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의 속도 Aug 03. 2016

슬로우슬로우- 퀵퀵-

정신 차려보니 스타트업에 몸담게 되었다

내 커리어의 돌파구가 스타트업이 될 줄은 몰랐다.


롤러코스터 같은 상반기였다. 팀을 따라 2년 동안 지낸 제주에서 배웠던 삶의 속도를 잊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고민했고,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남을 커리어를 쌓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직장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UX 기반이 갖추어져 있어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떠나야 할까. 공부를 더 해야 되나? 어디서든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잊을만하면 고민이 끊이지 않을 줄만 알았지 이렇게 빨리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줄 몰랐다.


일이란 건 아귀가 맞았을 때 급물살을 타게 마련이다. 지금부터는 모두 일주일 내에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메일로 논리 정연한 오퍼가 들어왔다.  

우리는 이런 사업을 하고 있고, 네가 궁금해. 우리와 함께하지 않을래?

자신감 있고 깔끔하며 정중한 메일을 너무나도 오랜만에 받아봐서 얼떨떨했다. 그래 언젠가는 스타트업에 갈 수도 있겠다 막연히 생각해봤다. 그런데 지금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좀 더 역량이 갖추어진 이후라고 생각하였다. 작은 조직일수록 한 사람이 더 확실히 그리고 많은 롤을 해 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아마 실제로도 그렇겠지.)


며칠 간 잠이 오지 않았다.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되었다. 지금껏 큰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월급 받아가며 잘 다녀왔는데. 스타트업이라니 으. 듣기만 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정글 같은 곳이다. 미지의 세계를 탐방하려면 준비를 해야 되지 않나. 딱히 정보가 없다. 설립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뜨는 기사만 뜬다. 타사 분석할 땐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제품이 인상적이고 전망이 좋은 분야에다가 해보고 싶었던 분야이긴 한데.... 할 수 있는 한 다 알아보기로 했다.



- 기사와 홈페이지는 진즉에 다 봤다. 재미있을 것 같다.

- 연봉과 분위기를 알아볼 수 있는 잡플래닛, 스타트업 쪽 정보가 많이 올라오는 플래텀 원티드 로켓펀치 벤처스퀘어 비석세스 데모데이 D.CAMP를 뒤져본다. 아무 데도 정보가 없다.

- 분위기를 알아야 될 거 아냐.. 구성원 뒷조사라도 해봐야겠다. Linkedin에 다행히 회사 정보가 뜬다. 그런데 애초에 멤버가 많지도 않고, 아는 사람들도 아니니 내가 접근할 수 없다. 페이스북? 마찬가지다. 비공개다.(그래 나도 친구 아니면 비공개잖아...)

- 업계 전반에 대해서 공부해봐야겠다. 브런치에서 스타트업과 관련된 글을 다 찾아본다.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거나 예전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의 경험담이 보인다. 어렴풋이 감이 잡힌다.

- 마지막으로 지인 통신을 이용했다. 스타트업에 몸담게 된 지인이 번뜩 생각났다. 급하게 카톡으로나마 연락을....(도움 많이 되었어요. 조만간에 또 봬요...) 체계가 없을 거라는 이야기, 그래 뭐 예상했다. +뭘 기준으로 회사를 판단할지 실질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투자 용어들. 코스닥 상장사 투자도 생전 안 해본 나에게는 별세계였다. 엔젤투자, 시리즈 A, 시리즈 B 등 (스타트업이나 엔젤투자로 검색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투자규모에 따라 이름이 다르고, 투자규모는 투자자가 해당 회사의 총가치를 보고 정한다고 한다. 족집게 강의(!)를 끝내시곤 당신도 조직 내에 속해서 월급쟁이였을 때엔 몰랐던 내용이라며 잘 생각해보라며 격려해주셨다. 아. 그러니까 투자를 받으면서 제품을 출시하고, 수익을 얻어가면서 더 큰 투자를 얻고 그런다는 거지? 대충 이 세계는 이렇게 굴러가는구나,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알아보고 나니 물어볼 것들은 얼추 정해졌다. 아래의 질문들로 내가 확신을 얻으면 가는 거고 아니면 안 갈 것이다. 나 스스로도 확신 못하는 회사에 올인할 수는 없다.

- 세상의 어떤 문제를 풀고 싶어 하고

- 어떻게 실현해나갈 것이며

- 돈은 어떻게 충당하고 매출 계획은 어떤지, 경쟁상황은 어떤지

- 어떤 사람들과 일하게 될 것이고

- 그리고 나는 이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고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돈 중요하다. 재충전은 돈으로 하지 않나.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메일이 몇 번 더 오갔다. 보내드린 메일은 읽으셨냐며. 한번 보는 게 어떠냐며. 그래 에잇 까짓 거 더 알아낼 것도 없는데 가서 보자. 바로 다음날, 마주 앉았다. 혹시나 준비해 갔던 자기소개나 영어 자기소개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정확히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그리고 나를 불렀던 그 회사는 어디에 와있는지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위 질문들을 미리 해 두었는데(미심쩍기도 했고, 회사에 대한 관심도 어필하고 싶었다.) 아니 무슨 피칭 때 듣는 질문을 다 질문했냐며 언제 다 알아봤냐며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역할도 들었다. 끝까지 의심을 놓지 않으면서 들었는데 대답은 충분했다. 안심하고 달려볼 수 있겠다 싶었다. 바로 다음 날 협상을 거쳐(협상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협상 분위기도 좋았고) 입사가 확정되었다.

많이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벌써 3년 차이고 사업이 돌아가는 모양을 옆에서 많이 지켜봐 왔다고는 하지만 사실 난 조직의 덕을 많이 봤다. 잘 짜인 영업조직, 이미 가진 원천기술,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프로세스, 그리고 자본. 나는 영업조직에서 발로 뛰며 걷어 온 사용자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이미 가진 개발 기술로 구현해 낼 수 있도록 기존의 프로세스를 잘 이용하여 처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미 주어졌고 우리는 풀어내기만 하면 됐다. 그래, 인터뷰 때 회사에서 나한테 그렇게 물어보더라. 우리는 문제를 우리가 만들어내야 한다. 괜찮겠냐. 해봤냐. 네, 안 해봤어요. 하지만 앞으로 탁월하고 가치를 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려면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딱 내 능력치를 렙업 할 수 있는 기회인 거고. 그리고 나의 3년이 절대 헛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머리를 배웠고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하면 효율적으로 일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지 배웠다. 이것저것 살펴본 덕에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알게 되었다.

이제 움직이면서 배울 때다. 스타트업엔 난 아직, 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상에 아직이 어딨나. 하면 되지. 부딪혀보겠다. 확실한 경험이 쌓일 것이다.


걱정을 위한 변:

지인(가족)께서 걱정하실 것 같아 사족을 덧붙입니다. 저는 UX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남을 작정입니다. 전문성을 키우고 싶었어요. UX 기반이 갖추어진 곳에서 착실히 배우든지 몸으로 부딪혀 배우든지 이런저런 고민 중이던 차였습니다. 만약 여기서 운이 좋아 사업이 커진다면 저에게 디딤돌이 되는 거고요. 그렇지 않더라도 직접 깨져가며 배운 게 제 강점이 되지 않을까요. 이 동네는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아두면 또 다른 기회가 열리기도 하니 '쟤 저러다 어쩌나'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요 동네 사람들도 제 얘길 들으면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고, 괜찮겠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을 듣고 나서는 다들 끄덕이더군요. 뭐 만약 막다른 길에 다다라도 뒤돌아서면 다른 길이 있겠죠. 말마따나 제가 창업한 것도 아닌데요 뭐.... 젊잖아요? 언젠가 하게 될 거라면 지금이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기왕 발들인 김에 한번 저희 사업을 팡 띄워보는 것도 짜릿할 것 같네요.




Special Thanks to

아래는 참고한 브런치 글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인터뷰를 해야 할지, 또 가서는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할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이전 01화 비커밍 P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