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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하는 엄마 Apr 03. 2021

감정 표현 불능에 시달리는 나의 고군분투 육아기

<금쪽같은 내새끼>의 부모들을 마주 대하며…

30대 중반이 됐을 때, 내가 감정 표현에 매우 서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좋고 싫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나는 참 불편했다. 그리고 나는 감정을 말하는 것에 매우 인색했다. 지금도 감정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떠오르는 감정이 몇 개 없다. 감정 자체에 대해서 잃어버린 사람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나는 참 힘든 사람이 되었다.   

어느새 나는 감정표현불능이 되어버렸다.(출처:pexels)

이를 깨닫게 된 계기는 지금의 남편과 연애하면서부터다. 남편은 감정표현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좋으면 좋은 티를 내고 싫으면 싫은 티를 팍팍 내는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애 같다.’고 느꼈다. 나이를 먹은 어른이라면 감정을 적절히 숨겨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은연중에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곧 성숙함이라는 이상한 논리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나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학습된 일인 것 같았다.    

  

나의 아버지는 특히 자식들이 우는 것을 싫어하셨다. 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 앞에서 힘든 내색이나 슬픈 내색을 보인 일이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런 것들이 나약함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이러한 아버지의 가치관 때문에 우리 자녀들도 슬픔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부모 앞에서 슬픔을 잘 표현하지 못하니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이런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참 어색하게 되었다. 슬픔은 그렇게 내 삶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20대부터 내 삶은 참 팍팍했다. 바쁘기도 했지만 힘들기도 했다. 무엇 하나 평탄하게 넘어가는 일이 별반 없었다. 돈을 벌려고 아둥바둥했지만 돈이 삶에서 머물지 못했다. 힘든 시기였다. 이런 때에 좋은 것, 희망적인 것, 기쁜 것, 즐거운 것, 편안한 것 등등의 감정은 사치스럽다고 느꼈다. 그 당시에 나는 사랑한다, 좋아한다, 등의 연애 감정도 버겁다고 느꼈다. 이 모든 것들이 나 스스로 죄스러웠다.      


고단한 삶에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그 당시 나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면 나 자신이 약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감정을 가두고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내 감정은 점점 무뎌져만 갔다.      


20, 30대에는 철저하게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삶을 살아냈다. ‘돈을 못 버는 것은 게으른 것이다.’라는 왜곡된 사고에 갇혀 돈과 부지런함과 나의 헌신과 희생을 동일선상에 놓았다. 목적이 ‘돈’이 되니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인 것이 되었고 특히 정서적인 표현은 더욱 거추장스럽게 되었다. 마지막 남아 있던 감정까지 스르르 없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30대 후반이 되자 나는 감정 표현 불능자가 되어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일의 효율성을 따지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며 가치보다는 돈을 더 중시하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그 속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폄하하면서.    

  

그러다가 남편과 연애하면서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육아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감정을 표현하고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는 것이 내게는 매우 어려운 미션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에게 효율성과 결과를 강조한다고 해서 육아가 잘 될 리가 없었다. 아기는 애초에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아기와 나 사이에 감정 공유가 안 되니 관계가 참 어색하고 힘들었다. 매우 어린 아이와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이 참 쉽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뭐가 문제인지도 잘 인지하지 못했다.    

  

육아 설명서 역할을 하는 <금쪽같은 내새끼>(출처 :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면서 많은 부모가 이 문제로 많이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은영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는 이에 대해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고 감정을 달래주라고 늘 조언한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이 부분이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만 감정 표현과 공유에 어려움을 겪는 줄 알았는데 많은 부모가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를 포함해서 지금 부모가 된 세대들은 감정을 공유하는 법과 감정을 잘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오은영박사는 자녀들의 감정을 읽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출처 : 채널A)

오은영 박사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올바르게 말하는 법을 부모가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부모가 된 세대의 대부분은 그런 것을 배운 적이 없다. 이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이를 가르치는 것 또한 무척 힘든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감정을 표현하는 기본적인 것도 어려운데 이를 대화로 풀어가고 말하는 법까지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하니 표현의 문제와 소통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야 하는 이 상황이 참 난감할 수밖에.    

 

말이 늘고 있는 세 살 딸아이를 둔 나는 그 아이의 떼씀과 말에 당황할 때가 많다. 물론 아이의 속마음을 이해 못 할 때도 많다. 그럴 때는 내 속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는 화와 짜증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그 아이의 감정을 달래주기 전에 내 부정적인 감정에 내가 먼저 휩쓸려 버릴 때가 많다.   

  

이 감정을 누르고 아이의 감정을 먼저 알아주고 이를 적절한 말로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 성장과 성숙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어렵고 힘들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면 해결책을 받은 부모들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말이나 행동을 먼저 고치고 올바른 말과 행동을 연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도움이 되는 여러 교재나 자료들을 활용해서 아이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나는 내가 아이에게 연습을 안 해도 공부를 따로 안 해도 잘 말하고 잘 대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부모로서 나는 억눌려왔던 내 감정을 회복하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이를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따로 말하는 연습도 하고 육아 공부도 하면서 아이와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에는 부모로서 나 자신을 알아가고 인지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 아이와 합을 맞추며 가족으로 살아가려면 아이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갈등이 적고 육아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 가운데 내 감정을 잘 표현하도록 나를 바꾸고 이를 좋은 말로 풀어내는 소통의 연습도 해야 한다. 나와 같은 부모가 참 많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글만큼 나를 잘 알아가는 여정은 없다.      


여기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찾고 연습하고 그렇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나를 먼저 바꾸는 길이 아이에게 제대로 제대로 된 길을 제시해주는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어렵지만, 힘을 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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