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Jul 06. 2018

엄마의 도넛 레시피

난생처음으로 도넛을 만들었다. 본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재래시장이나 길거리에 있는 오래된 빵집에서야 겨우 찾아볼 수 있는 흰 앙금이 든 생도넛인데, 그걸 만들 자신은 없었던 걸까. 아니면 엄마가 만들어 주던 그 도넛이 생각나서일까. 아무런 멋도 부리지 않은 동글납작한 링 반죽을 뜨거운 기름에 퐁당 담그면 살짝 부풀어 올라 입 안에 달콤한 쿠션을 물고 잠시 행복한 꿈나라로 다녀오게 될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의 도넛.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봐야 반응이 빤하다. 적당히 재료를 섞고 적당히 반죽해서 적당히 익히라고 하셨을 것이다. 게다가 엄마는 도넛을 만든 지 너무 오래됐다. 이제는 집에서 밥도 거의 해 드시질 않으니, 내가 짐작하기로 도넛 반죽을 구경한지도 족히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익숙하게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다. 사실 문제는 그때부터 이미 시작된 거나 다름없었다. 가장 수월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던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링도넛 레시피를 찾기가 그렇게 어려울 줄이야. 무슨 패션후르츠 도넛, 딸기 슈크림 도넛, 초코.... 무슨무슨 도넛 등 이름도 모양도 화려했지만, 정작 내가 찾는 엄마의 레시피는 없었다. 


그러다가 겨우 찾은 레시피 하나를 붙잡고 자신만만하게 도넛을 만들었는데, 기름에 첫 번째 반죽을 넣자마자 실패를 예감했다. 불 조절도 잘 되지 않고 익지 않거나 순식간에 까맣게 타버리거나. 그리고 온도가 적당하다 싶은 순간에도 반죽이 왜 그리 흐물흐물한지. 몇 차례 튀기다 불 조절도, 기름 안에서 빵을 집는 기술도 좀 늘어서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춘 도넛을 먹을 수는 있었지만, 어쨌든 완전하진 않았다. 



내 기억으로 엄마에게는 레시피가 없었다. 적당히 감으로 만들던 도넛이 늘 그렇게 같은 모양 같은 맛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우리는 세계 어떤 요리도 재료와 부엌만 있으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웹사이트를 뒤지면 내가 만들어 보고 싶어 머릿속으로 떠올릴 정도의 요리라면 대부분 다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레시피가 존재하지 않는 음식이 절실하게 먹고 싶을 때다. 엄마의 도넛뿐 아니다. 시어머니의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다가도, 젓갈이 많이 들어가서 푹 익으면 라면 당기게 하는 그 존재감 묵직한 신김치 앞에서도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다. 눈대중으로 습관으로 만들어 내는 이 음식들을 먹고 싶을 때 어머니가 이 세상에 없다면... 그땐 어떡하지. 그래도 적당한 것을 찾아 먹어 가며 살아질 것을 안다. 그런데 그때 밀려올 그리움은 무엇으로 감내하며 살아가게 될까. 

그 그리움을 감내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 현재의 행동이 아닐까.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그때 먹었던 그 도넛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물으면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딸이 떠올린 자신의 젊은 날을 따뜻하게 안고 도넛 만드는 방법을 말씀하실 테지. 그게 도넛을 만드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빤하더라도 전화를 걸어 물어봐야지. 엄마... 하고 부르며. 

식탁 앞에 앉아 망친 도넛을 한 입 베어 무는데, 딸아이는 자기 손으로 직접 반죽하며 만든 도넛이 꿀맛인지 연신 맛있다 맛있다 하며 오물거린다. 아, 나도 그랬다. 엄마가 음식을 만들어 차려 주면 늘 맛있다, 맛있다, 엄지를 치켜세우던 애교 많은 여자아이였다. 지금은 어지간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고서는 호들갑 떠는 일이 없이 교양 있게(?) 식탁을 대하는 삼십 대 후반의 여자. 지금 음식을 대하는 내 풍경은 그러하다. 도넛을 맛있게도 먹는 딸아이를 보니, 망친 도넛이라도 엄마에게 한 입 베어 보라며 크게 넣어 주고픈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랬던 적이 없지. 


생각해 보니 오늘 내가 고팠던 것은 완벽한 도넛이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도넛을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으면 
엄마가 대답해 주는 순간의 말투, 
숨소리, 웃음, 잔소리 따위가 
고팠던 건 아닐까.  


그러니까 오늘은 애초부터 완벽한 도넛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며 도넛 레시피를 찾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쩐지 정말 찾기 어렵더라. 엄마에게 전화를 할 걸 그랬다. 


살아가는 데 대부분은 레시피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친 도넛을 보고 있자니, 도넛을 성공하게 해 줄 레시피 생각이 한편 간절하다. 

설에 친정에 가면 잊지 말고 물어봐야겠다. 엄마가 그때 만들어 준 도넛 어떻게 한 거냐고. 




엄마 무릎 베고 급한 일도 없이 외우려고 노력할 일도 없이 
내일도 모레도 십 년 뒤에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물으면, 
엄마가 말해 주는 그 과정이 나른하여 졸음이 밀려오면 좋겠다. 
그리고 어린 시절 특별식으로 도넛 먹는 행복한 꿈을 꾸면 좋겠다. 


이전 02화 스파게티 소스가 묻은 프라이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