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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하는 엄마 Feb 23. 2021

아기의 인간화, 그 겸손의 시간

아기가 자라는 시간

나는 내가 처음부터 직립보행으로 걸어 다닌 줄 알았다. 내가 인지하는 나는 잘 걷고 잘 뛰고 잘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모두 그런 줄 알았는데, 아기를 낳아보니 아기가 3개월이 넘도록 움직이지 못했다. 충격이었다.     

아기의 뒤통수를 제대로 바라보는 일은 낯선 일이다.


인간이기보다는 인형에 가까운 존재.

처음 아기를 대하면 인간이기보다는 인형 같다. 시선을 맞추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표정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예쁜 인형. 

     

그래서 처음 이 존재를 대하면 기쁨보다도 두려움이 앞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를 내 실수나 잘못으로 제대로 보호 못 하면 어떻게 될지 겁이 덜컥 난다. 많은 엄마들이 처음 아기를 안을 때 두려움이 있겠지만 난 두려움이 더 컸다. 그래서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인데도 떨어뜨릴까 봐 잘 안지도 못했다.   


아기는 100일이 좀 지나니 조금씩 스스로 움직이면서 뒤집기를 시도했다. 몸 하나 뒤집는 데도 엄청난 품이 들었다. 처음에는 조금씩 움직이고 그 뒤에는 반 정도 몸을 세우고 몸을 완전하게 뒤집는 일도 오래 걸렸다. 다시 되집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뒤집고 앉고 걷고 뛰는데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기는 1년 동안 그 발달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내 아기는 특히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면서 인형의 모습에서 점차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갔다. 처음에는 찡그리거나 살짝 미소 짓거나 우는 한 두 가지의 표정밖에는 없었지만,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 울기 직전의 표정, 재미있다는 표정 등 표정도 다양하게 바뀌었다.   

   

스스로 앉기 시작하는 아기

아기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내 앞에 앉아 있고 나는 그 뒤통수를 보고 있었을 때다. 갑자기 아기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뒤통수가 참 낯설었다. 아기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6개월 내내 누워있는 일이 익숙한 아기가 스스로 앉아 있고, 내가 그 뒤통수를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감개무량했다. 세상에 쉽게 되는 일이 없다고 하더니 그래도 아기를 낳고 기르는 일은 엄마에게도, 아기에게도 참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신은 왜 아기가 걷기까지 1년의 세월,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주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걷거나 뛰는 동물들도 많은데, 왜 인간의 아기는 같은 연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1년의 시간 동안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걸까?     


개인적으로 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인간에 대한 신의 섬세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아기를 보면서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돌아보라는 의미는 아닐까. 아니면 지금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이러한 발달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깨달으라는 것일까. 사람은 보지 못하면 잘 믿지 못하는 존재이니깐 말이다.     



이래서 아기가 성장하면서 부모도 같이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있나 보다.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을 눈을 지켜보게 된다. 특히 아기를 전적으로 양육하는 엄마들은 그 과정을 아주 자세히 오랜 시간,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과정을 같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보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되는데, 어떻게 성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쨌든 자기 몸 하나 뒤집지 못하는 아기가 어느새 뛰고 걷고 심지어 서툴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경지에 오른 것을 보니, 새삼 세상일이 신기한 것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이 내 손으로 다 해냈고 내 생각으로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난 너무 연약한 존재였으며 누군가의 보살핌이 없이는 죽을 수도 있는 존재였다는 생각이 아기를 키우면서 참 많이 들었다.      


내 아기는 여전히 인간화가 진행 중이다. 이제 사회에서 어엿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의견을 조금씩 피력하기 시작했고 하고 싶은 일은 의지적으로 하려고 하면, 먹기 싫은 음식은 먹지 않으려 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려고 하는 사회화가 가능한 인간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나는 그 시간을 최대한 존중하여 나 스스로 겸손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아기가 다른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며 하나의 인간으로 제대로 성장하기를 돕는 조력자의 위치에서 아기와 동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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