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터질 듯한 그때 그 감정이 그대로 밀봉되어 있더라
이사 후 짐 정리를 천천히 하고 있다. 이번엔 간직해 두었던 수많은 편지들을 정리했다. 여기서 저기로 옮길 때마다 그 죽은 추억들을 싸 들고 다니는 것이 미련한 것이며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약 이백여 통에 달하는 크고 작은 편지들이었다. 봉투도 없이 그냥 꼬깃꼬깃 접은 종이 쪼가리들도 있었다. 종이 상자 가득 우겨 넣어진 그 편지들은, 짧거나 길거나 슬프거나 귀여웠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버리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지난 추억들을 다시 한번 펼쳐보는 미련 가득한 시간도 물론 가졌다. 스물아홉 살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다시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낯선 감정을 느끼게 하는 편지들이었다. 지금에야 '이해'가 되는 것들도 있고 편지여서 '솔직'할 수 있었던 것도 있었다. 지금의 카톡이나 이메일, 문자메시지로는 전하지 못할 그때의 그 마음들이 고스란히 누군가의 고유한 필체 속에 담겨 있다. 이제는 긴 장문의 편지들은 참 부담스러운 시대가 되어버려서 참 아쉽기도 했다.
지금에야 다시 본 엄마의 편지에는 죽고 싶었다는 말이 많았다. 어린 시절 내가 이 편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열렬한 사랑의 편지도 있었지만, 그 시기의 나는 그런 것들엔 도무지 관심이 없었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상대에게 꽤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과거의 영광이든 과거의 상처든, 더 이상 지나간 것에서 뭔가를 찾고, 머물러 있으려 하는 마음을 잘라내고 싶다. 현재, 지금의 나, 지금의 관계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또다시 여기서 저기로 옮겨질 때에 가볍고 홀가분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편지를 버렸다.
(블로그,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