침.


왕년에 군대에서 이발 좀 해봤다는 남편의 손기술 덕분에

밤톨이같이 귀여워진 아들 손잡고 나선 등원길.


'와 날씨 좋다-'

라며 오늘 마치고 놀이터 가자고 약속하고

어린이집을 향한 아들.


오전에 체력을 잘 비축해둬야겠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좋아 집에 있는 창문들을 모두 활짝 열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진짜 가을이 온 것만 같다.




셋이 있으면 뭘 안 해도 즐겁다.

셋이라 좋은 건지

그냥 우리가 함께라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즐겁다.


얼른 이번주도 지났으면...

남편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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