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새로 생긴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온 지 얼마 됐다고 또 이사라니.
이사비용만 벌써 얼마를 쓰는 건가 싶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듯 여기엔 당연히
나름의 어쩔 수 없는 '개인사정'이 있다.
갑작스럽게 타지로 발령이 난 남편.
직업적 특성으로 언젠간 타지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했지만 그 순간이 지금일 줄은 정말 몰랐다. 아마 알았으면 이사를 하지 않았을 거야...
누구도 예상 못한 타이밍의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우선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한 우리 가족.
대구에서 부산
부산에서 대구.
지난 오 개월 간 줄기차게도 왔다 갔다를 했더니
돈도 돈이었는데 돈도 돈이었다.
사실 돈이 문제였다.
남편이 가든 내가 가든 한 달에 한 번만 만나는 게 아닌 이상 교통비며 도로비는 일주일에 몇 만 원씩 쓰는 건 십상이었고 그 돈이 나에겐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물론 기차여행이니 운전이니
늘 나와 함께하던 4살 베기 아들은 좋아했지만
아들 데리고 왔다 갔다 하는 엄마는
피로 풀틈 없이 쌓이기만 하고 있었다.
,
돈도 돈인데 내가 너무 피곤해.
이건 아닌 것 같아.
어차피 난 일도 쉬고 있고
타지생활도 하고 싶었으니까
겸사겸사 잘 됐어.
대구로 한 번 이사 가보자.
패기였다.
32살, 젊은 엄마의 패기로
연고지도 뭣도 없는 지역으로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는 마음으로
남편이 아니라 날 위해서라는 정신승리를 하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우리 집도 전세를 내놨다.
될놈될이라 했던가.
요즘 같은 시국에 전세가 나가겠어?
했던 우리 집은
내놓은 다음날 보러 온 신혼부부가
바로 계약을 하겠다고 했고
설마 집이 나가겠냐며 쉬엄쉬엄 대구를 돌아다니던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급하게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도서관이 가까웠으면 좋겠어.
다른 건 생각 안 했다.
그냥 남편의 직장과 가까운 도서관들을 검색했고
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집들을 돌아다녔다.
100% 만족스럽진 않지만
꽤나 내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고,
그날 바로 계약금을 보냈다.
좋아 이제 나도 월세살이 시작이다!
이사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포장이사를 했고
원래 쓰던 가구와 가전을 그대로 옮겨놨다.
새로 산 건 사이즈가 맞지 않아 쓸 수 없는 커튼뿐.
나머지는 모두 쓰던 그대로다.
부동산 중개료에 이사비에 자잘하게 나가는 돈이 많아 어떻게든 돈을 아끼고 싶어 더 사지 않은 것도 있지만, 사고 싶은 게 없기도 했다.
이사 온 지 한 달.
걸어서 오분 걸리는 도서관이 너무 좋아
집정리도 아직 완전히 되지 않았는데
매일같이 놀러 가고 있다.
아이와 함께 가기도 하고,
혼자 들려 책을 읽고 돌아오기도 하는데
도서관이 가깝다는 것만으로도
이사에 쓴 돈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아는 것 하나 없는 곳,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
상황상 어쩔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 스스로 만들어 낸 고립감으로 가득 찬 도시.
지하철도 기차도 차도 사람도 많은 대도시에서
가끔 느껴지는 외로움이 괜스레 특별하게 느껴진다.
매 해 보던 단풍도
겨울이 다가오면 느껴지던 추위도
올해는 또 다르다.
1층집이라 가끔 집 앞에 나타나는 손님.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나에겐 반가운 손님은 아니지만
강아지며 고양이며 동물이면 다 좋다는 아들에겐
행복한 순간이 되기도 하고
감기가 걸려 추운 날씨의 산책이 나에겐 걷는 내내 힘든 일이었지만
혼자 왔을 때 좋았던 장소를
나와 함께 오고 싶었다던 남편에겐
행복한 순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매일 저녁 아빠를 찾아대던
아직은 주말부부를 이해하지 못하던 아들에게
더 이상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아빠와 함께 잠잘 수 있는 저녁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된 건
가족들 아무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행복.
이사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제 짐도 다 풀었고,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도 시작되어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앞으로 짧으면 2년,
길면 얼마나 더 길어질지 모를 대구에서의 생활이
마냥 행복한 순간으로 남겨졌으면 좋겠다.
안녕 대구.
앞으로 잘 부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