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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Oct 07. 2024

시부모님과의 적당한 거리감과 편안함

달달한 포도


지난주 수요일. 다음날이 휴무라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다가 어린이집에서 날아온 알림장에 쓰인 금요일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보았다.


와 내일 쉬는 날이야?





주말부부인 우리 부부가 쉬는 날마다 모두 함께 할 수 있다면 너무도 좋겠지만, 남편이 당직을 서기도 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휴무도 당직이라 내일 오지 않는 남편.



한참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우리 아빠 보러 갈래?라고 물어보자 좋아라며 해맑게 웃는 아이의 웃음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오후 5시 30분.

차가 막힐 시간이라 대구에 도착하면 7시가 넘을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일단 출발해 보자.





오후 7시 11분.

대구에 도착해 쉬고 있던 남편을 한 번 놀라게 해주고 대구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시댁을 향했다.



한 시간 정도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 덕에

주말부부가 된 이후 부쩍 자주 방문 중인 시댁.




다음날 시댁의 작은방에서 일어나

아침 일찍 출근 남편의 빈자리를 뒤로하고

거실에 나서자 어머님이 아이의 아침밥을 챙겨주고 계셨다.


'나들이 갈실래요?' 라며

어머님 아버님을 꼬드

외출 성공!!




결혼한 지 7년 차.

어느새 어색함은 저 멀리 사라지고

나름의 편안함이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한 관계.


물론 완전한 편안함은 없는 게 너무 당연해 보이는

며느리와 시부모님 사이의 관계.


편안하면서도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지금이 난 나쁘지 않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 도하와

그걸 바라보며 남편의 어린 시절을 괜스레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이 히 좋다.


울 남편도 어릴 때 이렇게 귀여움 많이 받았겠지 하며 괜히 뿌듯해지기도 하는 시간.





아이들의 눈은 참 신기하다.

나에겐 한 번을 업어달란 말이 지 않던 아이가 이상하게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겐 계속해서 업어달라고 한다.


할아버지 힘드셔. 안돼.

아무리 말해도 그저 허허 웃으며

아이를 업는 아버님.


아마 아이도 느낀 걸까?

이렇게 해도 본인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는 걸 아마 알고 있기에 당당히 업어달라는 거 아닐까.





산책을 마치고

가까운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딸 하나 키우는 우리 집과는 달리 아들만 둘인 시부모님은 딸이 어서 그런가, 내가 카페에 가자고 하면 정말 반갑게 가고 싶었던 카페들을 읊으신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우리 엄마와 너무 달라 가끔 당황스럽기도 하다. 내가 어디 가자고 하면 그저 귀찮다고 하던 친정엄마가 이 모습을 보면 신기하게 생각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딸이고 아들이고의 차이보다 그냥 우리 엄마 성격이 돌아다니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은 성격이었나 싶기도 하. 집순이 엄마 ♡





남편 없이 아이와

이서 돌아다니며 놀던 목요일.


금요일에는 포도밭에 들려

포도를 오기 했다.





당도측정기로 포도 측정해 가며 당도가 높은 것들만 골라서 주겠다는 어머님과 아버님.





정말로 아무거나 다 괜찮은데

또 달달한 거 주신다고 하니

더 이상 거절하진 않았다.




아파트 숲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그 흔한 시골 할머니댁도 없던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시골에 오게 되었다. 누군가가 농사를 짓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건 지금이 처음인데, 1년 농사를 지켜보니 과일값이 비싼 건, 채소값이 비싼 건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것 같았다.


물론 중간에서 유통업자가 빼먹는 돈도 많겠지만 이것저것 다 떠나서 농부들의 1년간의 노고를 그냥 너무 비싸더라 라는 말로 퉁치고 싶진 않아 졌다.



비쌈에도 싱싱한 채소를 사 오고

맛있는 제철 과일은 맛있게 먹을 줄 아 것.


한 해 농사에 최선을 다한 농부들에게

제 값을 지불한다는 생각을 가지자

장 볼 때 더 싼 걸 찾기보다는 더 맛있어 보이는 걸 찾다.






포도 모델 시켜줄 테니 사진 찍자고 하니

자세를 잡아주는 귀여운 아들.


v브이 v




야무지게 샤인머스캣을 따와

포장을 하고 박스에 담았다.



시댁과는 거리를 두고 지내야 한다.

뭐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다.


이런저런 기혼자들의 조언은

더 이상 귀에 담지 않는다.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육아에 있어서도, 직업에 있어서도, 투자에 있어서도 누군가의 내가 스스로 찾아서 알아보고 공부하는 게 아닌 이상 원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충고는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누군가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비참한 실패를 하는 게 인생이라 그러더라.


태어난 순간부터 살아가는 과정은 모두 선택에 의해 결정된 삶인 거지, 성공한 삶도 실패한 삶도 가보지 않은 삶의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더 이상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자

모든 순간에 나라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시댁에 자주가지 않았다면

당도 20 브릭스의 포도는 얻지 못했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오늘 아침, 오늘도 일찍 일어난 아들과 포도를 한 송이 꺼내 씻어 먹었다.  


아 달콤해-


달콤하다는 아이 곁에서

나도 포도를 하나 집어 먹었다.


음 맛있네-

올해 내가 먹어본 포도 중에 가장 달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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