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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Oct 29. 2024

길을 잘못 들었지만 괜찮았던 오늘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이제 딱 한 달 정도 남은 대구 이사.


추운 날씨에 10월이 끝나가고 있음이 느껴지자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


부산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부산에서 살았던 딸이

이사 간다는 사실이 이사가 아니라 이민으로 들리는지 요즘 들어 자주 연락을 하시는 부모님.



- 엄마 아빠랑 코스모스 보러 갈래?




저 이제 30 넘었는데요...

젊은 제가 코스모스를 어머니 아버지만큼 좋아하겠나요?


괜히 투덜투덜대며 따라나섰지만

아빠 차에 타 밀양에 오는 길은 꽤나 즐거웠다.

도착지에 가까이 다가가자

멀리서부터 보이는 코스모스 밭.


와 이제 도착했다! 하고 주차장을 찾는 데,

엥? 도저히 입구 찾지 못하겠다.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요 ㅠㅠ


눈 앞에 목적지가 보이지만 들어갈 수 없는 상황.

한참을 도로를 빙빙 돌아대던 우린

유턴에 유턴에 유턴을 하며 겨우 주차장을 찾았다.



평소 같으면 약간의 짜증이라도 났을 상황이 분명한데 짜증은커녕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길을 겨우 찾아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


휴 다행이다.



힘들게 찾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시작한 산책.



아직 젊다며 꽃은 안 좋아 한다고 했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본 오늘 코스모스는

너무 예뻤다.





오전 내내 열심히 꽃구경을 마친 우리는

근처 식당에 들러 어탕수제비로 점심을 해결했다.

(너무 맛있어서 엄마의 수제비까지 빼앗아 먹고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은 비밀 ㅎㅎ)





밥 먹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

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중이였다.


산책 다하고 집에 오는데 비가 온다고?

완전 러키 비키잖아 > <

걷고 있을 때 비가 안온 게 얼마나 다행이야 -



아빠가 지하주차장까지 데려다주셔서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도착한 집에는

어린이집에 갔던 아이가 돌아왔고

여전히 밖에 내리는 비.


오늘은 놀이터는 못 가겠다 싶어

집에서 보낸 아이와의 시간.



엄마 나 배고파.




한참 재밌게 놀던 아이 배고프단 소리에 시작한

오늘의 녁메뉴인 닭볶음탕!


냉장고를 열자

어제 쿠팡에서 우유와 요구르트를 주문하다

할인 중이길래 함께 시킨 냉장 닭이 눈에 보였다.


집에 있던 당면을 넣고

간장 베이스로 간을 한 나름의 양념장을 가지고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어릴때부터 닭볶음탕, 치킨, 백숙, 삼계탕, 닭구이.

닭이란 닭요리는 죄다 좋아하는 나 때문인지

아들도 닭고기를 잘 먹는 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었고

우리 둘은 웃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식탁은 고요했다.


흠, 아빠 없이 둘이서 먹는 저녁식사는

힘들다기 보단 외롭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




주말부부의 치명적인 단점.

평일 내내 아이와 둘이서만 먹는 저녁식사는

생각보다 외로웠다.


그리고 이 외로운 저녁식사는

4개월의 시간동안 날 괴롭혀

결국 대구로 이사 가는 결심을 하게 만들어버렸지-







물론 요렇게 귀여운 아들이

말까지 많은 덕분에

외로움을 길게 느끼고 있진 않지만

남편이 너무 보고 싶은 건

어떻게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이제 한 달만 더 참으면 아빠한테 갈 수 있어 ㅠㅠ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





<월든>_소로


아들이 잠들고 얻은 오늘의 자유시간,

요즘 읽 책을 펼쳤다.  소로의 <월든>




'왜 우리들은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 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내일의 아홉 바늘 수고를 막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일, 일, 하지만 우리는 이렇다 할 중요한 일 하나 하고 있지 않다. 단지 무도병에 걸려 머리를 가만히 놔둘 수가 없을 뿐이다.'




지난 십 년간 내가 가장 못하던 거,

오늘을 사는 것.


그래서 그런가? 한참동안 문장에서 나오지 못했다.







최근 너무 보고 싶었던 영화까지 본 오늘.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영화 평 같은 거 할 줄 모르지만

그냥 내 생각을 말하자면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영화 내용이 잔잔하게 흘러가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


비 오는 뉴욕거리와

재즈곡과 참 잘 맞았다.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이 다했다는

평이 많던데 굉장히 공감했다.

(묘한 매력이 있는 배우다...)



//재즈 곡을 부르면서 피아노를 치던 장면은

영화 끝나고도 계속 생각나서

한참 유튜브로 그 노래 틀어놨었음






남녀주인공의 로맨스가 중점이 되었지만

로맨스보다 남주(개츠비)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었던 나...




Find some brilliant way to ruin my life.

내 인생을 망칠 멋진 방법을 찾아야지.       








코스모스 밭 주차장을 찾지 못해

한참을 빙빙 돌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려

아이와 놀이터에 가지도 못하고 집에 왔지만


주말 내내 함께 있던 남편이 없어

저녁 먹는 동안 괜히 좀 외롭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괜찮았던 하루다.



엄마아빠와 예쁜 꽃 구경하며

즐겁게 산책도 했고,

맛있는 것도 먹었고,

싸게 산 닭으로 맛있는 닭볶음탕을 요리해

아이에게 맛있다는 평을 들었고,

일찍 잠든 아이 덕분에 책도 읽고,

보고 싶던 영화도 봤으니깐.




아마도 내 생각엔

길을 잘못 들었지만

그저 허허 웃으며 '여기가 어디지' 하던

아빠의 무던함이 만들어

괜찮은 하루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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