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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l 13. 2018

의도된, 낭만적인 생도넛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 혹은 그렇게 보일 때 그는 내게 묻고는 한다. 뭐 좀 사다 줄까?

그러면 나는 대개 괜찮다고 말하지만 어떤 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빙긋 웃으며 먹고 싶은 것을 말하고는 한다. 그런데 그 먹고 싶은 것은 달라지는 법이 없다. 생도넛. 적당히 단단하게 굳은 듯한 납작 타원형의 빵 안에 흰 앙금이 들어 있는 도넛이다. 때로 변형된 것들을 팔기도 하는데, 절대 변형되어서는 안 되고 딱 그 모양에 흰 앙금이 들어 있는 것이어야 한다. 늘 같은 모양 같은 모습의 그것을 몸과 마음이 원할 때 반복적으로 찾는 걸 보면 그건 소울 푸드다.

소울 푸드가 우아하게 먼 섬나라의 이국적 요리가 아니라 변두리 시장의 작은 빵집에서나 겨우 찾을 수 있는 생도넛인 것이 좀 그렇지만. 이제는 하는 곳이 많지 않아도 노인들이 즐겨 찾기에 구색을 갖추느라 몇 개 만들어 두게 된다는 그런 생도넛인 것이 어쩐지 어쩐지 좀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능곡시장이 있는데, 시간이 멈춘 듯 20년쯤 거슬러 올라간 듯한 분위기가 풍기는 재래시장이다. 그 안에 생도넛을 파는 빵집이 있다고 그가 말했다. 생도넛을 사러 가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면서, 왜 그걸 날마다 만들지 않는지 투덜거리면서 이 일대에서는 유일하게 그곳에서만 생도넛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시장 안으로 쭉 들어가면 무슨 집을 거쳐 무슨 집을 지나 어디만큼에 있는 아담하고 정겨운 시골 빵집 같은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정작 거기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따금 그 시장 근처를 지날 때 시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잠시 의 손가락 끝을 따라 상상으로만 가 보았던 그 빵집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지만, '나는 모르고 그만 아는 그 가게에서 선물처럼 오는 도넛' 그 이미지를 포기하기 싫어 그냥 지나치고는 했다.



나에게는 소울푸드이지만 그에게는 이따금 찾아오는 아주 귀찮은 일일지 모르겠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여주인공 마고의 따뜻하고 다정한 남편 루는 아내가 목욕을 할 때마다 몰래 욕실 커튼 밖에서 아내의 머리 위로 찬물 한 바가지를 붓는다. 5년 결혼 생활 동안 늘 반복되어 왔던 일이기에 아내 마고는 그것이 수도관이나 보일러 문제라고 생각하며 목욕을 하고 나올 때마다 늘 고장이라며 투덜대고는 했는데, 마고와 헤어지게 된 루가 말한다. 먼 훗날 ‘그건 내가 한 짓이야.’라고 말하며 웃게 해 주고 싶었다고.

늘 혼자서 생도넛을 사 오는 그는 루처럼 다정다감하거나 낭만적인 남자는 아니지만, 묵묵히 가족을 지키는 따뜻한 타입의 남자다.(혼자서 나가 도넛을 사 오는 행위로 인해 미래에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그냥 조용히 시장으로 향하는) 이 남자가 게으르면서도 영리한 아내의 도움(?)으로 나중에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때 잘 팔지도 않는 생도넛 사러 능곡시장을 구석구석 뒤졌었지. 그 한 집을 알아내고는 좀 편해졌어. 당신은 그게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지? 나만 아는 곳이라고. 지금도 모를 거야. 내가 사다 줄까?’


이런 낭만적인 대사를 칠 기회를 남편에게서 뺏고 싶지 않다는, 좀 이기적이지만 그럴 법한 사랑의 욕구 앞에서 나는 오늘도 그 도넛 가게가 어디에 있는지는 잠시 궁금해하다가 말기로 한다.   




*이 짧은 글을 쓴 지 벌써 일 년도 훌쩍 넘었습니다. 그 사이 저에게는 생도넛이 먹고 싶은 여러 순간들이 있었겠지요. 때로는 그가 좀 멀리 가 있을 때도 있었을 거고요. 어쩌면 의도된 바 있으나 그래도 꽤 낭만적인 생도넛을 지키겠다는 욕구보다 단순한 식욕이 더 컸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결국 능곡시장 안의 작은 빵집을 알아 버리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그 빵집을 몰랐던 나날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여전히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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