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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하는 엄마 Feb 15. 2021

누구를 위하여 모유를 먹이나

-모유 수유 전쟁기-

임신을 했을 때는 출산에만 관심이 있었다. 솔직히 출산 후에 육아의 세계를 잘 몰랐기 때문에 출산은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모유 수유는 생각도 못 했고 뒷전이었다. 그런데 이런 무지가 출산 후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드는 1등 공신이 되었다.    

  

모유수유를 하기 전 난 내 가슴을 진정 몰랐었다.  

대한민국 평균 사이즈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라서 가끔 속상했던 정도.

다른 가슴 큰 여자를 보면서 부러워한 정도.       


그런데 모유 수유를 하려면 내 가슴을 잘 알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가슴의 크기 이외에는 가슴을 잘 몰랐다.    

  

나는 내가 치밀유방이어서 유선이 잘 안 흐르는 타입인 것도 몰랐고, 가슴 사이즈보다도 모양이 평평해서 유선이 풍부하게 흐르는 타입이 아니며 유두가 평평 유두라서 아이가 빨기 힘든 타입인 것도 몰랐다. 나는 정말 내 가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이러한 무지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유축이 뭔지도 잘 몰랐던 나는 제왕절개 이후 유축을 거의 하지 않아, 유선이 막혀 염증으로 이어졌고 그 후에 가슴이 돌덩어리처럼 딱딱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가슴이 딱딱해지면서 아픈 것은 둘째치고 유두염에 걸려서 유두로 모유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가 빨아도 모유가 못 나오는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이다.      


첫째 아이는 3킬로까지 못 큰 상태에서 세상에 나왔고 게다가 딸아이였다. 3킬로가 못 넘는 ‘딸’ 아기는 가슴을 빠는 힘이 약해 모유를 잘 못 빠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아기는 내 왼쪽 가슴을 빠는 것을 금세 포기하고 분유만 찾았다.    

  

그래도 오른쪽 가슴은 곧잘 빨았는데, 빠는 와중에도 잠이 들기 일쑤였다. 이런 일이 반복됐으니 이 과정에서 내 왼쪽 가슴은 아기에게 버려졌다.    

  

출처-https://www.pexels.com/ko-kr

‘모유 수유를 해서 내 아기에게 최고의 양식을 선사하리라.’ 


내 부푼 꿈은 점점 멀어져갔고 내 가슴 자존감은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병원의 산모방이나 조리원에서 모유를 잘 먹이는 엄마들과 쭉쭉 잘 빨아대는 아기들을 보고 있자니 부러운 맘도 많이 들었다.   

   

이렇게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가슴 마사지’였다. 병원마다 상주해 있는 모유 수유 전문가들이 있는데 내 가슴을 보더니 심한 상태라면서 가슴 마사지를 꾸준히 받으라고 권했다.      

그.런.데. 이거 아파도 너무 아팠다. 유두를 쥐어짜고 가슴을 막 두드려 대는데 평소 고통을 잘 참는 나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결국 나는 가슴 마사지를 포기했다.     

 

그 이후에 내 가슴은 내 소유를 떠나 타자화되었다. 산부인과 의사, 모유 수유 전문 간호 부장, 조리원 실장, 조리원 선생님 등이 번갈아 가면서 가슴을 점검하는데 평생을 살면서 누구한테도 이렇게 맨가슴을 많이 보여준 적이 없었다. 훌렁훌렁 벗는 일이 일상이 되자 내 가슴이 아니라 마치 남의 가슴 같았다.    

  

출산 후 2주가 지나자 내 가슴은 엉망이 되었고 나는 제왕절개했을 때도 앓아눕지 않았었는데 모유 수유하다가 그 스트레스에 이틀을 앓아 누웠다. 아기도 못 보고 분유 수유도 못하고 조리원 침대에서 그렇게 이틀을 끙끙 앓고만 있었고 눈물도 흘렀다.     


어떤 사람은 ‘모유 수유가 제2의 출산’이라고 했다. 그만큼 모유 수유를 하는 과정은 참 힘들다. 자연 분만이나 제왕절개는 그나마 매뉴얼이 정해져 있어서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서 따라갈 수 있지만 모유 수유는 각자의 가슴 상태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예측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일단 모유가 나와봐야 그다음 상황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 첫 아이는 77일 동안만 내 모유를 섭취하고 그다음에는 내 모유와 이별했다. 내 아기는 끝내 내 왼쪽 가슴은 거의 빨지 않았고 내 모유량은 점점 줄어갔으며 잠도 잘 못 자는 상황에서 분유 수유를 하면서 유축을 세 시간에 한 번씩 하라고 하는 전문가의 권고를 지키지 못한 나는 유축을 포기하면서 모유 수유의 종지부를 찍고 분유 수유로 돌아섰다.   

   

내 아기에게 모유를 끝까지 먹이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고 내 모유가 아닌, 소젖을 내 아기에게 먹이는 것도 한동안은 썩 내키지 않았다. 이렇게 전쟁 같던 모유 수유 시기는 내 몸을 아프게 했고 내 육아 자존감도 많이 추락시켰다.     

출처-https://www.pexels.com/ko-kr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모유 수유가 뭐길래 나를 이렇게 괴롭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산모들도 나와 같은 실패와 좌절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아기가 젖을 안 빨면 방법이 없다. 조리원에서는 억지로 아기에게 젖을 물리라고 하지만 그렇게 해도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병원과 조리원 특성상 아기들은 젖병에 빨리 익숙해진다. 젖병은 빨기가 쉬운 반면에 모유는 빨기가 어렵다. 당연히 아기들은 모유보다 젖병을 더 선호하게 된다.

      

모유의 경쟁력은 분유보다 맛이 좋다는 것이다. 아마 산모라면 자신의 모유 맛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유는 달달한 유우맛이다. 맛이 좋다. 아기들이 힘들더라도 모유를 빠는 이유는 이 달달한 맛 때문이다. 아기들이 본능적으로 모유를 빨도록 신은 모유의 맛을 굉장히 좋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산모가 유구염이나 유선염 등의 염증이 나면 달달했던 모유의 맛은 쓴 맛으로 변한다. 실제로 내 모유맛도 그렇게 변하면서 모유의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아기는 당연히 이런 모유를 빨지 않았다. 그러므로 엄마 가슴에 이상이 생기면 아기는 모유를 더 안 빨게 되고 이럴 때 엄마는 그냥 스트레스 받지 말고 모유에 대한 집착을 살포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모유 수유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출산 전에 가슴 마사지를 받는 것도 좋다. 특히 ‘가슴 통곡 마사지’라고 가슴 마사지만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있는데, 나는 병원보다도 가슴 전문 마사지를 하는 마사지 가게가 더 좋은 것 같다. 대신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은 간호사를 겸직으로 하신 전문가를 꼭 찾아야 한다. 비전문가에게 맡기면 잘못하면 가슴만 엄청 아프고 모유도 잘 안 나올 수 있다. 이곳에서 모유 수유를 준비하면서 출산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와 셀프 가슴마사지 등 정보를 미리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병원이나 조리원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주눅 들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산모가 모유 수유를 하기 편한 시스템은 아니다. 특히 제왕절개를 한 산모는 더 힘든 경우가 많다. 모자동실(산모와 아기가 계속 같이 있는 병실)이 아닌 이상은 산모와 아기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고 조리원에 들어가면 밤 수유는 거의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모유 수유의 공백 동안 아기들은 분유 수유를 하기 때문에 아기들이 모유 수유의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들이 애를 써서 아기들에게 모유를 먹이려고 해도 거부하는 아기들도 많고 젖병만 찾는 아기들도 많다. 환경 자체가 이런 경우가 많은데, 모유 수유가 안 되면 산모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모유 수유를 못 하는 것은 산모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대부분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애쓴다. 물론 생각이 다른 엄마들도 종종 있지만, 많은 엄마는 아기에게 자신의 모유를 먹이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그래서 병원 수유실이나 조리원 수유실에 가면 아기들과 씨름하면서 수유를 하기 위해 애쓰는 엄마들이 많다.      


이렇게 애를 써도 모유 수유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엄마의 게으름이나 능력, 가치관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유 수유의 실패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산모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아기가 아파서 모유가 아닌 분유 수유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나처럼 가슴에 문제가 생겨서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아기가 황달이 심해서 모유를 못 먹이는 경우도 있고 엄마가 몸이 회복이 안 되고 아파서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여러 경우의 수가 있는데, 모유수유에 성공한 엄마는 괜찮은 엄마고 모유 수유에 실패한 엄마는 안괜찮은 엄마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는 곤란하다. 그러므로 모유 수유를 못했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모유 수유는 산모나 아기에게 중요한 문제이지만 육아의 전부는 아니다. 모유수유는 장려되면 좋으나 모유수유를 못한다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부족한 엄마라는 죄인같은 인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시대의 많은 엄마는 대부분 아기를 위해서 최고의 것을 선물하기 위해 오늘도 애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식은 단호하게 거절할 필요가 있다.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엄마는 축복이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모유 수유를 할 수 없는 엄마도 또다른 축복이다. 모유 수유의 가능 여부가 엄마를 평가하는 평가의 잣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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