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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Nov 01. 2015

육지 - 모든 것에 체한 하루

소리, 정보, 시선 모두 빽빽한 곳

아.. 이럴 수가.. 정말로 육지로 와버렸다.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 투성이다. 이따금씩은 일부로라도 섬을 추억해야겠다. 섬에서의 리듬을 잃기 싫다.


오래된 나의 폰은 배터리가 수명이 짧다. 아직은 낯설고 힙한 동네 카페에서 룸메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짜이를 시킨다. 꺼져버린 폰도 충전한다. 큰 창이 도시를 비춘다. 아, 이건 내가 섬에서도 좋아하던 자리다. 거리를 바라보는 자리. 섬에서는 동네 개와 할머니와 트럭이 다녔다면 오늘은 큰 아파트와 네온사인, 그리고 핼러윈 코스튬한 사람들이 지나간다. 재즈 선율이 흐르고 모든 감정이 뒤섞여 울렁거린다. 차갑다. 도시인가 보다.


집에 도착했다. 언덕을 올라 계단을 가로질러 14개의 박스를 뜯는다. 14개의 박스가 도착하는 동안 룸메는 배달기사님과 친해졌나 보다. 기사 아저씨가 그랬다고.

짐 다 넣으셨나 봐요~ 어쩌나 또 가지고 왔는데

이것은 10년치 자취의 흔적. 견고하고 간단히 살고 싶은데 사는 장소가 매번 바뀌니 좋고 무거운 물건을 들일 수가 없다. 짐을 풀고, 새로운 동네를 한바퀴 휘 둘러본다. 골목이 참 많은 동네다. 여러 갈래로 돌아오는 길. 극심한 피로와 배고픔과 어리둥절-이 어우러져 이 도시의 여행자 같은 기분이 든다. 묘하게 들뜨면서도 안심되지 않는다. 화려하고 다채롭지만 아직 난 소화하지 못했다. 저녁은 정말 맛있는 피자였는데 체하고 말았다. 밀가루에 체한 건지 소화할 수 없는 시각, 청각 정보들에 체한 건지.

잠들지 않는 도시....

으.. 다 모르겠다. 집에 와서 매실을 들이 붓는다. 대충 씻고 박스를 대충 밀어 두고 누워버렸다. 그런데 이놈의 도시는 도무지 잠들 질 않는다. 거리에 귀를 대고 듣는 것처럼 모든 소리가 선명하다. 새벽이 되도록. 모든 게 빽빽하다. 두꺼운 천으로 온방을 둘러싸고 싶다.

SNS로나 연락이 가능하고, 그렇게 연락이 닿는 사람들은 다들 어찌 비슷한 사람들이었던 섬. 그곳에서 지내다 소리, 정보,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까지도 모든 게 빼곡한데서 내 것을 찾으려니 어리둥절하다. 만나지는 사람들, 공간들. 당분간은 힘을 내어 내 리듬을 찾아가면서 살아야겠다.



빈 공간, 빈 시간. 그리고 비어 있는 소리가 벌써부터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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