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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Oct 01. 2020

비커밍 PO

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새 PO(프로덕트 오너)가 되어있었다

대학생 때 IT업계에 몸담고 싶어 휴학을 하고는 채용과는 전혀 연계되지 않는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 인턴으로 일했다. 상관없었다. 구직까지는 아직 2학기가 남아있었고 IT업계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고 그곳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이었으니까. 영업이나 마케팅이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처음으로 꾸었다. 졸업반이 되고 문과생의 취업준비가 그렇듯 60개가 넘는 기업에 지원을 했다. 아무래도 인턴 경험 때문이었는지 IT업계 두어 군데에만 최종면접까지 갈 수 있었다. 결국 합격한 곳은 한 중견기업이었고 바람대로 첫 직무는 제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서비스 기획자였다. '기획자로 5년 차를 찍어도 그제야 서른이구나. 잘해보라'는 말을 사장님께 들었다.

'요즘 구직했어도 프로덕트 오너(이하 PO)가 될 수 있었을까'를 입에 달고 살았다. 늘 부족함을 느꼈고 더 잘하고 싶었다. 조금 더 권한을 가지고 성장하고자 했던 20명 남짓의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에서는 3개월 만에 뛰쳐나오기도 했고 그때그때 요구되는 역량에 따라 세미나에서 또 학원에서 UX를, 데이터 분석을 배우기도 했다. 여성기획자컨퍼런스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완성형은 없다. 근간은 동일하더라도 조직마다 요구되는 도메인 지식이 다르고, 강조되는 역할도 조금씩 다르고 경험해 봤던 범위와 폭이 제각각이라 늘 '아 나는 이제 시작이구나' 싶다. 언젠가는 퍼실리테이션이 화두였다가 지금은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에 더 목마르다. 지그재그로 역량을 갖추고 조금씩 진화하는 동안 서비스 기획자에서 PO로 직무가 바뀌어 있었다.

PO는 일을 되게 하는 사람이다. 이다음에는 또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근거로 설득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처음부터 PO인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건 변함없을 것이다. 회사에서 정신 차려보니 시니어가 되는 것처럼 PO가 되어가는 과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이직부터 최근의 온보딩까지, 서비스 기획자에서 PO가 되는 과정을 다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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