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77. 일기떨기: 지원의 밀린일기

앞으로도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도록.

by 일기떨기 Mar 24.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K와 오랜만에 망원의 한강 공원을 걸었다. K는 매 계절마다 산책을 함께하는 친구 중 하나로, 속된 말로 ’우리 지금 너무 낭만충인데?‘라며 깔깔 웃으면서도, 기꺼이 시간을 내어 간식거리와 커피를 든 채 걸음을 함께하는 소중한 동생이다.  

 부쩍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풀 시간이 필요해졌다던 K는, “나는 팀원들한테 다 말해버리는 게 문제야.” 라는 말로 운을 뗐다. ‘일을 잘하고 믿을 수 있다’라는 게 꼭 사람 그 자체의 진실성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굳이 사내에서 소속감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아주 내밀한 이야기가 아니면 다 말해버리게 된단다. 하나의 페르소나를 잘 빚어두고, 여러 명에게 그것을 똑같이 보여줄 수 있다면 편할 텐데 그게 안 된다고.  

 K의 고민을 듣고, 나도 비슷한 걱정을 해본 적 있는지 기억을 헤아려보았다. 돌아보면, 각각의 상대에 맞추어 다른 모양의 면면을 보여주고, 그 단편을 해석당하는 건 그것대로 피곤해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솔직한 내 모습들’이라고 말하면서도, 일단 보여줄 일부분을 선택하는 건 나니까, 스스로 어느 정도 모순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K와 나는 그 후로도 한참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조금 웃기게도 서로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데에서 맥락을 마무리지었다. 내가 어떤 단편을 보여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K 또한 굳이 가면을 빚지 않아도 되는 이런 관계가, 갈수록 새롭게 맺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우리가 어떤 말을 나누어도 괜찮다는 가정, 혹은 믿음이 깔려 있었다.  

 말은 변하기 쉽고, 많은 경우 확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 내가 가식 없는 단어들을 골라 뱉는다고 해서, 타인도 당연히 그러리라 여겨서는 안 된다. 마음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유효함을 잃은 문장들은 고이고이 가슴에 간직해두고 앓느니 허공에 날아가게 두는 것이 낫다. 그렇다면 말에서 비롯되는, 우리가 발화하는 문장들에 스민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다다랐다. 네가 뱉은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다르게 숨긴 의도도 없을 거라는 어떤 신뢰. 그건 친밀감의 척도보다는, 현재의 상황과 심정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쌍방으로 모두 진실되다는 명제에 가깝다. 그런 명제 위에 쌓을 수 있는 관계를 앞으로 얼마나 오래, 또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을까? 

 선을 지우고 나의 테두리를 확장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질수록, 내 옆의 K, 그리고 K와 같은 친구들의 특별함을 되새긴다. 되도록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도록.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 KgWN9 A42 RCnsLw6


일기떨기 04. 지원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매거진의 이전글 76. 일기떨기: 소진의 밀린일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