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여우비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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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시간의 조각들

"여우비" 기억을 잇는 비, 마음을 적시는 사랑 - 4장 -

by 소선 Jan 06. 2025

비는 그쳤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물기가 남아 있었다.

서하는 아침부터 머릿속이 복잡했다.

전날 현우와 나눈 대화가 마음을 자꾸만 흔들었다.

‘조약돌, 물수제비, 여우비…’

그녀는 손끝으로 조약돌을 매만지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그친 거리는 맑게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흐릿했다.

‘현우 씨가 정말 그때의 소년일까?’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사무실, 점심시간.

서하는 창가에 앉아 보고서를 정리하면서도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다.

‘현우 씨는 조약돌을 기억했어. 분명 나와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

그녀는 조약돌을 손에 쥐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어릴 적 개울가의 장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 돌은 행운을 가져다줄 거래.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어린 시절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때… 난 그 말을 정말 믿었어.’


그날 저녁, 서하는 현우를 다시 만났다.

서하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주머니 속 조약돌을 꺼내 손에 꼭 쥐었다.

‘오늘은 꼭 물어봐야겠어.’

현우는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요?”

그는 밝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하지만 서하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웠다.

“현우 씨.”

그녀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릴 때 기억… 더 떠오른 게 있어요?”


현우는 잠시 놀란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떠오른 게 있긴 한데… 너무 흐릿해서 확신할 수가 없어요.”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조약돌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비가 내리던 날, 누군가와 물수제비를 했던 기억. 그리고 그 사람이 조약돌을 주면서 약속했던 장면이 자꾸 떠올라요.”

서하는 그 말을 듣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약속… 다시 만날 거라고 했던 거 맞죠?”

현우는 그녀의 말에 놀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때의 약속… 하지만 난 그게 꿈인 줄 알았어요.”

서하는 조약돌을 쥐며 목소리를 낮췄다.

“저도 그래요. 꿈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우는 조약돌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서하 씨가 그때의 소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실 어제부터 하고 있었어요.”

서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사람이 정말…?’

그러나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만약 그때의 약속이 운명이었다면, 지금 우리의 관계는 뭘까?’


비는 멈췄지만, 창밖의 거리는 여전히 젖어 있었다.

서하는 현우의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가 그때의 아이들이라면… 그때의 약속을 믿어요?”

현우는 그녀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약속에만 의존하고 싶진 않아요.”

서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지금은요?”

“지금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잖아요.”

현우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과거의 약속도 소중하지만, 난 지금 당신을 선택하고 싶어요.”


서하는 그의 말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조약돌을 바라보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제는 운명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선택을 믿어볼게요.”

현우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우린 계속 걸어갈 수 있을 거예요.”


창밖에는 다시 여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서하는 현우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릴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될 거야.’

그녀는 조약돌을 주머니에 넣으며 결심했다.

‘이번에는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의 빗방울이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며 두 사람의 모습을 흐릿하게 비추었다.

서하는 조약돌을 손에 쥔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우 씨, 이 조약돌이 우리를 연결해 준 건 맞는 것 같아요.”

현우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조약돌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믿고 싶어요?”

서하는 그의 질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곧 솔직하게 대답했다.

“잊고 싶지 않거든요. 그때의 감정도, 그때 했던 약속도요.”


현우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그래요. 잊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 기억이 현실일지 아닐지조차 확신이 없어요.”

서하는 그의 불안과 혼란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현우 씨.”

그녀는 손을 내밀어 그의 손등 위에 올렸다.

“비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준 건 운명일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선택이에요.”

현우는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선택이 더 중요한 걸지도 몰라요.”


비는 점점 거세졌고, 카페 안은 더 조용해졌다.

서하는 조약돌을 손에 쥔 채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저, 사실 그날의 기억을 좀 더 자세히 떠올려 봤어요.”

현우는 그녀의 말을 기다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개울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던 날, 마지막에 내가 조약돌을 건네면서 말했어요. 이 돌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현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을 멈췄다.

“나도 그 말을 기억해요.”


서하는 놀라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정말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어릴 때 그 돌을 받았을 때, 내가 진짜 그 말을 믿었어요. 그래서 항상 간직하려고 했는데…”

그는 주머니를 뒤적였다가 빈손을 내보였다.

“언젠가 잃어버렸어요.”

서하는 그의 말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더 그 기억을 붙잡으려고 했던 거예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조약돌은 없어졌어도… 그 기억만은 계속 남아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당신을 만나면서 그 기억이 다시 선명해졌어요.”


서하는 조약돌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럼 이걸 다시 가져요. 이번에는 잃어버리지 말고요.”

현우는 조약돌을 손에 쥐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돌이 없었어도 우린 다시 만났을까요?”

서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랬을 거예요. 운명 때문이든, 우리의 선택 때문이든 결국 우리는 만나게 됐을 거예요.”

현우는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조약돌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


비는 잦아들기 시작했다.

현우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비가 그치면… 이제 더 이상 우린 과거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서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비가 멈추고 카페 밖에는 해가 비치기 시작했다.

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 다시 비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계속 만나봐요.”

현우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요. 이번엔 비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선택한 걸로.”


밖으로 나선 두 사람의 발밑에는 비에 젖은 돌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서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비가 그쳐도, 우리는 계속 걸어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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