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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하는 엄마 Mar 05. 2021

육아는 괴로워.

날것 그대로의 나를 만나는 시간

사람은 나이를 점점 먹을수록 나를 잘 포장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그렇게 실례가 안 되는 사회가 지금의 현대 사회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무수한 포장 속에 많은 사람이 착각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오해 속에서 세상을 살게 되는 셈인데, ‘육아’라는 특수 환경을 만나게 되면 이러한 오해 속 세상도 끝이 나는 것 같다.      

아마 엄마들 대부분은 아이를 키우는 고됨보다 아기를 대하면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이상한 나를 만나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라는 철학적 고민을 하는 엄마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날 잘 다스리고 사람들 앞에서 사회성의 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나를 잘 조절할 수 있으며 욱하는 기질을 잘 순환시킬 수 있는 감정 주머니를 잘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나를 인정하면서 살았었다.  

    

육아를 하면 날 것 그대로의 '나'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출처:https://www.pexels.com/ko-kr)


그.런.데. 내가 참 아기 울음에 약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처음 태어나 말 못 하는 아기가 울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이 울음을 참아내는 게 나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울음을 잘 들어주지 못하니 달래는 것도 미숙했다. 남편보다 나는 참 아기를 못 달랬다.   

   

나는 배우는 게 좀 느린 편이지만 성실하게 잘 배우는 편인데도 육아는 배운다고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난 아직도 아기를 안는 동작이 어색하다. 잘 안아보려고 아기가 편하기를 바라면서 조금씩 노력했지만, 아기를 안는 나도 안기는 아기도 어색하기는 매한가지다. 배워도 안 되는 분야를 발견한 것이다. 

     

또 난 일 처리가 완벽한 스타일이 아니다. 허점투성이고 실수도 많다. 운이 좋아서 결과가 좋게 나온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내 삶은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내가 유독 아기에게는 어느 순간 완벽주의를 요구했다. 아기가 흘리지 않고 밥을 잘 먹어내고 어질렀으면 자신이 스스로 정리하고 한번 알려주면 바로 알아서 해내고…. 인생에서 한 번도 완벽하지 못했던 내가 아기에게는 완벽주의를 요구하다니 인생의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한국에서 익힌 딜레마의 문화인 ‘빨리빨리 문화’ 

난 참 이 문화가 싫었다. 20대 후반에 유럽을 다녀와서 우리나라처럼 빠르게, 효율적으로 일 처리를 하지 않는 유럽인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유유자적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사용하는 그들을 보면서 시간의 상대성이 한국에만 너무 빠르게 적용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랬던 내가 아기한테는 어느새 ‘빨리빨리’를 강요하고 있었다. 아기는 발달 단계에 따라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 나가는데 내 조바심에 아기에게 ‘빨리빨리’를 강요하며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내 속에 또 다른 나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내가 이렇게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나. 내가 이렇게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이었나. 내가 이렇게나 실수투성이인 사람이었나.’ 등등 여러 나를 만나면서 어떤 나는 받아들이고 어떤 나는 못 받아들이면서 육아를 하고 있다.      


사실 내 속에 감춰져 있던 이런 나를 만나는 것은 기분 좋은 과정은 아니다. 어느 모습은 무척 아프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가 아기 인생에 안 좋은 영향을 주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된다.      

날것 그대로의 나를 만나는 것은 낯설면서도 아프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나에게는 관대하면서 아기에는 전혀 관대하지 않은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이 싫어질 때도 많았다.  

   

안 그래도 아기와 합을 맞추는 과정도 힘든데, 이런 나까지 받아들여야 하니 힘듦은 배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생각해 보니, 아기와 함께 있는 금쪽같은 시간을 이렇게 흘려 보내는 것이 영 그랬다. 그래서 생각을 좀 바꿔 보기로 했다.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출처 : https://www.pexels.com/ko)

‘이런 나도 나다.’ 


내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완벽할 필요도 없으며 완벽한 존재도 아니다. 다른 모습의 이런 내가 싫었던 진짜 이유는 혹여나 아기에게 피해가 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나를 받아들이되 아기에게는 최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쪽으로 나를 다스려가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런 모습이 개선이 안 되고 잘 바뀌지 않을 것 같으면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아기를 잘 달래지 못하면 달래야 하는 상황에서는 웬만하면 남편에게 부탁했다. 아기의 부름에 잘 반응을 못 하겠으면, 엄마나 언니에게 잘 반응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나는 내 방식대로 아기에게 맞춰주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 하는 육아가 아닌, 같이 육아를 만들어가자고 생각하면서 못하는 것은 솔직히 인정하고 가기로 했다. 나는 남의 방식이 아닌, 내 방식대로 아기와 합을 맞추면서 그렇게 내 딸과의 육아를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육아는 혼자 할 수 없다. 이것을 인정해야 하고, 엄마는 완벽할 수 없다. 이것도 인정해야 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엄마나 혹은 아빠가 육아를 담당해야 할 경우라면 이때는 무수히 많은 나를 없애고 무조건 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나를 인정하고 아기를 대할 때의 나를 고민하며 내 날것의 성향을 아기에게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낫다.     


어차피 육아는 고되고 힘들다. 그리고 아기를 출산했다면 누구든지 이 시기를 보내야 한다. 어차피 힘든 일이라면 이 시기의 엄마로 살아가는 내가, 엄마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시기로 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날것의 나를 살살 달래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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