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갈 때마다 하는 고민 | 손해보기 싫어서
"축의금 얼마 낼 거야?" 결혼식에 갈 때마다 항상 던져지는 질문이다. 축의금을 결정하는 건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사회적 관계의 재정립이자 은밀한 눈치게임이다. 나는 결혼식에 가기 전, 동행하는 친구에게 먼저 물어보곤 한다.
"나 10만 원 낼까 하는데, 너는 얼마 낼 거야?" 그러자 친구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거기 밥값 비싸. 난 15만 원 내려고." "헉, 그래? 그럼 나도 15만 원 내야겠다." 그 순간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스쳤다. 도대체 결혼식장에서 무슨 요리를 내놓길래 이렇게 부담이 커지는 거지?
결국 나는 더 무거워진 봉투를 들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친구에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결국 남들 눈치만 보면서 이렇게 또 축의금을 올렸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tvN <손해보기 싫어서>의 주인공 손해영이 떠올랐다. 손해영은 결혼식마다 축의금을 내느라 최소 경차 한 대 값에 달하는 돈을 쏟아붓는다. 그러면서 "축의금은 낸 만큼 받고 받은 대로 내는 것이 국룰이지만, 그 안에는 함정이 있다. 결혼을 일찍 하면 손해를 보고, 늦게 하면 부담이 커진다"라고 지적했다.
손해영은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가짜 결혼이다. 물론 현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녀의 과장된 시도는 우리가 축의금에 느끼는 무게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손해영이 이해된다. 축의금은 냈는데, 다시 돌려받을 길이 보이지 않을 때의 그 억울함. 그녀의 가짜 결혼이 갑자기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손해영은 또 이런 말을 했다.
내 축의금을 받아 간 인간이 내가 받을 때까지 이직, 이민 혹은 사망하지 않고 나와 친분을 유지할지 예측할 수 없다. 그 불확실성에 배팅해야 하는 축의금은, 먼저 내는 사람이 무조건 손해다.
맞는 말이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축의금을 냈건만, 다시 돌려받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직장 동료 결혼식은 더하다. 결혼한 동료가 퇴사하거나, 내가 퇴사하면서 관계가 자연스럽게 끊기는 일이 다반사다. 나중에 내 결혼식에 그들이 와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도 있다. 한때 친했던 동료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냈고, 그때 그 친구는 내 결혼식에서 사회를 봐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 약속을 잊을 리 없다. 하지만 현재 그 친구의 생사도 알 길이 없다.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서.
ㅇㅇ아, 보고 있니? 나 결혼하면 사회 봐주겠다고 했었잖아. 내 말 들려?
이렇게 축의금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연속성을 담보로 한 일종의 사회적 계약 같다. 그 계약이 유지될지 말지는 언제나 미지수다. 그러니 남들 눈치만 보면서 축의금을 맞추는 이 '게임'이 조금은 허망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결국 축의금은 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과 복잡한 계산이 자리 잡는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이 눈치게임이 좀 웃기지 않은가? 내가 누구한테 얼마나 내는지가 사랑의 척도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서 이제부터는 좀 편하게 살기로 했다. 10만 원이든 15만 원이든, 내 기준에 맞게 내고, 남들의 눈치는 덜 보려고 한다. 남들이 뭐라 하든지 말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차피 그들도 나랑 똑같이 눈치게임 중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