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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서 Oct 24. 2024

다정은 공짜가 아닙니다

"다정은 공짜"라는 동백이의 말에 반박합니다 | 동백꽃 필 무렵


"글 X라 개판이네." 회사를 다니던 시절, 과장 살짝 보태서-몇몇 직장 상사들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나는 인터넷 매체 여러 군데를 전전하며 기사를 쓰는 일을 해왔는데, 글을 못 쓴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1인분은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러면서도 반감이 치솟았다. 지나 잘하면서 그딴 소리를 하던가- 같은 생각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나는 화가 많았다. 분노는 쉽게 내려가질 않았다.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있는 힘껏 들이켜야 겨우 내려갈까 말까였다. 그렇기에, 언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눈이 펑펑 오는 한겨울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이스아메리카노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선택했던 게 글쓰기 클래스였다. 주로 소설과 드라마 등 창작과 합평 위주로 이뤄지는 수업이었다. 클래스에 참석한 이유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동시에 작가라는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더 끔찍한 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피드백을 가장한 비난을 하는 이들이 있어서였다. 물론 대부분은 예의가 있었지만 어디나 그렇듯 몇몇 사람들이 문제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어이없는 피드백도 있다. 드라마 수업에서 만났던 여자였는데, 내 글의 한 장면을 보고는 "회사 한 번도 안 다녀본 사람이 쓰신 것 같아요"라고 했다. 문제의 장면은 그저-회사에서 메신저로 동료 및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부분이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 회사 근무 경험까지 부정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제가 다닌 회사는 저랬어요"라고.


가끔은 집에 가면서 울었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할 때도, 클래스를 마친 후에도 기분 나쁜 경험은 잊히지 않았다. 어쩌면 남이 보기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말에도 기분이 몹시 상했다. 몸에 난 상처는 새 살이라도 돋건만, 내 마음의 상처는 겹겹이 쌓이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아주 살짝만 스쳐도 쓰라리고 아프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나온 한 대사가 내 마음에 꽂혔다. 마치 누가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멘트였기 때문이다.


마음에는 굳은 살도 안 배기나? 맨날 맞아도 맨날 찌르르해요.



극 중 동백(공효진)은 작은 시골 마을에 나타난 외지인이라는 설정이었다. 동백이는 마을 사람들의 시기 질투를 받으면서 힘들어하면서 "두부를 조각칼로 퍽퍽 떠내는 그런 느낌"이라고 푸념한다.


하지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동백이의 다음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웬만하면 사람들한테 다정하고 싶어요. 다정은 공짜니까 그냥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


아니, 그렇지 않다. 동백이가 말하는 '다정한 마음'과 '친절한 말투'는 절대 공짜가 아니다. 그만큼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동백이처럼 쓰라린 상처가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이에게 따스함을 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남에게 친절할 수 있을까. 욕이나 주고받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 아닌가. 그런데도 동백이는 '다정함'을 말한다.


사람들의 차디찬 눈빛과 폭언에 온갖 상처를 받았음에도, 자신은 그들에게 사랑을 건네겠다고 다짐한 동백이, 그녀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행복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준 만큼 돌려받는 것, 그것이 세상의 이치니까. 그녀는 세상에 좋은 것을 '먼저' 주고 그만큼을 다시 돌려받은 셈이다.


마치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태양처럼- 사람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 속에서 행복해졌던 동백이처럼, 사랑을 주고 끝내 사랑을 돌려받았던 동백이처럼, 나도 사람들에게 다정한 마음을 주겠노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이것은 역설적으로-피드백을 가장한 비난에 상처받았던 내가 한때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모임을 지향하며 글쓰기 모임을 열었던 이유다. 나는 여전히 동백이처럼 작은 지적에도 “맨날 찌르르해요”하는 처지이지만, 남에게 같은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물론 다정한 마음을 전하는 일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또한, 내 다짐이 나에게 무례한 사람에게까지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무례한 이에겐 정중하게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이니까. 나 역시 그런 사람들과 마주할 때 "이 대화는 여기서 마무리하겠다"라고 말하며 뒤돌아서고 있다. 처음에는 그런 대응이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선택에 확신이 생겼다. 다정함에는 그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그만한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에게 주는 것이 맞지 않은가.


다정함을 전하고자 하는 대상을 정했다면 이제 실천을 하면 된다. 방법도 간단하다.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자신이 받고 싶은 것을 먼저 건네준다고 생각하면 쉽다. 내 경우 글쓰기 모임을 운영할 때, 무조건적인 비판보단 그들이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피드백도 요청이 있을 때만 제공했고, 그것조차도 부드럽게 전달하려고 했다. 


이런 노력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확신하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긴 시간을 거쳐 나 역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사람들과 더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었으니까. 


그때 나는 깨달았다. 다정함은 단순히 좋은 감정 그 이상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라는 것을.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도리어 나를 풍요롭게 했고,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다른 이의 펜을 꺾게 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쓰는 사람이 또 다른 글쓴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글 쓰는 마음'을 북돋아주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다정한 마음은 필수.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함께 글 쓰는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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