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Jul 20. 2018

냉장고 심리테스트 - 유통기한을 대하는 인간 유형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서 내 입맛에 딱 맞을 것 같은 멋진 레시피를 찾아냈다!

그런데 우스터소스와 노추왕이 필요하다. 

양조간장, 설탕, 케첩 같은 양념과는 차원이 다르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유통기한을 6년이나 넘긴 우스터소스가 있다. 

노추왕은 없다. 


자, 


1. 유통기한이 6년이나 지난 우스터소스를 버릴 텐가, 쓸 텐가. 


2. 만약 우스터소스를 버린다면... 새로 사러 갈 것인가, 

    아니면 우스터소스는 빼고 요리를 할 텐가.


3. 집에 없는 노추왕을 어디서든 구해 올 것인가,

    아니면 빼거나 대체할 무언가를 찾아 요리할 것인가. 


  나는 유통기한을 너무나 넘겨 버린 우스터소스는 버리고, 기꺼이 새 우스터소스를 사러 나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노추왕을 사러 중국 식료품 상점에 다녀올 것이다. 아무리 귀찮고 번거로워도 만들고자 결심한 그 레시피를 따라 천천히 움직일 것이다. 



  오랜만에 시골집에 내려갔는데, 내가 아주 오래전에 어떤 음식을 만드느라 사용했던 우스터소스가 있었다. 유통기한은 이미 6년이나 지나 있었는데, 당연히 내가 체감하는 세월은 3~4년에 불과하다. 

  나는 요즘 이렇게 시간이 너무나 빨리 흐른다고 느끼며, 시간을 좇느라 분주한 사람이다. 

  유통기한을 심하게 넘겨 버린 소스는 버리지만, 1~2개월쯤 지난 소스라면 기꺼이 쓸 수도 있는 한편 털털한 사람이다. (단지 6년은 너무 심한 거다)

  만들고 싶은 게 있으면 아무리 번거로워도 '왜 저렇게까지 하나' 하는 옆 사람들 시선도 기꺼이 감내하며 하고 싶은 대로 꼭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너무 눈치가 보인다 싶으면, "빼고 하지 뭐!" 하면서 쿨한 척할 수도 있는 소심한 면 또한 지니고 있다. 


  위 세 가지 질문에 대하여 단답형으로 대답하면 누구든 쉽게 오해받을지 모른다.

  역시 심리테스트란 믿을 게 못 된다.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각기 다름, 케이스 바이 케이스. 

   다 그런 것 아닐까.

   오늘 유통기한이 지난 소스를 눈 꼭 감고 쓰는 나일지라도 내 일상을 흐트러뜨릴 만한 누군가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 앞에서는 아주 소심한 척 소스를 조용히 버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더욱 과장된 몸짓으로 더 더 더 센 언니인 척하며 유통기한이 지났음을 강조하는 몸짓으로 평소보다 조금 더 간이 센 요리를 만들지도.  

이전 04화 의도된, 낭만적인 생도넛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