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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ug 24. 2018

1퍼센트 불안 함유, 유리잔

부엌을 오가며 이따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을 때가 있다.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깰 때나, 친정 엄마가 애써 싸 준 반찬을 통째로 떨어뜨려 못 먹게 되었을 때나, 음식을 하다가 소금 대신 설탕을 넣었을 때나, 기름병 입 부분을 잘 인지하지 못해서 너무 많은 양을 들이부었을 때나...... 그런 때들이 아니다. 주의력이 떨어지는 나에게 그럴 일들은 일상다반사니까. 

내 부엌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부주의한 여자의 짧은 외마디 비명 소리(이 글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 같지만, 그 순간엔 듣는 사람도 좀 공포스러울 수 있다. 남편에게 물어보면 분명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와 와장창 탁 촤르르 따위 실수와 연결되는 온갖 부사들이 난무한다.  

이런 일들은 더 이상 심장을 뛰게 하지 않는다. 
오래된 애인처럼, 부족해도 불안해도 옆에 있는 것이 몸에 익은 그런 관계다. 
부엌의 잦은 사고들과 나는 적어도 그렇다. 



그런데 어쩌다 마주치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아주 단정하고 깨끗하고 눈부신 것들이다. 사고 따윈 없을 거라는 듯 주변에 있는 것들보다 우아하게 서 있는 것들이다. 마치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서로의 것을 아무것도 다 내보이지 못했지만 마치 전부를 이해한다는 듯 상대를 쓰다듬는 연인들처럼. 나는 그것들, 그러니까 너무나 반짝반짝 빛나는 그것들에게서 이따금 최악의 순간을 본다. 나쁜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길을 걷다가도 맨홀 뚜껑이 보이면 그 뚜껑이 깨지거나 흔들려 그 아래로 떨어지는 상상을 하며 그것에 대비해 피해 가거나 몸의 무게를 최소치로 바꾸며 지나가는 나인 것을. 

내 부엌에서는 너무나도 투명하고 얇고 세로로 긴 유리잔이 그러하고, 
어디에서 이런 빛깔이 날 수 있을까, 절대 공장은 아닐 거야, 어쩌면 누군가의 손에서 손을 거쳐 여기까지 도달한 어떤 터키 유리장인의 작품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게 만드는 청보랏빛 와인잔이 그러하고, (두 개 중 한 개는 이미 바닥 쪽 귀퉁이가 깨져 나갔다, 아주 미세해서 주인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먹빛이 각도에 따라 다르게 빛나는 도자기 접시가 그러하고,
바닥 쪽이 너무 좁고 배는 불뚝한, 불균형의 미를 한껏 자랑하는, 내가 독립할 적에 엄마가 선물해 준 것이라 함부로 쓸 수조차 없는 계명배가 그러하다. 

이밖에도 바라보고 있자면 평정심을 잃게 되는 몇 가지 물건들이 있는데, 그것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깨지기 쉽다는 것,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물건이라는 것.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참으로 아끼는 것들이 그 네 가지, 혹은 그 네 가지 이상이라는 이야기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끼는 것들로 인해 소소한 부엌에서조차 불안을 견디며 사는 삶이.  

내가 너무 부족하고 모자라고 작고 사소한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가올 미래는 한 번도 핑크빛인 적 없었고, 불안과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그러기에 빛나는 현재의 물건들에 깨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의식을 투영시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여기까지 말하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만 같은 중증 환자의 모습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도 나에게 적합한 최적의 생존 방식을 습득해 가는 한 인간이다. 



불안하지만 아름답던 것들이 와장창 깨지며 상상하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나는 의외로 안도한다. 벌어질 일이 벌어졌다는 낭패감이나 자포자기의 감정과는 다른 것이다. 

불확실하고 불가해한 것들로 가득 찬 것이 세계이지 않나. 시시때때로 나에게 그것을 알려오는 세계와 악수하고 대화에 동참하는 나만의 방식이 그런 것이다. 불안을 인지하고 불안을 견디다가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나는 단단하게 마음먹고 있었다고 괜찮다고 더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답한다. 

언제나 다가올 미래는 불안하지만, 
그 불안들이 빚어내는 수없이 많은 금들 사이에 나는 
톱밥을 메우고 사포질을 하듯 
떨리는 시선과 쿵쿵대는 심장 소리와 조심스러운 손길을 메우며 
더 단단해지도록 더 매끄러워지도록 다독이며 산다. 

그래서 가느다랗던 금들이 쫘악 하고 갈라져 조각이 나도 쨍그랑 요란스럽게 깨지며 파편이 되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 순간 악 소리와 함께 오버액션 어설픈 배우가 되기는 하지만, 사실 그 순간 마음은 더 잔잔하고 평온하다. 

 


오늘 아침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물방울 두 개가 맺혀 있는 모습이 마치 컵이 깨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창열 씨가 선물해 준 유리잔이다. 지난여름 신나게 모히또를 만들고 또 만들고 하던 몇 번의 파티를 거치며 모히또에 꼭 어울릴 것 같다는 이유로 우리 집에 찾아든 유리잔이다. 높이가 꽤 긴 편이고 둘레는 좁은 편이고 또 유난히 얇은 두께 때문에 그것을 보는 순간 부엌에서의 내 불안은 가중된다. 정말로 깨졌다면, 나는 또 난해한 평온함을 즐겼을까. 그래도 깨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겨울이 절정인 요즘이다. 몇 년 만에 최고의 한파라는 둥 매스컴에서도 연일 날씨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추울 때는 창가에 유리컵 두는 일도 조심해야 한다. 차가워진 컵에 뜨거운 커피 물을 부었다가 깨뜨린 일도 적지 않다. 실내 온도만큼 유지되고 있는 무난한 자리에 컵을 두고 조심스럽게 뜨거운 물을 부어야 한다. 겨울엔 그렇게 무난한 온도의 자리를 잘 찾아가며 심장이 쿵 하는 일 없이, 함부로 동요되는 일 없이 고요히 지내야지 하고 섣부르게 마음먹어 본다. 


나는 오늘도 
약간 금이 간 것, 귀퉁이가 조금 깨진 것, 한쪽이 상처 난 것들을 보듬고 산다. 
그리고 그 외 멀쩡한 것들을 다 부둥켜안고 사는데, 
잠깐, 1%의 불안 함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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