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주 Dec 06. 2024

타지살이의 시작

굿바이 부산!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온 지 얼마 됐다고 또 이사라니.


이사비용만 벌써 얼마를 쓰는 건가 싶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듯 여기엔 당연히

나름의 어쩔 수 없는 '개인사정'이 있다.




갑작스럽게 타지로 발령이 난 남편.


직업적 특성으로 언젠간 타지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했지만 그 순간이 지금일 줄은 정말 몰랐다. 아마 알았으면 이사를 하지 않았을 거야...


누구도 예상 못한 타이밍의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우선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한 우리 가족.



대구에서 부산

부산에서 대구.


지난 오 개월 간 줄기차게도 왔다 갔다를 했더니

돈도 돈이었는데 돈도 돈이었다.


사실 돈이 문제였다.



남편이 가든 내가 가든 한 달에 한 번만 만나는 게 아닌 이상 교통비며 도로비는 일주일에 몇 만 원씩 쓰는 건 십상이었고  그 돈이 나에겐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물론 기차여행이니 운전이니

늘 나와 함께하던 4살 베기 아들은 좋아했지만

아들 데리고 왔다 갔다 하는 엄마는

피로 풀틈 없이 쌓이기만 하고 있었다.

,



돈도 돈인데 내가 너무 피곤해.

이건 아닌 것 같아.


어차피 난 일도 쉬고 있고

타지생활도 하고 싶었으니까

겸사겸사 잘 됐어.


대구로 한 번 이사 가보자.




패기였다.


32살, 젊은 엄마의 패기로

연고지도 뭣도 없는 지역으로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는 마음으로

남편이 아니라 위해서라는 정신승리를 하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우리 집도 전세를 내놨다.



될놈될이라 했던가.


요즘 같은 시국에 전세가 나가겠어?

했던 우리 집은

내놓은 다음날 보러 온 신혼부부가

바로 계약을 하겠다고 했고


설마 집이 나가겠냐며 쉬엄쉬엄 대구를 돌아다니던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급하게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도서관이 가까웠으면 좋겠어.



다른 건 생각 안 했다.

그냥 남편의 직장과 가까운 도서관들을 검색했고

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집들을 돌아다녔다.


100% 만족스럽진 않지만

꽤나 내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고,

그날 바로 계약금을 보냈다.




좋아 이제 나도 월세살이 시작이다!





이사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포장이사를 했고

원래 쓰던 가구와 가전을 그대로 옮겨놨다.

새로 산 건 사이즈가 맞지 않아 쓸 수 없는 커튼뿐.

나머지는 모두 쓰던 그대로다.


부동산 중개료에 이사비에 자잘하게 나가는 돈이 많아 어떻게든 돈을 아끼고 싶어 사지 않은 것도 있지만, 사고 싶은 없기도 했다.






이사 온 지 한 달.


걸어서 오분 걸리는 도서관이 너무 좋아

집정리도 아직 완전히 되지 않았는데

매일같이 놀러 가고 있다.


아이와 함께 가기도 하고,

혼자 들려 책을 읽고 돌아오기도 하는데

도서관이 가깝다는 것만으로도

이사에 쓴 돈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아는 것 하나 없는 곳,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


상황상 어쩔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 스스로 만들어 낸 고립감으로 가득 찬 도시.

지하철도 기차도 차도 사람도 많은 대도시에서

가끔 느껴지는 외로움이 괜스레 특별하게 느껴진다.


매 해 보던 단풍도

겨울이 다가오면 느껴지던 추위도

올해는 또 다르다.





1층집이라 가끔 집 앞에 나타나는 손님.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나에겐 반가운 손님은 아니지만

강아지며 고양이며 동물이면 다 좋다는 아들에겐

행복한 순간이 되기도 하고






감기가 걸려 추운 날씨의 산책이 나에겐 걷는 내내 힘든 일이었지만


혼자 왔을 때 좋았던 장소를

나와 함께 오고 싶었다던 남편에겐

행복한 순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매일 저녁 아빠를 찾아대던

아직은 주말부부를 이해하지 못하던 아들에게

더 이상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아빠와 함께 잠잘 수 있는 저녁을 만들어 있게 된 건

가족들 아무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행복.




이사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제 짐도 다 풀었고,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도 시작되어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앞으로 짧으면 2년,

길면 얼마나 더 길어질지 모를 대구에서의 생활이

마냥 행복한 순간으로 남겨졌으면 좋겠다.


안녕 대구.

앞으로 잘 부탁해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