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좀하는 엄마 Dec 28. 2020

육아부심

육아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오래된 남사친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동안 잘 지냈냐며 이것저것 묻는 전화였다. 

" 그동안 잘 지냈지?" 

" 그럼, 나 요즘에 육아하잖아."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세 가지 사실에 놀랐다. 


내가 육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새삼 놀라웠고 내 안에 육아에 관한 자부심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으며 어느새 내 인생의 대부분이 육아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면서 처음에 조리원을 퇴소하던 그 때가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이었는데, 그때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거의 한달은 밤잠을 잘 못자고 음식을 잘 못 먹을 정도였다. 고작 3키로그램밖에 안되는 작은 생명체와 하루종일 함께 해야 하며, 그 작은 생명체를 해하지 않고 키우기 위해서 내가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나를 긴장시켰는지 모른다. 

그렇게 어리버리했던 나였건만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 일을 감내하고 있으니, 나란 인간의 적응력이 실로 놀라웠다. 


사실 육아의 세계를 경험하기 전에 나는 아마도 못된 가치관에 조금은 물들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여자가 집구석에서 하는 일이 뭐가 있어?"라는 되먹지 못한 말을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으로 들어서인지 대학교 때부터 이러한 되지도 않는 가치관을 없애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했건만 아마도 아주 없애지는 못했던 듯 싶다. 왜냐하면 육아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육아를 하면서 나의 이런 되먹지 못한 가치관은 뿌리조차 싹 없어졌으며,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거기에 더해 나는 육아를 성공리에 마친 많은 엄마들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나는 그러한 엄마들의 대열에 발이라도 살짝꿍 대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처음에는 너무 조그마해서 만지지도 못한 나의 아기

조리원에서 퇴소하고 아이를 집에 데려온 그 순간부터 나는 육아서를 독파하기 시작했으며, 유투브의 육아 동영상을 섭렵하고 네이버의 육아 블로그를 틈날 때마다 살펴 보았다. '아이는 모두가 특별하다'는 모토 아래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와 같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늘 품고 아이를 관찰하고 또 관찰하였다. 어떨 때는 관찰력에 에너지를 소모하여 기진맥진한 적도 많았다. 


수유일기를 작성하면서 분유 먹는 시간, 대변의 양과 색깔, 대변 누는 시간대, 낮잠 자는 시간, 낮잠 자기까지 칭얼대는 시간, 밤잠 들어가는 시간, 특이사항, 등을 세세히 기록하며 이쯤되면 회사의 비서가 됐으면 한자리 했을 것 같은 열심을 부렸다. 


아이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커가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선배 엄마들의 여러 조언과 전문가의 의견에 기댈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각각 달라서 뭐가 옳은 건지 뭐가 제대로 된 것인지 분별하기 어려워서 몇날 며칠을 골머리를 앓은 적도 있었다. 


이러한 노력이 지겹고 힘들 법도 하건만 난 아직은 열심히 찾는 노력을 현재진행형으로 하는 중이다. 요즘은 아이의 발달단계에 따른 놀이법을 계속 연구중이다. 신생아 때와 달리 아이는 이제 잠이 많이 줄어들었고 짧으면 1시간 길면 2시간에서 3시간까지도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때그때마다 밥 먹이고 응가도 치워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하고 있지만 같이 놀아주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고작 3개월이 된 아이와 도대체 어떻게 놀아줘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나에게 굉장한 숙제여서 공부하지 않고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일에 속했다. 


각종 포털에 있는 엄마들이 올린 글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자신의 아이의 발달 단계를 매일 매일 일기 형식으로 올리는 엄마들, 발달 단계에 따른 장난감을 추천하는 글들, 수면 교육 및 놀이에 관한 생각을 올리는 글들, 그리고 각종 육아에 도움이 되는 유투브의 수천개의 동영상들을 보면서 육아의 세계가 거대한 은하계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진짜 자는 시간, 쉬는 시간을 쪼개서 이 모든 일들을 해내는 그 모든 양육자들을 생각하면서 박수가 절로 나올 때가 참 많았다. 

이렇듯 육아를 위해서는 내 안에 없던 에너지까지 끌어올려서 파워업을 해야 하고 그 에너지를 기반으로 아이들을 길러내야 하며, 나 자신의 삶도 추스려야 하니 참으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런 육아가 어떻게 그동안 그렇게 저평가되어 왔는지 모를 일이다. 

시대가 변했지만 예전의 엄마들은 하는 일도 비슷했으리라. 또한 예전의 엄마들은 집안일에 시부모 봉양에 자식 육아까지 책임졌으니 그 속에서 자신을 잃는 엄마들도 허다했다. 그런데 그런 엄마들에게 어떻게 "도대체 집에서 여자가 하는 일이 뭐가 있어?"라는 악한 말이 나올 수 있었는지 정말 하늘이 두쪽나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사회 구조와 인식이 엄마들을 참 불친절하고 불편하게 한다는 인식을 많이 받곤 한다. 그것은 사회의 고착화된 틀에서 혹은 남자나 여자들의 잘못된 인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출산이나 육아와 같은 축복된 일들이 어느 때는 잘못된 일로 어느 때는 불필요한 일로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임신, 출산, 육아에 관해 우리 사회는 좀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많은 엄마들이 집에서 논다고 생각하고 집에 있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엄마들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알겠지만 엄마들은 집에서 거의 놀지 않는다. 경제적인 활동을 안 하고 경제적인 수익이 없을 뿐이지 주변의 엄마들은 거의 집에서 놀지 않는다. 


집에서 논다면 왜 대부분의 엄마들이 놀려고 집 밖에 나가겠는가? 


이제 "잘 지내지?"라는 질문에 
"어, 나 집에 있지. 뭐."라는 말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 질문에는 
"나 육아하잖아."라는 자부심 그득한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대답이다. 






이전 07화 누구를 위하여 모유를 먹이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